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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기장의 밖에서 - 2화

시놉 시티에 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아침을 맞아 각자의 일터로 출근하는 각양각색의 등장인물들. 거리에는 트램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탈것들이 지나다니고, 푸른 하늘에는 새들이 한가롭게 날아다닌다. 새들이 날갯짓 하는 사이로는 비행선이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날으는 도구들이나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새로이 개발된 탈것들이 떠다닌다.
‘오늘도 날씨가 좋구나.’
그런 평화로운 거리를 스노우는 한가롭게 걸어갔다.
‘다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내고 있어.’
스노우는 거리를 걷는 다른 등장인물들을 보며 생각했다.
며칠 전의 밤, 시놉 시티에서는 또 다시 사건이 벌어졌다. 악의 비밀조직 움브라 소속인 플레어의 방화, 그리고 때를 같이 해 벌어진 이야기 ‘인어공주’의 왕자 저택 습격사건과, 왕자의 실종. 며칠간은 그 소식들이 신문과 뉴스를 통해 방송되고 사람들의 관심도 쏠렸지만, 다시금 시간이 지나자 시놉 시티는 평소의 일상을 완전히 되찾은 모습이었다.
무리도 아니지. 스노우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그런 일이 화제가 되기에는, 플레어의 방화도 누군가의 실종도 너무나 자주 일어났으니까. 이번에는 유명한 이야기의 주요 인물이 실종되었으니 조금 더 화제가 이어졌을 뿐, 그 충격이 가시자 금방 잊혀지고 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스노우에게는 달랐다. 그 일의 뒷처리와 앞으로의 대응책 등을 모색하느라 연일 회의와 대책마련으로 격무에 시달렸으니까. 오늘 이렇게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그런 스노우의 무리를 걱정한 옥타비아가 반 강제로 휴가를 줬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들은 알까?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마 모르겠지. 스노우는 스스로의 생각에 대답했다. 지금 거리를 걸어가는 그 누구도, 아마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스노우와 동료들이 싸우고 있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움브라가 플레어의 방화로 눈속임을 하고, 자신들의 소행인지 숨긴 채 이야기의 중요한 인물들을 납치한다. 그 결과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이 일어나고, 최근 화제가 되는 이야기섬의 붕괴로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 스노우가 이끄는 7D는 현자회의와 협력하여 움브라에 맞서고 있다. 이런 사실은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노우는 그런 사실이 오히려 기뻤다. 이렇게 모두가 아무 것도 모른 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런 사실이 알려진다고 해도, 모두는 혼란에 빠질 뿐이다.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빨리 누님… 아니, 위치 퀸과 결판을 내야 해.’
스노우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각오를 굳혔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이대로 휴가를 즐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 스노우는 휴가를 권하며, 아니 강요하며 하던 옥타비아의 말이 떠올랐다.
“스노우, 네가 책임을 느끼고 열심히 하는 것도 좋단다. 하지만 정작 네가 평화를 누리지 못하면, 그 소중함을 어떻게 알겠니? 그리고 휴식은 앞으로 싸우는데도 꼭 필요한 일이야! 그러니 내일 하루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편하게 쉬다 오렴.”
‘...그래, 지난 번처럼 쓰러질 수는 없으니까.’
옥타비아의 말을 떠올리며, 스노우는 초조함을 겨우 몰아낼 수 있었다. 스노우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달래면서 멈춰가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근, 스매시 레전드 경기는 일시 중단되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이 심해지며, 이야기에서 이 세계로 넘어온 이야기섬들이 다시금 붕괴하는 일까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 ‘레전드’ 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노우는 그 일이 움브라를 막고, 또한 7D의 대표로서 붕괴된 이야기섬에서 등장인물들을 구조하고 시놉 시티나 다른 이야기섬에 정착하도록 돕고, 이 이상의 붕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등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피터랑 신디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스노우는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자신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스노우가 처음 사귄, 단 둘 뿐인 친구들이었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스노우는 친구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왕자로 태어난 스노우에게는 또래 친구와 만날 일조차 드물었으니까. 성에서 쫓겨난 뒤에는 외딴 곳에서 이야기의 ‘운명’을 따르기 위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느라 마찬가지로 또래를 만날 일이 없었고, 누나와의 싸움을 시작하고 마침내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뒤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럴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도 이랬지.’
생각에 잠긴 채, 스노우는 어느새 시놉 시티 공원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놉 시티 공원은, 중하층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공원이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으로 인해 여러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이 모여들고, 그에 따라 수도인 시놉 시티도 확장과 증축, 개발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이전에 ‘시놉 시티’ 라는 이야기섬을 구성하던 지면은 중하층이 되고, 그 위로 상층과 하층이 추가되었다.
남아있던 지면 역시 난개발로 인해 도로와 건물들이 늘어나며 그 자리를 잃었고, 이제 시놉 시티에서 제대로 된 땅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도심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공간인데다, 시놉 시티에 거주하는 등장인물 중에는 본디 시골이나 숲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도 많았기에 공원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건 스노우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날, 이제는 아주 오래된 것만 같은, 하지만 돌아보면 그리 오랜 시간은 지나지 않은 과거에도 스노우는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스노우가 나타나면, 시놉 시티의 주민들은 스노우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멀리서 스노우를 보며 관심을 기울이지만, 접근하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스노우는 인파가 드물지 않은 공원에서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유는 스노우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도 스노우는 라이브러리 월드 최대의 기업인 7D의 대표이고, 시놉 시티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모두에게 있어서 스노우는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다가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어? 넌 누구야?”
그래서 그런 말이 들렸을 때, 스노우는 당연히 그게 자신을 향하는 말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무시 아닌 무시를 한 채 스노우가 몇 걸음 걸어가자, 등 뒤에서 누군가 톡톡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스노우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나랑 또래를 보는 건 처음이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스노우 역시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니까. 빨간 머리카락에 초록색 옷. 어느 쪽이든 조금 지저분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스노우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건 상대의 눈빛과 표정이었다.
여태까지 스노우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의도가 있는 자들이었다. 이야기 속에서는 스노우를 따르거나 적대시 하는 사람들이었고,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뒤에는 7D의 사장에게 잘 보이려는 자들, 이용하려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저 순수한 호기심과 반가움일 뿐. 그 덕분에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당황하던 스노우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그래. 반가워. 난 스노우라고 해.”
스노우가 자신의 이름을 꺼낸 것은,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반사적인 시험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면 시놉 시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소년은 그저 스노우가 슬쩍 내민 손을 잡고 흔들며 경쾌하게 말할 뿐이었다.
“난 피터! 갑자기 이런 곳에 떨어진데다 다들 어른들 뿐이라 어떻게 해야 했는데, 나랑 같은 아이도 있어서 다행이야! 친하게 지내자!”
“으, 으응.”
신나게 맞잡은 손을 붕붕 흔들며 하는 피터의 말에 스노우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스노우는 어째서 피터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변으로 인해 이야기의 중간에 갑자기 라이브러리 월드로 소환되는 경우는 이젠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피터라는 이 소년은 그런 식으로 얼마 전에 이곳에 도착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피터는 스노우의 팔을 멋대로 잡아 끌며 신난다는 듯 외쳤다.
“그럼 같이 놀자! 뭐 하고 놀까? 모험 놀이? 해적 놀이? 친구랑 노는 건 오랜만이라 신나!”
“친구…?”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친구라고 부르는 거지. 스노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생각에 빠져 있기에는 ‘친구’라는 단어가 주는 낯선 느낌에 놀랐다. 스노우에게 그런 존재는 없었으니까.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친한 척 당해 수줍은 것도 있었다. 평소 자신의 지위와 책임감에서 ‘놀이’ 라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한때는 왕자, 그 다음은 구국의 영웅, 마지막으로는 사장에 이르기까지의 체면이 논다는 것에 묘한 부끄러움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스노우는 신난다는 듯 웃는 피터의 얼굴을 보고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는 그런 것은 다 상관 없는 거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피터에게 있어서 스노우는 그저 ‘스노우’라는 이름의 또래 소년일 뿐이다. 책임감에 거절할 이유도, 체통에 꺼려할 이유도 없다. 이 소년과 있는 동안 만큼은 자신도 평범한 소년이 되어도 좋다.
스노우는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기뻤다.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까.
“피터?”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지만, 피터는 자리에 없었다. 스노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작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 사이에 피터의 생활에 대해서는 익숙해졌으니까. 스노우는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공원 중심부에서 조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인적이 드문 수풀 사이의 공간이 나온다. 피터는 그곳을 자신의 집으로 삼고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자, 스노우의 시야에 익숙하지만 여전히 기묘하게 느껴지는 건축물이 들어왔다. 아니, 저걸 ‘건축물’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스노우는 여전히 그 의문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겉모습은 분명 건축물로 보인다. 그것도 무려 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즈는 ‘집’이라고 부르기도 부족하고, 아이들의 비밀기지 정도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재질도 마찬가지다. 그야 골판지로 만들었으니까. 그것도 누군가 버린 것들을 주워와 이어 붙인 것이 분명한.
이 ‘상자성’이 피터의 집이었다.
언젠가, 스노우는 피터에게 집을 구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심지어는 피터에게 자신이 집을 마련해주겠다는 이야기도 꺼냈었다. 하지만 피터는 그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이변으로 인해 등장인물이 늘어나고 자원을 나눠야 하는 지금에는 비록 이야기 속에서는 어린이였다고 해도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피터는 그것조차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러기 싫으니까.
스노우는 그런 피터가 가끔은 부러웠다. 단순한 면에서도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에도.
뭐, 피터는 영원히 어린아이인 인물이니까. 스노우는 가끔씩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변이 해결되었을 때 모두가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이야기들을 모아둔 거대한 도서관이 있다. 스노우는 그곳을 통해 피터의 이야기를 이미 알아뒀다. 그렇지만 동시에 스노우는 그것만이 피터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피터? 있어?”
스노우는 상자성 안을 향해 말했다. 이 시간이면 피터는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잠깐 어딜 간 건가? 약속 장소로 뒤늦게 가고 있었는데 어긋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대답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 여기 있어!”
스노우가 고개를 돌리자, 나무 뒤에서 피터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노우는 피터의 쪽으로 다가갔다.
“약속 시간이 됐는데 뭐 하고 있었어?”
“어, 벌써 그렇게 됐어? 미안! 사부님이 없어도 훈련을 해두려 했거든!”
시원하게 대답하는 피터의 대꾸에 스노우는 피식 웃어버렸다. 피터는 자신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스노우는 편하게 나무에 기대 서며 말했다.
“스매시 레전드가 중단됐는데도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다시 시작되면 내가 반드시 이길 테니까!”
피터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스매시 레전드. 그것은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개최된 대회.
어떠한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비보, ‘라이트 오 라이트’를 걸고 일어나는 싸움. 대회를 통해 라이브러리 월드는 이야기들 사이의 사소한 싸움들을 멈추고, 이변이 해결되기를 바라며 불안을 떨쳐내려 하고 있었다. 피터도, 그리고 스노우도 그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최근 이변으로 인한 여러 사건과, 그로 인해 경기장의 안전성 문제가 생겨 잠시 중단된 상태였지만, 스노우가 보기에 피터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스노우가 말없이 있자, 피터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아직도 내가 대회에 참가하는 게 불만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스노우는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속마음은 대답과는 달랐다. 이 이상 화제가 이어지지 않도록 스노우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신디는 아직 안 왔어? 약속시간에는 늦는 법이 없는데.”
“응, 아직 안 왔어. 혹시 약속을 까먹은 거 아닐까?”
“그건 아닐걸. 신디는 피터 너랑은 다르니까.”
“너무하네.”
스노우의 시원한 대답에 피터는 불만이라는 듯 볼을 부풀렸다. 스노우는 그런 피터의 반응에 무심코 웃어버렸다.
“뭐, 아직 시간은 이르니까 좀 기다려보자. 아마 급한 일이라도 있던 거겠지.”
“어디보자… 여기서 꺾어서…”
같은 시각, 시놉 시티 하층.
신디는 지도와 주위를 살피며 길을 확인한 뒤, 지도를 접어 레그 파우치에 집어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참, 하필이면 이런 날에 긴급 배송이라니.”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피터만 제외하면 누구든 그렇다. 신디는 자신의 빠른 발을 살려, 시놉 시티에서 택배를 배달하는 ‘러너 래빗’에서 일하고 있었다.
원래 오늘은 미리 스노우에게 연락을 받고 휴가를 내놓은 상태. 하지만 아침에 하층으로 보내야 할 급한 택배가 있다는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신디는 그 한 건만을 처리하기로 했다. 시놉 시티에서 누구보다도 빠른 사람은 바로 신디였으니까.
“으, 하층은 별로 오기 싫은데.”
지도로 본 대로 길을 찾아가며 신디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시놉 시티는 크게 세 층으로 구분된다. 다양한 회사들이 있고, 시놉 시티나 라이브러리 월드를 관리하는 곳이 많은 고급진 상층.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하층. 그리고 그 밑에 하층.
하층은 본디 시놉 시티에서 만들 계획이 없던 구역이었다. 정확히는 그곳에 사람이 살 것을 상정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상층과 중하층에서 오는 각종 폐기물을 처리하거나, 생활에 필요한 처리장이나 인프라를 설치하기 위한 공간. 하지만 시놉 시티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모여들자, 계획된 중하층만으로는 그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집이 부족해지고, 시놉 시티의 문화와 기술은 이야기 속과 너무 이질적이라 적응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 ‘악당’이었던 자들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꺼려지기도 했다. 그렇게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밀려난 이들은 이윽고 하층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았다.
계획도 뭐도 없이 마구잡이로 지어진 건물들, 복잡하고 지저분한 길과 원래 공간을 차지하던 하수관이나 파이프 등등. 거기에 계속해서 하층의 거주민들이 새로운 건물을 세우거나, 기존에 있던 것을 바꾸기 때문에 심하게는 올 때마다 길이 바뀌기도 한다. 택배 배달을 하는 신디로서는 꺼려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하층은 위험하기도 하고…’
신디는 속으로 생각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힐끔거리며 살폈다.
하층에 사는 모두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중하층에 머물 수 없는 이들도 있으며, 이야기 속에서 악당이었다고 해도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개중에는 본성을 숨기지 않거나,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음에도 ‘악당’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 앙심을 품은 이들도 있다. 거기에 하층은 라이브러리 월드의 치안을 지키는 H.U.N.N.T나 시놉 시티 자경단도 잘 찾지 않는 곳, 많은 범죄조직들도 존재한다.
“...응?”
빨리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신디는, 골목을 돌자 드러난 광경에 발을 멈췄다.
지도에는 분명 길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며칠 전 왔던 기억으로도 길이었다. 하지만 지금 신디의 눈 앞에는 합판 등등을 붙여 만든 높은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으엑…”
이러면 한참 돌아가야 할텐데. 실망을 소리로 해소하고 신디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잃었나보자, 배달부 아가씨?”
신디는 깜짝 놀라 돌아보며 택배 상자를 몸 뒤로 숨겼다. 방금 신디가 지나온 길로 세 명이 길을 막고 있었다. 여러 동화에 등장하는 요괴인 고블린 들이었다. 작은 키에 녹색 피부, 뾰족한 귀. 커다란 나무 몽둥이를 든 고블린과 쇠파이프를 든 고블린 사이로 아무 것도 들지 않은 고블린이 한 걸음 걸어나왔다. 음흉하게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이쪽 길은 어제 공사로 막혀서 말이야.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면 길을 알려줄 수도 있는데?”
“아니,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아. 내가 찾아가면 되니까.”
신디는 한 걸음 물러나며 대답했다. 아무 것도 들지 않은 고블린은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아, 취소. 고블린은 등 뒤에서 단검을 꺼냈다. 신디의 기준에서는 크지 않았지만, 덩치가 작은 고블린이 잡자 제법 그럴듯한 모양이 나왔다. 아니,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닌데. 신디는 고개를 붕붕 내저으며 당황을 지워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하층에 찾아온 손님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 뿐이라니까?”
“아니면 우리가 대신 배달해줄 수도 있어. 아니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줄 수도 있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걸 내놓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한 걸음씩 신디에게 다가오는 고블린들. 신디는 뒤의 벽을 의식하며 다시금 물러났다. 등 뒤는 막혔고, 앞으로 도망쳐야 하나? 신디는 자신의 속도에 자신이 있었다. 좁은 골목을 세 고블린이 완전히 막고 있지만, 한 순간의 빈틈만 만들면 그 사이로 피해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빈틈을 만드는 거지만.
싸울까? 이래봬도 신디는 스매시 레전드에도 참가하는 선수다. 저 고블린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회에서 마주치는 강자들보다 강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치는 건 싫고, 그러다 택배가 상하거나 하는 것은 배달부로서 용납할 수 없다.
‘으으, 어떻게 해야 하지?’
신디가 고민하는 사이, 고블린들은 킬킬거리며 신디를 벽에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이상 늦어지면 피터와 스노우와 했던 약속이 취소될 텐데.
“이런이런, 곤란한 모양이구나?”
그때, 신디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신디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신디는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손은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당신은…”
“켁…”
신디와 고블린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고블린들은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위, 위치 퀸…”
“그래, 내가 바로 위치 퀸이란다.”
고블린들의 말에, 위치 퀸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 퀸. 그 이름과 존재를 모르는 이는 이 라이브러리 월드에 존재하지 않는다.
악의 조직, 움브라의 수장. 라이브러리 월드를 관리하는 조직, ‘현자회의’에 반기를 드는 유일한 인물. 모든 악당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 자체도 위치 퀸과 움브라가 일으킨 것이라고도 한다. 세상 그 자체를 흔드는 마녀들의 왕, 공포의 대상.
분명히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벽으로 막혀있는데도, 아무런 기색도 없이 나타났다. 마치 자신이 나타날 수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듯. 그 등장만으로도, 그 존재만으로도 고블린들은 압도당했다. 도움을 받는 신디조차 갑자기 나타난 위치 퀸에게 놀라고 있었으니까. 벌벌 떠는 고블린들을 보며 위치 퀸은 말했다.
“미안하구나, 너희들을 탓할 생각은 없어. 우리는 악당, 그리고 여기는 시놉 시티의 하층.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저 손가락질 하는 이들이 모인 곳. 그러니 이런 일을 해도 나는 탓할 수 없지. 무엇보다 나는 악의 조직, 움브라를 이끄는 자 아니겠니?”
위치 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자애로웠다. 무시무시한 악당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하게 귀에 남는 듯한 목소리에는 그렇지만 거스를 수 없는 힘이 담겨있었다. 위치 퀸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나랑 아는 사이라서 말이야. 너희들이 위협하는 걸 그냥 보고 넘길 수는 없었단다. 그러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 오늘은 그만 돌아가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렇게 해주면 나도 너희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거든.”
말을 마치며 위치 퀸은 빙긋 웃었다. 위협의 기색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말.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힘과 의미를 오해할 이는 없었다. 고블린들은 위치 퀸이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신디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 저기.”
위치 퀸이 말없이 자신을 지나쳐 걸어가자, 신디는 다급히 말을 걸었다. 위치 퀸은 느릿하지만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신디를 돌아봤다.
“고, 고맙습니다 친절한 마법사 님. 이번에도 도움을 받았어요.”
“후훗, 그렇게 어렵게 대할 거 없단다. 대회에서도 몇 번이나 본 사이 아니니?”
위치 퀸은 신디의 말에 웃고는 마저 몸을 돌려 신디를 마주 바라봤다.
“그렇지만 저한테 유리구두를 주신 것도 마법사 님이고, 처음 라이브러리 월드에 왔을 때도 도와주셨잖아요.”
모두가 무시무시한 악의 화신이라고 하는 위치 퀸이었지만, 신디에게는 그런 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신디에게 있어서 위치 퀸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도와주는 ‘친절한 마법사’ 였으니까.
이야기 속에서, 신디는 처음 위치 퀸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때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지만. 혼자 멋진 옷이 없어 무도회장에 들어갈 수 없던 신디는, 위치 퀸의 도움으로 멋진 드레스와 유리구두를 받아 무도회장에서 상냥한 새엄마와 착한 새언니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자신에게 반해 끈질기게 구애하는 왕자를 때려눕히고 도망칠 수 있던 것도 유리구두 덕분이었다. 비록 그 직후 홀로 라이브러리 월드에 떨어져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그 앞에 나타난 것도 위치 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려무나, 신디.”
낯선 세계, 아는 이는 하나 없이 혼자 뿐인 상황.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던 신디의 앞에 나타난 위치 퀸은 마법을 걸어주며 말했다.
“네가 이곳에 홀로 오게 된 것은, 라이브러리 월드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야. 너의 새엄마와 새언니들은 아직 이야기에 갇혀 있겠지. 당장은 돌아가서 만날 수는 없어. 하지만 분명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란다.”
위치 퀸이 손을 움직이자, 그에 반응하듯 신디의 발에 신겨진 유리구두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놀란 신디가 당황하는 사이, 빛이 사라진 유리구두는 지금도 신고 있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새 신디가 입고 있던 드레스도 보다 라이브러리 월드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바뀐 뒤였다.
“곧 ‘이변’을 해결하기 위한 대회가 열릴 거란다. 그곳에서 우승하면 무슨 소원이든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게 될거야. 그 힘이 있으면, 네가 그렇게나 보고 싶어하는 새엄마와 새언니들도 다시 만날 수 있어. 네가 원하던 모습 그대로 말이야. 그때까지는 너 혼자의 힘으로 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한단다.”
신디는 그 말을 믿었다. 신디에게 눈앞의 마법사는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늘 도와주는 존재였으니까.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신디는 그 착하고 친절한 마법사가 사실은 위치 퀸이라는 사실과, 악의 조직이라는 ‘움브라’의 수장으로서 여러 나쁜 짓을 꾸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던 신디였지만, 계속된 이야기들로 사실 위치 퀸이 나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렇지만 역시, 신디는 모두가 뭔가 오해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그 사악한 위치 퀸이 자신에게 늘 도움을 주는 걸까?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신디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이야기 속에서의 삶이 불행했던 이들은 위치 퀸이 이야기하는 ‘운명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세상’을 원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현자회의와 7D가 자신들만의 규칙을 강요하고 있으며, 위치 퀸과 움브라는 그런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는 존재라고 믿었다. 아직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위치 퀸과 움브라는 어느새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이들로 믿어지기 시작했다.
신디도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친절한 위치 퀸이 사람들을 납치하고, 실험의 재료로 쓰거나, 더 나아가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으니까.
“라이브러리 월드에서의 생활은 어떠니. 유리구두는 여전히 도움이 되니?”
“네! 이 유리구두 덕분에 이렇게 택배 배달부로 지내고 있으니까요. 어려운 일은 없어요!”
“그렇구나, 다행이야. 힘든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주렴. 나는 너의 편이니까. 그리고 네가 있을 곳이 없다면, 움브라는 언제든 너를 환영할 거야.”
신디의 기운찬 대답에 위치 퀸은 웃으며 대답했다. 신디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뇨, 그건 괜찮아요. 늘 도와주신다고 계속 도움만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새엄마와 언니들에게 돌아갈 때까지, 아니면 가족들도 이곳에 올 때까지, 제대로 제 힘을 살아서 자랑하고 싶거든요!”
“후훗, 신디는 씩씩하구나. 그 생활력이 네 힘의 원천일까? 그렇다면 그렇게 하렴. 그래도 정말 필요로 할 때는 부담 갖지 말고.”
“그보다 마법사 님이야말로 괜찮으세요? 다들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면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해줄까요? 나쁜 사람이라는 건 오해라고요!”
신디는 기운 차게 말했다.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위치 퀸은 신디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괜찮단다. 자, 그보다 빨리 가야하지 않을까?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말이야.”
“아, 맞다!”
위치 퀸의 말에 신디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미 약속 시간에 늦는 건 확실한데, 이렇게 정신을 팔리면 기다리다 지친 둘이 먼저 떠날 가능성도 있었다. 신디는 허둥지둥 짐을 챙겼다.
“어라? 근데 제가 약속이 있는 건…”
문뜩 떠오른 의문에 신디는 물어보려 했지만, 고개를 돌리자 이미 위치 퀸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생각보다 늦네… 연락 없이 늦을 애가 아닌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한편, 다시 시놉 시티 공원.
스노우는 놀랍게도, 그 무렵 신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추리하고 있었다. 그건 오랫동안 모든 상황을 의심하고 생각이 많아야 했던 스노우의 삶 때문에 얻은 능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노우의 걱정에 피터는 휘두르던 검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에이, 설마!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신디는 강한데다 빠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을 거야. 유리구두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방향은 달랐지만, 피터는 피터 나름대로 정확히 결과를 예측했다. 이쪽의 경우는 그저 우연히 맞춘 것에 불과했지만. 스노우는 피터의 말에도 그다지 마음이 놓이진 않았지만, 피터는 다시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가 도와주러 달려갈 테니까!”
시원한 미소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 그 반응에 스노우는 잠시 놀랐지만, 이윽고 웃어버렸다. 그래, 약속시간에 늦는다고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피터의 말대로 신디는 스매시 레전드에서 맞서 싸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째서인지, 당당하고 자신 있는 피터의 반응을 보자 스노우는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일에도, 이 일이 아니라고 해도.
“그 검, 제법 익숙해졌구나.”
스노우는 피터가 든 거대한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키 만큼이나 거대한, 소년이 들고 휘두를 것이 아닌 검. 예전에는 검에 휘둘리는 것 같던 피터는, 어느새 스노우가 보기에도 제법 모양이 잡혀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검술을 수련한 스노우의 기준으로도.
‘피터의 스승님… 마스터캣 님의 가르침도 좋았을테고, 피터의 소질도 있었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노력이었겠지.’
스노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검의 이름은 갈고리검. 그 검은 원래 피터의 것이 아니었다. 피터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숙적, 지금은 라이브러리 월드의 구름바다를 주름잡는 악명 높은 해적선장, 후크의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겁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계속 연습하고 써왔으니까! 이제는 예전에 쓰던 단검 만큼이나 익숙해졌어.”
피터는 여전히 검을 휘두르며 활기차게 외쳤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습을 멈추지 않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기에 적응하려는 행동이라고 스노우는 생각했다.
“피터… 혹시, 예전에 싸웠던 거, 기억해?”
스노우는 주저하면서도, 결국 입을 열었다. 어쩐지 지금 말하지 않으면 영영 이야기 할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기에. 어쩌면 그건 스매시 레전드가 중단되었기에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이야기 할 수 없을 거라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피터는 계속해서 휘두르던 검을 멈췄다.
그건 피터와 스노우, 신디가 만나 친해지고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때의 일이었다.
‘황금알 거위’와 얽힌 모험을 함께 하고 얼마가 지나서일까, 피터는 스노우와 신디를 보며 툴툴거렸다.
“둘 다 좋겠다. 멋진 무기가 있어서.”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피터?”
유리구두를 살펴보던 신디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돌리자, 피터는 유리구두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봐봐. 신디한테는 그런 멋진 신발이 있잖아? 엄청 빠른 데다가 강해질 수 있잖아. 그리고 스노우한테도 무슨 마법의 검이 있고. 뭐더라… 그… 아무튼 복잡한 이름인데 뭐든 슥삭! 하고 벨 수 있었고!”
어려운 이름을 떠올리기 힘들었는지 끙끙대던 피터는 포기하고는, 허공에 칼을 휘두르듯 팔을 움직이며 말했다. 한가하게 책을 읽던 스노우는 피터의 말에 시선을 옮겼다. 피터는 신디와 스노우가 자신을 바라보자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난 번에 구미랑 부하들이랑 싸울 때, 역시 내가 쓰던 단검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너희들은 유리구두랑 그… 검이 있으니까 여우랑 너구리를 금방 쓰러트렸잖아.”
“어쨌든 그때 너도 구미를 이겼잖아?”
신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야 그 전의 싸움에서는 위태로웠지만, 악당들의 두목이었던 구미와의 싸움은 결국 피터가 이겨서 신디는 피터의 실력으로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내 단검만으로는 어려웠다고! 마침 널판지가 떨어져 있지 않았으면 졌을지도 몰라.”
스노우는 후에 피터가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해 대강의 사정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7D의 사장으로서 그럴 수 있는 정보력과, 전해들을 수 있는 수단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스노우는 잠자코 피터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피터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신디는 피터의 말에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무기가 필요하다는 거야? 피터, 너 또 모험이라고 위험한 일을 하려는 건 아니지?”
“이제 곧 스매시 레전드가 시작되잖아! 무기가 없으면 참가할 수 없단 말야!”
피터는 억울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신디는 그제야 피터가 하려는 말이 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시놉 시티, 나아가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곧 개최될 ‘스매시 레전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어딜 가도 스매시 레전드에 대한 이야기들 뿐일 정도로.
이야기들이 붕괴하고,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이야기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사건,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 그리고 그 이변 때문에 여러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모여, 각종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문제들. 스매시 레전드는 그런 상황들을 타개하기 위해 현자회의가 내놓은 해결책이기도 했다.
우승자에게는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을 수 있다는 힘을 준다는 이야기, 그리고 스매시 레전드에 참가해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이미 많은 이들이 대회 참가를 신청하고 있었다.
“너희는 무기도 있고, 싸울 수도 있으니까 이미 참가하기로 했잖아. 난 못했고.”
툴툴대는 피터의 말대로, 이미 신디와 스노우는 대회에 참가신청을 한 뒤였다. 주최측과 가까운 입장인 스노우는 당장 개최와 동시에 참가하진 않을 예정이었지만, 그 사실은 스노우 혼자만 아는 사실이었다.
“피터 너는 왜 대회에 참가하고 싶은 건데?”
피터가 왜 불만을 가졌는지 이해한 신디가 물었다. 피터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야 ‘네버랜드’로 돌아가려고 그러지. 여기도 재밌긴 하지만, 역시 난 내 이야기가 더 편해.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가서 또 즐겁게 모험을 하며 지낼 거야.”
신디는 피터의 대답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신디 자신도 새엄마와 새언니들이 기다리는 이야기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참가했으니까. 시놉 시티에서 만난 인연도, 생활도 재밌었지만,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이야기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신디도 피터와 같았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라이브러리 월드의 많은 등장인물의 소원이기도 할 테니까. 라이브러리 월드의 발전된 기술과 생활은 즐거웠지만, 적응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고 적응한 이들 역시 원래 ‘자신의 장소’ 였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늘 품 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후크, 그 녀석도 대회에 참가했잖아? 스매시 레전드에서 후크를 이겨서 내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원래 이야기 속에서는, 피터가 늘 이기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는 사정이 변했다. 후크는 사이보그가 되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유명한 해적이 되어 있었다. 반면 피터는 아무도 모르는 소년. 피터는 후크에게 진다는 사실도, 다른 의미에서도 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 나도 좋은 무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디서 그런 거 못 구할까?”
“하나 사면 어때? 시놉 시티에서도 대장간 같은 곳은 있잖아.”
“에이, 싫어. 나도 너희들처럼 뭔가 특별한, 나만의 무기가 있으면 좋겠어.”
신디는 입을 삐쭉 내미는 피터의 투정에 그저 웃었다. 그 모습이 장난감을 원하는 어린아이의 투정 같다고 느꼈으니까. 신디가 느끼기에, 피터는 속마음은 자신보다 어린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피터의 그런 마음이 본인에게는 진지한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나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반면 스노우는 피터의 마음과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적을 위해 더 큰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서도, 라이브러리 월드에 와서도 스노우가 계속해서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했으니까. 누나를, 위치 퀸을 쓰러트리기 위해 스노우는 더 큰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이었으니까.
“피터.”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네가 스매시 레전드에 참가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
스노우는 침착하게, 하지만 진지한 눈빛으로 피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예상 외의 말에 신디가 놀라기도 전에, 피터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방금 전 신디와 대화할 때처럼 장난끼 어린 목소리가 아니었다. 신디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 둘을 말리려 했지만, 스노우가 말을 꺼내는 것이 더 빨랐다.
“네 말대로 피터 너는 무기도 없고, 지난 번을 생각하면 대회에 나가도 이기기는 힘들 거야. 이야기로 돌아가는 목적도, 다른 누군가가 우승해도 달성할 수 있을 테고.”
신디는 스노우가 그래도 부드럽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노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신디가 놀랄 정도로 신랄했다. 피터는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래도 그때도 난 이겼어! 그리고 무기만 있으면 충분히 싸울 수 있고!”
“그럴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유가 그것 뿐이라면 피터 너는 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
스노우는 두려웠다. 신디가, 그리고 피터가 자신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스매시 레전드의 개최목적과 이유를 아는 스노우에게 있어서, 대회는 라이브러리 월드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운명’이 걸린 싸움이었다. 위치 퀸과 승부를 겨루고, 마침내 그녀를 쓰러트려야만 하는 운명.
스노우가 원한 운명은 아니었다. 하지만 운명이란 선택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스노우는 사명감이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부터 스노우와 함께 싸우던 이들 중에는 그 운명에 휘말려 피해를 본 이들이 가득했다.
운명을 다하기 위해서, 위치 퀸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앞으로도 스노우는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을 상처주게 될 것이었다. 그 사실은 스노우도 알고 있었고,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노우는 그 대상에 자신의 친구들은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다. 처음으로 가진 친구들이었으니까.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도 다가온 이들이었으니까.
“...됐어!”
스노우의 말에 피터는 주먹을 불끈 쥔 채 그렇게 외치고는, 모임 장소를 뛰쳐나갔다. 뒤늦게 신디는 피터를 말리려고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따라갈 수 있다고 느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신디는 스노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스노우!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신디의 말에도 스노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디는 더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야 나도 피터가 대회에 나간다고 하는 건 좀 걱정이 되긴 해. 하지만 피터도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그리고 대회니까 안전할 테고.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신디.”
부드러운 스노우의 목소리에 신디는 말을 멈췄다. 피터가 떠난 뒤로 허공을 바라보던 스노우는 신디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 유리구두는, 누구에게 받은 거야?”
신디의 몸이 살짝 떨렸다. 스노우는 신디를 바라보며 말했다.
“위치 퀸이라는 사람, 알고 있어?”
“그, 그거야 시놉 시티에 살면 누구나…”
“신디.”
더듬거리며 말하려던 신디는 스노우의 말에 말을 멈췄다. 신디가 느끼기에 스노우의 목소리는 어딘가 피곤해보였다.
“그 사람은 신디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스노우의 말에 신디는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고 있진 않았으니까. 신디 역시 모두가 이야기하는 위치 퀸과, 자신이 아는 위치 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노우가 그걸 이렇게 직접 이야기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신디 너도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
신디도 알고는 있었다. 스노우가 피터를 걱정하는 것처럼, 자신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신디는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신디에게는 싸워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젠 신디도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이유가 있는 것처럼, 피터에게도 그럴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스노우와 마찬가지로.
“스노우, 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 그리고 너한테 스매시 레전드 대회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신디는 그렇기에 침착하려 했다. 신디는 최대한 차분하려 노력하며 말했다.
“하지만 너에게 이유가 있듯이, 나나 피터에게도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가 있어. 걱정은 고맙지만, 우리가 대회에 참가하고 말고는 스노우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설령 네가 7D의 사장님이라고 해도 말이야.”
“역시 신디 너는 알고 있었구나.”
스노우는 피식 웃었다. 신디는 그 웃음이 어딘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런 스노우를 위로하기에는, 신디 역시 감정의 여유가 없었다. 신디는 돌아서며 말했다.
“잠시 서로 머리를 식히자, 스노우. 대회장에서 만나자.”
스노우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자신을 붙잡지도 않았다. 신디는 그 사실이 슬펐다.
그건 마치 엊그제 일인 것 같기도, 몇 년이나 흐른 일 같기도 했다. 스노우는 기억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그 뒤로 한동안 셋의 관계는 어색했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되고, 서로 적으로도, 같은 팀으로도 만나며 어색하던 관계는 다시 원래대로의 친구로 돌아왔다. 하지만 스노우는 자신이 그렇듯, 그 감정이 피터와 신디에게도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스노우는 대회가 중단된 지금, 그때의 이야기를 피터와 해야 한다고 느꼈다. 스노우는 피터의 대답을 기다렸다.
“...으음.”
땅에 꽂아둔 갈고리검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생각하던 피터는 몸을 일으켰다. 스노우는 피터가 뭐라고 이야기할지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됐다. 피터는 아무 감정도 없다는 듯,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냥 검만 휘두르니까 뭔가 느낌이 안 사네.”
“응?”
예상하던 어떤 대답과도 달라서, 스노우는 무심코 소리를 내버렸다. 피터는 그 사이 갈고리검을 꺼내 쥐고는, 씩 웃으며 스노우를 향해 손짓했다.
“연습 상대 좀 해줄래? 대회가 중단되어서 싸울 일이 없으니까, 감이 안 나서.”
“아니, 그게… 윽!”
당황하던 스노우는 나무에 기댄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자신에게 날아오는 갈고리검에, 스노우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갈고리검은 아슬아슬하게 스노우와, 스노우가 기대 섰던 나무를 피해 허공을 갈랐다. 피터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오, 그래! 이 느낌이야!”
“피터, 갑자기 무슨…”
여전히 당황한 스노우는 피터에게 말하려 했지만, 피터는 대답 대신 계속해서 갈고리검을 휘둘렀다. 피터의 공격은 날카로웠고, 검술에 익숙한 스노우도 이대로 계속 피하는 건 위험하다고 느껴졌다. 결국 스노우는 허리춤에서 자신의 검, KISS를 꺼냈다.
“피터! 자꾸 이러면 화낼 거야!”
“헤헷, 그런 이야기는 날 이기고 하라고! 아자!”
시놉 시티 공원의 구석,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그렇게 피터와 스노우는 검을 나눴다.
휘두르고, 피하고, 막고, 다시 휘두른다. 둘의 검은 연습이라고 보기 힘든 매서움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둘의 싸움은, 만약 누군가 봤더라면, 마치 친구끼리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서로 휘두르고 피하기를 한참, 검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며 피터는 말했다.
“봐! 스노우! 나는 이제 약하지 않아!”
이를 악 문채 피터의 힘과 갈고리검의 무게를 견디던 스노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터는 웃는 얼굴인 채로 말했다.
“나는 네가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냐! 누가 지켜주고, 돌봐주고… 그런 건 싫어! 이야기 속에서도 싫었고, 여기서도 싫어!”
놀라 방심한 탓에 힘겨루기에서 밀리자, 스노우는 망설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피터의 갈고리검이 지면에 박혔다. 피터는 어려움 없이 검을 빼내 고쳐 쥐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대회에 참가하지 말라든가, 그런 말은 못 하겠지? 대회에서도 내가 이기기도 했고! 뭐, 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내가 또 이길 거야!”
피터의 미소에는 그림자 같은 것은 없었다. 그 눈빛은 그저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스노우는 자신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피터가 자신의 싸움에 휘말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은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피터를 싸움에서 멀리 두고 싶어하는 것은, 피터에게는 배려가 아니라 무시로 느껴지는 거겠지. 친구라는 건 그런 배려가 필요 없는 존재니까.
“그래, 내가 잘못했어.”
그렇기에 스노우는 그저 웃으며, 검의 스위치를 내렸다. 그러자 에너지로 된 스노우의 검신이 사라졌다. 피터는 양 손을 번쩍 들며 신난다는 듯 외쳤다.
“아싸! 내가 이겼다!”
“야! 너희들! 또 싸우고 있는 거야?”
그때 공원 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피터와 스노우는 고개를 돌렸다. 신디와 다른 소녀 하나가 둘의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 참, 내가 없으면 늘 싸운다니까.”
“저, 저기. 싸움은 안 좋다고 생각해. 분명 서로 이야기하면…”
양 손을 허리에 얹으며 한숨을 쉬는 신디. 그 옆에서는 누이가 걱정스러운 듯 말하고 있었다.
“어라? 누이도 같이 왔어?”
피터의 질문에 신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침 오는 길에 보이더라고. 쉬는 날이라 공원에서 낮잠 자려고 했대.”
“그런데 신디한테 들으니까 셋이서 놀러가기로 했다고 해서, 나도 따라가도 될까 부탁하려고 왔어.”
누이. 셋과 마찬가지로 스매시 레전드에 참가한 선수였다. 같은 나이대의 또래이기도 하고, 친구가 없는 것은 갑작스럽게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누이도 마찬가지였던지라 넷은 몇 가지 사건 덕분에 친구가 되었다. 스노우는 싸우느라 더러워진 옷을 털며 신디에게 물었다.
“오늘은 왜 늦은 거야? 신디 네가 약속에 늦는 건 드문 일인데.”
“아, 그게… 아하하. 아침에 갑자기 급한 배달이 들어와서.”
신디는 머쓱하다는 듯 대꾸했다. 위치 퀸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도 스노우의 걱정만을 키울 일이기에, 신디는 그 사실은 숨기기로 했다. 이제는 둘이 남매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으니까. 신디는 스노우에게 이 이상 걱정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둘은 왜 싸우고 있던 거야?”
누이의 질문에 피터와 스노우는 서로를 돌아보고는, 걱정하는 누이에게 말했다.
“싸운게 아니라 잠깐 대련했던 것 뿐이야. 대회가 쉬는 동안 감을 잃을 것 같다고 피터가 부탁했거든.”
“그렇구나.”
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본디 누이는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이고, 싸우는 대회인 스매시 레전드에 참가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알기에 스노우는 피터와 싸운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아마 피터는 싸움이라는 생각도 못 했을 테고.’
“둘 다 열심이네. 그래서 누가 이겼어?”
“오늘은 내가 이겼어!”
별 감흥 없다는 듯 한 신디의 말에, 피터는 기다렸다는 듯 즐겁게 외쳤다. 신디는 사실이냐는 듯 스노우를 돌아봤고, 스노우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긍정했다.
“피터가 이기다니 드문 일이네. 대회에서는 보통 스노우가 이겼는데. 혹시 봐준 거야?”
“뭐, 여기서 내가 이기면 피터가 정말 감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스노우 너! 그렇게 핑계 대기야?”
스노우가 놀리듯 말하자, 피터는 바로 흥분했다. 누이는 그런 셋의 모습을 보고 키득거렸다. 싸움 자체는 싫어하지만, 지금 둘의 분위기는 ‘싸움’보다는 ‘놀이’로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어디로 놀러갈 생각이었어?”
누이의 말에 신디는 생각하듯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음, 글쎄? 모처럼 ‘올드타운’으로 가는 것도 좋겠고… 아, 거긴 요즘 사건이 있었지. 누이 너도 꼈으니까 ‘도원경’ 지역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도원경, 또는 ‘제너드’로 불리는 지역은 누이의 출신 이야기와 비슷한 지역의 이야기들 출신이 많은 동네였다. 오래된 전통과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인 장소들이 공존하기에, 시놉 시티 내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이자 놀 곳이 많은 장소였다.
“굳이 나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는데.”
“응? 괜찮은데. 거기 놀러간 것도 오래 됐고. 어쩌면 쿠레나이… 아니, ‘제너드맨’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피터 너는 그런 거 정말 좋아하는구나. 뭐, 휴일이니까 행사 할 수도 있겠네.”
손을 내젓는 누이의 말에 피터와 스노우는 가볍게 이야기했다. 둘도 싫지 않다는 티를 내자, 신디는 손벽을 쳐서 주위를 모으며 말했다.
“그럼 결정됐네! 모처럼 쉬는 날이니까 재밌게 놀자! 곧 대회도 다시 시작될 테니, 이런 기회에 잘 놀아둬야지!”
곧 대회가 다시 시작된다. 그 사실은 셋에게 각자의 무게를 가졌다. 하지만 피터도, 스노우도, 누이도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신디의 말대로, 그걸 신경 쓰지 않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자, 그럼 출발!”
“저기, 피터. 마스터캣 삼촌은 잘 지내셔? 요즘 현자회의에는 잘 안 보이시던데.”
“응? 사부님? 나도 잘 몰라. 가끔 말도 없이 떠나고는 하니까.”
“신디, 가서 뭘 할까? 우선 점심이라도 먹을까?”
“그것도 좋겠네. 아침부터 배달했더니 배고프거든. 그럼 어디로 갈까?”
넷은 그렇게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들을 나누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머지 않아 다가올 대회 전의, 짧은 휴식을 만끽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