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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편 1화] 상

The translated version of the Smash Novels will be here soon. Thank you.
“당신 이야기를 들려줘요.”
볼프강은 오래전 일을 떠올렸다.
어느 화창하던 날이었다.
볼프강은 자신이 언제부터 ‘나쁜 늑대’ 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희미해지는 기억의 시작을 더듬더듬 찾아 올라가면 도달하는 가장 첫 기억에서도 자신은 나쁜 늑대였고, 기억나는 모든 기간에 걸쳐 나쁜 늑대였다.
볼프강은 나쁜 늑대가 아니었던 자신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만큼 볼프강은 아주 오랫동안 나쁜 늑대였다.
그 오랫동안, 나쁜 늑대로서 볼프강은 여러 일을 해왔다.
여섯 마리나 되는 아기 염소들을 잡아먹기도 했으며, 돼지 삼 형제 중 둘의 집을 부수기도 했고, 산속의 할머니와 그 손녀를 잡아먹기도 했으며,
양치기를 몇 번이나 속여 양들을 잡아먹기도 했다. 그 외에도 셀 수도 없는 일들을 해왔다.
결말들은 그리 좋지 못했다.
볼프강은 배가 갈려, 돌멩이를 가득 채운 채 우물에 빠지기도 했으며, 굴뚝으로 돼지의 집에 들어가다 뜨거운 물에 빠지기도 했고,
사냥꾼에게 쫓기다 총에 맞거나 활에 맞거나 함정에 걸리거나 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나면 볼프강은 멀쩡한 몸으로 다른 곳에서 정신을 차리고는 했고, 또다시 나쁜 일을 저지르기 위해 길을 떠났다.
볼프강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신이 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과 그 이야기들을 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볼프강은 그런 것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볼프강은 그저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나쁜 늑대로서의 본능에.
볼프강은 여러 이야기를 오고 가며 나쁜 늑대로서 온갖 일을 저지르고 다녔다. 사람들은 볼프강을 두려워했고, 아이들은 늑대가 온다는 말에 공포에 질렸다.
이야기들 속에는 다른 늑대들도 있었다. 그들은 반대로 볼프강을 존경하고 따랐다. 젊었던 볼프강은 자신을 추켜세우는 것은 싫지 않았다.
볼프강은 어느새 나쁜 늑대들을 통솔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경험하고 느꼈고 배워왔던 것들을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다른 늑대들은 볼프강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볼프강은 어느 순간부터 다른 늑대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해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늑대들은 오히려 그런 볼프강을 멋있다고 더욱 존경하며 따랐다. 사람들에게 그러듯, 볼프강은 그런 반응도 신경 쓰지 않았다.
볼프강은 언제나 자신의 본능에 충실할 뿐이었다. 다른 등장인물들을 잡아먹어 허기를 채우는 것.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도, 의무나 사명감에 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할 뿐이었다.
어쩌면 그러는 것이 자신의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볼프강은 어렴풋이 하곤 했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볼프강은 생각했다.
그저 한 마리의 늑대에 불과했던 볼프강은, 오랜 시간이 남겨준 경험과 지혜로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역할을, 운명을 따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볼프강은 승리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언제나 볼프강은 모두를 잡아먹으려다 마지막 순간 실패하고 응징당하는 역할이었으며,
사람들은 그렇게 볼프강이 비참한 모습을 맞이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야기의 다른 악당들은, 나쁜 늑대의 역할을 하는 다른 늑대들은 라이브러리 월드로 돌아가면 원래대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지만 볼프강은 그렇지 않았다. 볼프강은 자신의 회색 털이 점점 하얗게 새어가는 것을 눈치챘다.
볼프강은 알게 됐다. 다른 늑대들에게는 소속된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의 시간을 따른다. 하지만 볼프강은 이야기들을 떠돌아다닌다.
이야기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간을, 어쩌면 라이브러리 월드 그 자체의 시간을 따른다. 법칙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볼프강은 딱히 무섭지는 않았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과 역할이라면, 본능이 이끄는 것이 그런 결말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볼프강은 자신의 생활에 질려갔다.
한 마리의 늑대였다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볼프강은 이제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왔는지 명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볼프강은 그런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이유도 모를 본능에 충실한,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삶이었다. 그렇지만 돌아보니, 그 안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삶이었다.
두려운 나쁜 늑대를 모두가 꺼렸고, 다가오는 것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 이들. 자신이 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과 다른 이야기로 넘나들 수 있는 능력에 한때는
이야기들을 관리하는 ‘현자회의’가 다가왔지만, 그들 역시 그저 악행을 저지를 뿐인 볼프강이 무언가를 관리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지 고개를 내저으며 떠나갔다.
볼프강은 그 판단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말한 대로,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상처입히는 것뿐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렇게 사는 걸까. 남기는 것 없이, 돌아보면 공허한 이 삶을 계속하는 걸까. 그러다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
대신할 늑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볼프강은 다만 그 의문의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며 이야기를 떠돌고, 나쁜 늑대로서 살아가고, 부상을 입고 쓰러진 어느 날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푹신한 감촉에, 볼프강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났다. 그 행동의 탓에, 상처를 입었던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신음을 흘리며 자신도 모르게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대던 볼프강은, 눈앞의 광경에 놀랐다.
상처 위에 감겨있는 붕대. 시커먼 털이 수북한 몸을 덮은 이불. 어느 것도 볼프강은 보기만 했을 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고개를 들자, 하늘은 막혀있었다. 어느 집의, 어느 방 안이었다. 깨어났을 때부터 느껴지는 낯설지만 나쁘진 않은 감촉에 돌아보자,
볼프강은 자신이 난생처음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 일어났나요?”
볼프강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볼프강은 재빨리 이불을 걷어치우고 발톱을 뽑아 대항하려 했지만, 볼프강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느낀 감정에, 볼프강은 스스로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겪는 일이 너무 많아서일까?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때문에 자신이 이상해진 걸까?
채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사이에 볼프강이 고민하는 사이, 상대는 방 안으로 들어와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색 테두리의 안경을 낀, 나이가 든 여성이었다.
차분한 느낌의 오렌지 브라운색의 머리카락. 안경보다 선명한 붉은 숄을 어깨에 두른 여성은, 간호하려는 것인지 물병과 간단한 요깃거리가 있는 접시를 들고 있었다.
볼프강은 여성이 비명을 지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나쁜 늑대니까. 볼프강은 여태껏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방 안에서 깨어났음에도, 상처를 누군가 치료해줬음에도 여성이 자신을 돌봐줬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볼프강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성은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한 어중간한 자세인 볼프강의 침대 옆에 앉았다.
“걱정했어요. 삼일이나 눈을 뜨지 못해서요. 깨어나서 다행이네요. 몸은 좀 어떤가요? 늑대를 치료한 적은 없어서 잘 치료했는지 모르겠는데.”
볼프강은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삼일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니. 언제나 쫓기고 위협을 받던 볼프강의 처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여성의 반응을 볼프강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에 크고 사나운 늑대가 있는데, 이 사람은 비명을 지르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상처 입고 쓰러진 자신을 데리고 와서 치료하고 돌봐줬다고 한다.
그 모든 것이 볼프강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볼프강은 오히려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볼프강이 이를 드러내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음에도, 여성은 딱히 볼프강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볼프강은 여성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한참을 지켜본 끝에야 입을 열었다.
“...우선, 도와준 것은 감사하지.”
“어머.”
볼프강의 말에 여성이 놀랐다는 듯 말했다. 자신이 말하자마자 보인 반응에 볼프강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여성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늑대가 말을 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거 미안하군. 나는 보통 늑대가 아니라 나쁜 늑대라서 말이지.”
볼프강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여성은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는 듯, 그저 준비해온 물과 음식을 볼프강에게 내밀었다.
“그렇군요. 오랫동안 잠들었으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플 것 같아서, 적당히 가져왔어요. 모자라면 더 있으니까, 얼마든지 말해요.”
볼프강은 점점 알 수 없어졌다.
여성은 볼프강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아! 늑대니까 역시 고기를 좋아하실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지금 집에 있는 게 없어서요. 일단은 다쳤다고 생각해서 수프를 만들었는데… 혹시 고기 말고는 못 먹나요?”
“무슨 생각이지?”
볼프강은 여성의 말을 무시하며 물었다.
“나쁜 늑대를 조심하라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나?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같은 건 한입에 꿀꺽하고 삼킬 수도 있는데.”
“하지만 아직 나쁜 짓을 하지 않았잖아요.”
여성은 웃으며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래도 역시, 한입에 꿀꺽하고 삼키는 건 그만둬 줬으면 하네요. 아직 잡아먹히고 싶진 않거든요.”
여성은 농담이라는 듯 말하고는, 식사하고 푹 쉬라는 말을 남기고는 방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볼프강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
조금 지난 뒤에야 여성이 남기고 간 물과 그릇에 코를 가까이해 냄새를 맡아봤다.
킁킁. 독은 들어있지 않았다.
볼프강은 더욱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볼프강은 ‘친절’이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쁜 늑대인 볼프강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며,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성이 자신에게 ‘친절’을 준 것은 볼프강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독이 들어있지 않은 수프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언젠가 어느 집에 숨어 들어가 맛봤던 것과 비슷한 냄새였다. 볼프강은 요리를 먹어본 지 오래됐다.
수프는 아직 따뜻했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 볼프강은 여성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야기에서 생긴 상처나 피해는, 라이브러리 월드로 돌아가면 회복된다. 그렇지만 이번에 볼프강이 입은 상처는 그렇지 않았기에,
볼프강은 어딘가에서 상처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금 다른 이야기에서 ‘나쁜 늑대’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볼프강의 입장에서는 어디든지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무도 없는 숲속의 깊은 곳이 더욱더 좋았다. 하지만 여성은 상처 입은 볼프강이 떠나겠다는 것을 말렸다.
“그런 몸으로 가면 위험해요. 상처가 나으면 가시죠.”
“가까이 오면 후회할 거다.”
볼프강은 쫓기고 있었다.
후회할 거라는 말은 볼프강에게 가까이 오면 후회할 거라는 말이기도 했지만, 볼프강을 추격하는 이들이 다가오면 후회할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규칙이란, 라이브러리 월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였다.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정해진 대로 따라가는 것이며,
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반복되고, 이야기가 끝나면 라이브러리 월드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야기의 흐름이 무너질 테니까.
그렇기에 현자회의는 그 규칙을 철저하게 숨겨왔다. 이야기를 관리하기 위해, 그 줄거리를 지키기 위해 이야기에서 한 명씩 뽑힐 ‘현자’는
엄정한 심사를 통해 자질을 보고 뽑았으며, 간혹 규칙을 깨닫게 되는 이들은 현자회의에 영입했다.
영입되지 않거나 영입할 수 없는 이들을 현자회의는 추적했다.
하지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볼프강이 털어놓아도, 여성은 걱정 않는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여긴 깊은 산 속의,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니까요. 절 찾아오는 건 아주 가끔 오는 손녀 정도랍니다. 당신이 상처를 치료할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볼프강은 다시금 여성을 설득하려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사실, 볼프강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으니까.
현자회의의 누군가가 찾아와 여성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볼프강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나선 일이고,
볼프강은 여성에게 ‘친절’을 달라고 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볼프강에게도 숲속에서 홀로 상처를 핥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이쪽이 더 빨리 회복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동안 여성의 집에 머무르게 된 볼프강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어머나.”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온 여성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장작을 집 옆 장작더미로 옮기던 볼프강은,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에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할 일이 없더군.”
어젯밤만 해도 텅 비어있던 장작더미는, 어느새 여성의 키와 비슷할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여성은 미소지으며 장작더미에 마지막 장작을 후두둑 내려놓는 볼프강에게 말했다.
“몸 상태는 좀 괜찮아지셨나요?”
“괜찮다. 그래서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더군.”
“고마워요. 제가 저만큼이나 장작을 패려면 하루로는 부족했을 텐데.”
“‘친절’에 대한 대가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마라. 말했듯이 할 일이 없어 심심했기도 하고.”
볼프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심심하다’는 감정 자체가 볼프강에게는 낯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볼프강의 삶은 둘로 나눌 수 있었다. 본능에 충실한 나쁜 늑대로서의 시간과 누군가로부터 쫓기거나 도망치는 늑대로서의 시간이었다.
어느 쪽이든 심심하다는 감정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여성의 집에서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는 나날들.
처음 며칠간은 볼프강은 여성이 사냥꾼을 데려오거나, 독약을 먹이고 사냥꾼에게 넘기거나, 혹은 현자회의에서 자신을 쫓아오진 않을까 걱정하곤 했다.
그렇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볼프강은 침대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다.
그런 감정을 느껴본 것이 처음이기에 볼프강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볼프강은 몸이 근질거릴 때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혼자 살기에 관리가 잘 안 되는 여성의 집을 고치기도 하고,
텃밭을 일구는 것을 돕기도 하고, 맛은 있지만 계속되어 질린 수프 대신 숲속에서 토끼나 사슴 따위를 잡아 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여성은 볼프강이 지붕을 고치러 올라갈 수 있게 사다리를 붙잡아주거나, 함께 텃밭을 일구거나,
볼프강이 잡아 온 토끼나 사슴을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 함께 먹곤 했다.
적응이라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따분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딘지 불안했기 때문에 볼프강은 움직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볼프강은 마치 늘 그랬던 것처럼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텃밭을 일구고, 오두막을 고치거나 가구를 만들고, 토끼나 사슴을 사냥하고,
숲속이기 때문에 다른 늑대나 곰 같은 맹수가 집으로 다가올 것 같으면 내쫓고는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볼프강은 알지 못했지만, 볼프강의 상처는 어느새 사라졌다.
여성은 볼프강에게 상처가 나았으니 집을 떠나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볼프강은 집을 떠나려 했으나 내일은 삐걱거리는 문을 고칠 생각이었기에,
또다시 내일은 텃밭에서 돌을 골라낼 생각이었기에, 그다음 날은 불길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기에 집을 떠나지 않았다.
“당신 이야기를 들려줘요.”
어느 화창하던 날이었다.
볼프강과 여성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텃밭을 돌보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는 햇빛이 부서졌고, 시원한 바람이 그늘에서 땀을 식히던 몸을 스쳤다.
멍하니 새들이 포로롱 거리며 날아가는 걸 보던 볼프강은 여성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볼프강은 여성과 어느 정도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그녀가 볼프강에 대한 것을 물어본 적은 없었다.
볼프강은 자신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들려줬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나쁜 늑대였고, 여러 나쁜 짓을 하며 돌아다녔다는 정도였다. 여성에게 이 세계의,
라이브러리 월드의 법칙 같은 것을 설명할 생각은 없었기에 여러 이야기를 떠돌아다녔다는 것은 설명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현자회의가 여성을 쫓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저 볼프강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장소를 다니며 나쁜 늑대로 살았다는 이야기만을 했다.
여성은 다른 장소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볼프강은 그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볼프강은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장소를 다녀봤다.
울창하게 나무가 자라난 숲속을 뛰어다녔으며, 황금색으로 물든 밀밭을 달려갔다.
쌓인 눈과 내리는 눈이 맞닿아 하늘도 땅도 온통 새하얗게 변해 온 세상이 하얀 설원을 달렸으며, 계속 달리면 푸른 하늘에 도달할 것 같은 끝없는 평원도 달려봤다.
하늘이 담긴 듯한 호숫가를 첨벙거리며 뛰었고, 파도가 부딪히는 모래사장을 달렸다. 굽이치며 몰아치는 강가를, 폭풍우가 치는 산의 미끄러운 돌길도,
흐른 피로 땅이 붉게 물든 진창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집안으로 뛰어드는 벽돌길도 달렸다.
하늘에 닿을 듯한 나무 밑도, 서로 얽히고설켜 한 그루로 보이는 거대한 나무 밑도, 푸른 꽃밭도 노란 꽃밭도 모두 달려봤다.
“멋지네요.”
여성은 볼프강의 말을 듣다 말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런 광경을 보고 싶어요.”
볼프강은 하마터면 그렇겠냐고 물어볼 뻔했다.
그 모든 곳을 이야기하면서, 그녀가 곁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기에.
볼프강은 하마터면 여성을 물어뜯을 뻔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곳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느낀 소유욕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날뛰는 듯한 본능에.
볼프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야겠군.”
여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냐고도, 이렇게 갑자기 떠나냐고도, 식사라도 하고 가지 않겠냐고도 하지 않았다.
여성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늘 끼고 있던 빨간색 테두리의 안경을 볼프강에게 건네며 여성은 말했다.
“데려가 주겠어요?”
볼프강은 물끄러미 여성을 바라보았다.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성의 말투를 이해하게 됐기에, 볼프강은 설명을 기다렸다.
여성은 안경을 양손으로 잡고 볼프강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볼프강은 허리를 숙여 여성이 하는 일을 마저 하도록 도와줬다.
“오랫동안 이 안경을 끼고 살았죠. 제 눈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그 안경이 당신이 말한 광경을 봐준다면, 내가 본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이게 없으면 불편할 텐데.”
“걱정하지 마세요. 불편한 것은 편하지 않다는 의미일 뿐이니까.”
볼프강의 말에 여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볼프강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볼프강은 숲속을 떠났다.
결국 자신은 나쁜 늑대였기 때문에.
한 번은 욕망을 참았지만, 두 번도 참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애당초 영원히 이대로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자회의의 그 고양이는 자신을 찾아올 것이고,
그곳 역시 어떤 이야기의 안이었으니 결국에는 라이브러리 월드로 돌아가고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언젠가 떠나야 한다면 볼프강은 지금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쁜 늑대 볼프강은 세상을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