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이야기~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무용담을 만들어낸 전설의 기사, 돈키호테!
그러나 이야기는 끝을 맺고, 모든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돈키호테 역시 라이브러리 월드로 찾아오게 되었다. 그곳은 이야기를 마친 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여독을 풀며,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할 원동력을 얻는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장소. 돈키호테는 그곳에서 마침내 기사의 의무를 벗어버리고, 평범한 시골 영감 알론소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아직 그가 잊혀지길 원하지 아니하였으니!
약하고 상처 입은 어린 망아지 로시난테가 늑대들, 그리고 악의 비밀조직 ‘움브라’에게 쫓기는 것을 구해준 알론소는 다시금 약자를 지키고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방패를 높게 들고 저명한 편력기사 돈키호테로 돌아왔으니, 악인들을 무찌르고 다시금 평화로운 라이브러리 월드를 만들고자 ‘스매시 레전드’에 참가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것이었다!!
108화. 돈키호테가 다시금 풍차의 거인과 맞서 싸워 용감히 행한 멋진 사건과 좋게 기억할 만한 사건들에 대하여.
“보렴, 로시난테! 드디어 마을이 보이는구나!”
우리의 돈키호테가 언덕 끝에 도달하자, 그 너머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 크진 않은 이야기 섬의 한 가운데에는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을 중심으로 한쪽으로는 평야에 밀밭과 무언가가 있던 흔적만이 남은 공터가, 반대쪽에는 자그마한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며칠 만에 본 마을이 반가워, 돈키호테는 로시난테를 어깨에 앉히고 서두른 발걸음으로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지난 며칠간 여러 이야기 섬을 떠돌다 보니, 가지고 있는 식량도 슬슬 바닥이 나서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었다.
아직 라이브러리 월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하자면, 어떤 이야기든 끝을 맞이하면 등장인물들과 함께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공간 중 일부가 섬의 형태로 라이브러리 월드의 하늘에 나타나게 된다.
이 이야기 섬이란 것은 신기하기도 하여, 큰 섬도 있지만 작은 섬도 있고, 이렇듯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더 큰 성이 통째로 자리 잡기도 하는 한편 아무도 없는 잊혀진 무인도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는 시대 역시 다르다 보니, 어떤 섬은 높은 성과 임금님이 사는 한편, 어떤 섬은 동물들이 집을 짓고 살아가기도, 로봇과 거대한 공장이 존재하기도 했다.
본디 라이브러리 월드의 주민들은 이런 이야기 섬들을 하늘을 나는 배나, 혹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생물들의 힘을 빌려 건너다보니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들을 주로 다니지만, 앞선 이야기들에서도 나왔듯이 우리의 돈키호테는 하늘을 나는 범선이니 커다란 엔진이 달린 비행선이니 하는 것들은 질색이었기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며칠을 헤매고 때로는 날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하며 달려왔으니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음? 그런데 이 마을은 뭔가 이상하구나, 로시.”
마을에 도착해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잠을 청하려던 돈키호테였으나, 마을에 다가갈수록 그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마을은 몇 채의 민가로 이루어져 있었고, 집집마다 있는 굴뚝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득한 분위기를 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을로 향하는 길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담장은 허물어진 것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며, 벽에는 금이 가고 지붕을 이루는 기와는 깨져 있었으니, 나 같은 이야기꾼이나 독자 여러분들은 단순히 마을의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렇겠느니 하겠지만 전설의 기사인 돈키호테의 눈썰미를 피할 수는 없었다. 돈키호테는 그 흔적들이 단순히 가난이나 관리가 되지 않아 생긴 흔적들이 아니라, 최근의 싸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 그래, 알고 있단다 로시난테. 아무래도 마을에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으니, 네가 불안에 떠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지만 안심해도 좋단다 로시난테, 내가 같이 있지 않느냐. 우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좀 들어보도록 하자꾸나. 혹시라도 이 편력기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돈키호테는 불안에 떠는 로시난테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하고는, 마을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돈키호테가 마을에 들어가자 거리의 몇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희한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한번 생각해보시라, 아무리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라이브러리 월드에 왔다고 하더라도, 갑옷을 입은 채 거리를 걷는, 그것도 어깨에 망아지를 올린 기사를 살면서 몇 번이나 볼 수 있었겠는가?
“저… 기사, 님은 누구신지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돈키호테가 마을의 중심부에 다다르자, 그나마 가장 큰 집에서 노인이 나와 물었다. 이미 이야기 속은 물론이고 라이브러리 월드에 와서도 수많은 모험을 하며 수많은 마을에 갔던 돈키호테는, 노인이 이 마을의 촌장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나,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 세상에 정의와 기사도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는 떠돌이 편력기사요. 긴 여행길에 지쳐 이 마을에서 여독을 풀려고 하는데, 혹여 하루 머물다 가도 괜찮겠습니까?”
돈키호테가 이름을 밝히자, 촌장은 물론 돈키호테의 등장에 구경을 왔던 사람들 모두 탄성을 내뱉었으니, 우리 독자 여러분도 모두 알고 계시듯 편력기사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가 모인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알아보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 돈키호테는 기쁨을 느꼈고, 그것은 그런 돈키호테의 새로운 애마가 된 로시난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족스럽다는 듯 푸르릉거리는 로시난테를 어깨에 태운 돈키호테에게 촌장은 깊게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오, 기사님! 그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저 단역들이 모여 사는 조그만 마을이라 기사님이 편히 쉬시기에는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기사님이 오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길을 따라 조금 걸으시면 작지만 여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편히 쉬시지요.”
그리하여 돈키호테는 촌장의 말대로 여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관으로 향하는 길에도 자신을 따라오는 시선에 돈키호테는 역시 이 마을에는 무언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지만, 이름 있는 편력기사로서 심증만으로 그들의 고난과 사정을 캐물을 수는 없는 법. 돈키호테는 그저 이름 있는 편력기사로서 기사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슴을 편 채 당당히 여관을 향할 뿐이었다.
여관에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뿐이었는데, 그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는 복장도 분위기도 다른 것이 한눈에 느껴졌다. 하나 뿐인 손님은 마을의 소란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지, 돈키호테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갑자기 갑옷을 입은 기사가 나타난 것에 깜짝 놀랐다.
“진정하시게나, 젊은이! 이 몸은 그저 정의와 기사도를 찾는 곳에 떠돌아다니는 편력 기사, 돈키호테! 그대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돈키호테는 기분 좋다는 듯 웃고는, 깜짝 놀란 청년의 곁에 앉았다. 청년은 갑자기 나타난 기사의 모습에 놀라고 자신의 곁에 앉은 것에 더욱 놀란 모양이었지만, 차마 도망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런데 자네는 풍색도 그렇고, 이렇게 여관에 있는 걸 보니 이 마을 주민이 아닌 것 같군! 나처럼 떠돌아다니는 중이신가?”
청년은 돈키호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갑자기 눈을 뜨니 이곳에 있어서요… 이곳이 이야기 속의 세상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알겠습니다만, 아는 사람도 없고, 여기가 어디인지,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돈키호테가 외쳤다. “그 고약한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의 또 다른 희생자로군!”
이미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본디 평화로워야 할 라이브러리 월드에 각종 문제가 생겨나고, 우리의 기사 돈키호테가 다시금 방패를 높게 들고 여행을 떠나게 된 것도 모두 이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 때문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돈키호테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이야기가 끝을 맞이하면 등장인물들과 이야기 섬은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다. 이것이 원래 라이브러리 월드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사악한 자의 소행인지 그런 법칙은 흐트러졌으니,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등장인물들이 라이브러리 월드에 나타난다거나, 이야기 섬만 덩그러니 나타난다거나, 심지어는 이야기에서 몇몇 등장인물들만 라이브러리 월드에 나타나는 일도 발생했던 것이다.
거기에 가장 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라, 첫째는 그렇게 이변으로 인해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된 이들은 이전에 정상적인 규칙대로 라이브러리 월드에 오게 된 이들과는 다르게 자신들이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라는 것도, 이야기들이 모이는 세계에 왔다는 것을 몰라 혼란을 느끼는 점이었으며, 둘째는 이변으로 인해 모두가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하러 라이브러리 월드를 떠나지도 못한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청년도 그런 이변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자신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모른 채 이 시골 마을이 있는 이야기 섬에 홀로 덩그러니 떨어진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발견된 그는 사람들의 설명과 설득으로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무얼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으니 이렇게 여관에 머물며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네 젊은이! 이제 이 돈키호테가 다시금 정의와 기사도를 높이 세우기 위해 이렇게 여행길에 나섰으니, 이변을 일으킨 사악한 무리들은 용서를 빌며 무릎 꿇을 것이니!”
돈키호테는 가슴을 치며 힘차게 외쳤지만, 여관 안에는 청년뿐이었으며 청년은 돈키호테의 기운찬 외침에 감동을 느끼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돈키호테의 말에 호응해준 것은 어깨 위의 로시난테 뿐이었다.
자신의 말에 청년이 감탄하며 칭송할 거라고 생각했던 돈키호테는, 청년이 그저 한숨을 내쉬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조금 심기가 불편해져 말했다.
“걱정하는 마음이 말 한마디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대는 이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죄송합니다만, 기사님, 저는 기사라는 게 없는 시대에서 와서 솔직히 그렇게 믿음직하게 느껴지진 않는군요. 듣자 하니 그 이변이라는 걸 일으킨 건 강력한 진짜 마법사고, 수많은 악당들도 부하로 이끈다지 않습니까?”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사악한 마법사는 기사를 이길 수 없는 법! 요즘 시대에는 진정한 기사도를 따르며 약자를 비호하고 자신의 레이디를 연모하며 주군을 찾아 떠도는 참된 편력기사가 없기에 모두들 두려워하는 것이라네! 그렇기에 나만이 이 이변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
돈키호테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려 노력하며 외쳤지만, 청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만 기사님,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돈키호테라고 하셨습니다만, 제가 살던 곳에는 기사님의 위명이 널리 알려져 있었어서요. 제가 기사님을 쉽게 믿지 못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뜻인가?”
돈키호테의 질문에 청년은 비꼬듯 말했다.
“제가 들은 기사님의 이야기에서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창을 들고 돌진하셨다거나, 시골 아낙네를 레이디라고 모시며 온갖 문제를 일으키신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스스로는 무패의 둘도 없는 영웅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평범한 영감님으로요. 마지막으로 죄송합니다만 기사님, 그런 기사님이 늑대 떼를 몰아내거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이런 고약한!”
빈정거리는 청년의 모욕에 돈키호테는 화가 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로시난테도 돈키호테가 화가 나 외치는 소리에 푸르릉, 하며 깜짝 놀랐다. 이대로 있다가는 청년이 무사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에 여관 안쪽에서 여관 주인이 나타났다.
청년 혼자 있을 현관에서 말소리가 들렸으니 누군가 왔을 것은 짐작했지만, 그것이 갑옷을 입고 말을 대동한 기사일 줄은 몰랐던 여관 주인은 돈키호테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청년의 말을 들은 여관 주인은 마음을 달래고, 대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역시 하늘이 도우시는군요!”
여관 주인이 말했다.
“안 그래도 마을을 구해줄 사람을 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사님이 와주시다니 안심입니다!”
돈키호테 역시 여관 주인의 등장과 자신의 모습에 기뻐하는 것에, 방금 전까지 청년에게 화를 내던 것은 깔끔하게 잊어버리고 말했다.
“역시나! 그래, 이 편력기사가 해결해야 할 임무가 대체 무엇이요?”
돈키호테는 마침내 누군가 말해준 것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외쳤다. 무릇 기사란 남의 불행을 캐묻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기사인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돈키호테의 말에, 여관 주인은 두렵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마을에 늑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두 발로 걷고 말하는 늑대들이요! 녀석들은 돈이며 먹을 것이며 가차 없이 요구하고는, 내놓지 않으니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지 뭡니까요! 본보기로 삼아 부숴버린 건지 마을 밖의 풍차도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말입니다. 우리 같은 시골 마을 사람들로는 녀석들에게 맞서 싸울 수도 없고, HUNNT도 여기까지 와주지 않을 것 같아서 기사님 같은 분이 오시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라이브러리 월드인 만큼, 당연히 이야기 속의 악당들도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기 마련. 그런 악당들 중에는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만큼은 이야기와는 다르게 평범히 지내는 이들도 있지만, 옛말에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계속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악당들에게 맞서는 정의로운 이들도 물론 있는 법, 그들이 바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나가는 사냥꾼’ 등의 이름 없는 이들이 모인 집단 HUNNT였다.
하지만 라이브러리 월드가 거대해지고 사람들도 많아지며 모든 곳에 HUNNT가 있기 힘들었기에 마을은 그저 구원해줄 사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마침 등장한 돈키호테의 모습에, 촌장을 비롯해 모두는 돈키호테를 정중히 대하며 기대에 부풀었던 것이었다. 그 기대 때문인지, 몰래 돈키호테를 따라와 부탁을 할 순간을 찾던 마을 주민들은 여관 주인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우르르 여관에 들어와 자신들의 고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추수한 걸 몽땅 가져갔어요!”
“풍차가 없어져서 밀가루도 못 만들고 있습니다요!”
“제발 늑대들을 쫓아주세요, 기사님!”
마을 주민들이 한 명당 한 마디씩 고충을 이어가기 시작하자, 금세 여관 안쪽은 아수라장에 가까워졌다. 마을 주민들 모두가 늑대떼에 억울한 점이 한둘이 아니기에 한마디씩 하던 말은 이윽고 두 마디씩, 세 마디씩 늘어났으며, 주민들 모두 제멋대로 떠드니 한 번에 대여섯 명씩 입을 열었고, 게다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을 주민끼리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하니 이윽고 여관 안은 시장통보다도 시끄러워졌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기사 된 본분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성토를 귀 기울여 듣던 돈키호테였지만, 그 모든 말들을 귀기울여 듣자니 이윽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만!! 알겠으니 진정하시오!!”
화를 버럭 내는 돈키호테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 입을 닫았다. 혹시나 자신들의 말 때문에 돈키호테가 화가 나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촌장은 재빨리 말했다.
“오오, 죄송합니다 기사님. 저희가 너무 시끄러워서 혹시 화가 나셨는지…”
“화가 나지는 않았소! 단지 조금 진정하라는 것 뿐이요!”
돈키호테는 엣헴, 하고 분위기를 환기하듯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아무튼, 모두들 걱정할 필요는 없소이다!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해 길을 떠난 편력기사인 이 몸이 마침 어려운 때의 이 마을에 도착한 것도 모두 운명! 그 무뢰배 늑대떼들은 나의 방패 앞에 쓰러질 것이니, 영광의 전투가 벌어질 것이오!”
돈키호테의 연극이라도 하듯 과장된 말투에 마을 주민들과 로시난테는 탄성을 내며 손을 짝짝 두드렸지만, 청년은 그 광경이 퍽 한심하다는 듯 코웃음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기사들의 위명도 모험도 마법도 사라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 온 청년에게는 그 모든 것이 유치한 장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야, 다들 여기 모여서 축제라도 하는 건가?”
그때 여관 문이 열리며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마을 주민들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돈키호테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늑대 몇 마리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우리에게 상납금을 바치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지, 여기서 놀고 계시면 되겠어?”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검은 색안경을 낀 늑대가 건들거리며 말했다. 늑대 두목이 이를 드러내며 여관 안을 둘러보자, 마을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그때 늑대 두목은 여관 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의 돈키호테를 발견했다.
“으응?” 늑대 두목이 말했다. “못 보던 형씨인데? 갑옷까지 잘 차려입고, 우리랑 싸우려고 하시나?”
늑대들은 빈정거리며 돈키호테의 모습에 킬킬거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는데, 돈키호테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방패를 앞세워 늑대떼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영감! 으아아악!”
갑옷을 입은 돈키호테가 힘껏 방패를 들고 달려들자, 당황한 늑대떼들은 그 기세에 밀려 여관 밖으로 튕겨져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게 되었다. 등 뒤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과 청년의 시선을 받는 채로, 돈키호테는 방패를 높게 들고 선언했다.
“너희 사악한 늑대 무리들아! 이제 이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는 시간은 끝났으니, 나 돈키호테가 이렇게 나타났기 때문이도다! 나의 레이디의 이름으로 너희들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바니, 정의는 승리하리라!”
“헹, 웃기시는군! 우리한테 덤비다니 곱게 돌아가진 못하실 걸!”
그렇게 늑대들과 우리의 기사 돈키호테간의 장절한 전투가 시작되려 하였으나, 독자분들에게는 아쉽게도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늑대 무리 중 눈썰미가 좋은 늑대가 한 마리 있었으니, 돈키호테를 유심히 살피다 어깨 위의 로시난테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저 영감 어깨 위의 저걸 봐!”
각자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드러내고 싸울 준비를 하던 늑대 무리는 그 말에 로시난테를 눈치챘으니, 그들도 이미 다른 늑대 패거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뒤였다.
“잘 됐군!” 늑대 두목이 웃으며 말했다.
“저 망아지를 데려가면 위치 퀸님도 크게 기뻐하시겠지! ‘만월의 늑대떼’ 우두머리로 날 고르실지도 몰라!”
“안됩니다요 두목님!” 부하 중 하나가 늑대 두목에게 속삭였다. “다른 늑대떼도 그렇게 생각하고 저 영감이랑 망아지에게 덤볐다가 큰 코 다쳤습니다요. 여기서 덤비면 놓칠 지도 모릅니다요.”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냐? 여기서 못 본 척 넘어갈 수는 없잖아.”
“우리 힘만으로 싸우는 것보다 도움을 부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요.”
부하는 두목의 말에 대답했다.
“여기선 일단 물러나고, ‘녀석들’의 도움을 받읍시다요. 그 녀석들 도움받기 싫은 건 저도 마찬가지지만, 그쪽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요.”
이렇게 늑대떼들이 서로 모여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자, 결투를 방해받은 돈키호테의 심기는 점점 불편해져만 갔다. 무릇 기사의 싸움이란 서로 이름을 걸고 정정당당하게 싸움에 임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며, 이렇듯 기사와 악당들의 싸움이라면 홀로 악한들의 무리에 맞서도 레이디의 가호와 정의의 이름으로 이겨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비장한 싸움을 시작해야 할 이때, 늑대떼들은 모여서 재잘거리는데 신경이 팔려 있으니 기사도를 숭상하는 돈키호테로서는 그 행동에 퍽 기분이 상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고얀 놈들! 결투를 신청했건만 싸움을 앞두고 그 무슨 추태더냐! 빨리 덤비지 못할까!”
“그거 미안하게 됐수다! 결투는 나중에 하지!”
돈키호테가 화를 버럭버럭 내는 사이, 늑대 무리는 의견이 통일되었는지 말했다.
“뭐? 결투를 나중에 해? 그게 무슨 소리냐 이놈들아! 이 몸의 방패와 정의 앞에 무릎 꿇는 것이 그렇게나 두려운 게냐!”
“걱정하지 마쇼, 영감. 곧 다시 올 테니까 말이지! 오늘 밤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목이나 잘 씻어놓고 계시지! 그리고 거기 다른 영감!”
늑대 두목이 앞발로 척, 하면서 돈키호테 뒤를 가리키자, 날카로운 발톱이 가리키는 촌장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잘도 이런 영감을 데려오셨겠다! 이제 이 마을은 우리 움브라가 차지할 테니, 오늘 밤 전에 다들 마을에서 꺼지시지! 남아있으면 무슨 일을 당해도 몰라!”
“아, 아니, 우리가 기사님을 모신 게 아니라…”
촌장은 애써 변명하려 했지만, 늑대 무리는 그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사라져버렸다. 마을 주민들은 늑대떼가 우선 사라진 것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바로 오늘 밤 쳐들어올 것이며 이번에는 아예 마을을 통째로 빼앗겠다는 선언에 이윽고 공포에 질렸다.
마을 주민들의 자신들을 구해주리라는 기대와, 당신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원망이 반씩 섞인 시선을 받으면서도 돈키호테는 당당하게 외쳤다.
“걱정하지 마시오, 선량한 주민들이여! 저 간악한 늑대 무리들이 어떤 못된 자를 데리고 오더라도
나, 돈키호테가 막아낼 것이니! 불의가 아무리 강해 보이더라도 언제나 정의와 옳음은 승리하는 것이니, 그 인도자이자 대리인인 나는 승리할 것이오!”
하지만 두려운 마을 주민들은 그 당당한 선언에도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늑대떼들이야 어떻게 막아선다고 해도, 어떤 무시무시한 악당이 오늘 밤 함께 올지 모르니 말이었다. 거기에 늑대떼가 그 무시무시한 ‘움브라’와 ‘위치 퀸’을 언급하지 않았는가?
마을 주민들은 돈키호테가 묵는 여관을 떠나, 촌장의 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 기사님을 내쫓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마을 주민 하나가 말했다.
“그 늑대떼들 말을 들어보면 기사님과 데리고 다니는 망아지를 노리는 것 같던데, 오늘 안에 마을을 나가 달라 부탁하면 늑대떼들도 마을은 두지 않겠어요?”
그의 말에 일부 마을 주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으니, 그들의 의견은 이러했다.
“그 기사님이 오기 전부터 늑대떼는 마을을 위협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기사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상납금이라면서 우리 것을 빼앗으려 왔고요. 기사님을 쫓아낸다고 해도, 그 늑대떼는 분명 가만 안 있을겁니다요.”
여기에 일부 마을 주민들이 또 고개를 끄덕였으니, 마을 주민들은 우리의 돈키호테를 마을에서 내쫓자, 또는 돈키호테가 늑대떼를 무찌르길 바라자는 의견으로 갈라졌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다가오는 위협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여관에는 우리의 돈키호테와 청년 단 둘만이 남게 되었다. 청년은 마을 주민들이 찾아오기 전 돈키호테와 있었던 일이 떠올라 또다시 화를 내면 어쩌나 했지만, 돈키호테는 청년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로시난테와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래,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로시난테. 이렇게 나와 내 방패가 너의 곁에 있지 않느냐. 그 늑대떼들은 너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할 것이니 안심해도 좋단다. 그렇지만 참으로 큰일이구나. 사악한 마녀 위치 퀸과 간악한 움브라가 어디에서고 활개를 치고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그들을 쓰러트려 정의와 기사도가 바로 서도록 해야 할 터인데…”
사정을 모르는 청년에게는 어깨 위에 데리고 다니는 망아지에게 말을 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노인으로만 보였기 때문에, 청년은 더더욱 돈키호테를 믿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청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느라 머리가 한가득이었던 것이다.
그런 고뇌하는 청년의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돈키호테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 청년이 자신을 모욕했던 일은 이미 까맣게 망각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런, 청년 그대도 걱정하지 말게! 그 늑대떼들이 어떤 악당을 불러오든 나에게 맞설 수는 없을 터이니! 그렇지만 그대가 고민하는 것은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로군. 이 돈키호테에게 한 번 털어놔보게나! 이래봬도 자네보다는 지혜와 경험이 풍부하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 말일세!”
청년으로서는 돈키호테의 지혜와 경험이 그리 신뢰가 가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홀로 끙끙 삭힐 바에는 누구에게라도 털어놓는 것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는 법, 청년은 결국 깊은 한숨과 함께 돈키호테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 마을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제가 있던 이야기는 두 발로 걷고 말하는 늑대도 없고, 기사님 같은 사람도 없죠. 솔직히 아직도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차리니 이런 곳에 온 데다가, 내가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었다니… 그러니 이 일이 있든 없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마을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으흠, 그대가 그렇게 고민하는 이유가 있군.”
청년의 말에 돈키호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듣기로는, 이 라이브러리 월드의 중심이 되는 도시, ‘시놉 시티’에는 셀 수도 없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모인다고 하던데, 그곳으로 가보는 것은 어떻겠나? 어쩌면 자네와 같은 이야기에서 온 이들도 있을지 모르지 않나.”
“그것도 생각은 해봤죠.” 청년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하지만 여기는 시골이라 시놉 시티로 가는 배편도 없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한참 뒤에나 온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기사님처럼 홀로 모르는 이야기 섬들을 떠돌아다닐 자신도 없고 말입니다.”
“하긴, 풍차를 거인으로 보면서도 달려들 용기가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지.”
청년의 말에 돈키호테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고민에 빠져 있었기에 돈키호테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물었다.
“기사님은 두렵지 않습니까? 그 늑대떼랑 싸우는 것도 그렇고, 오늘 밤에는 더 강한 악당들을 데려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기사님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만.”
청년은 그 말에 돈키호테가 또다시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말했지만, 돈키호테는 이번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 돈키호테는 그 대신 너털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하하하! 내 이야기를 들어봤다고 하면 알지 않는가?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무적의 적수를 이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는 것.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라네.”
돈키호테는 로시난테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두렵지 않을 리가 있나! 아무리 갑옷을 입고 커다란 방패를 들었어도, 모두가 말했듯 나는 늙은 영감 아닌가. 그야 맞서 싸우기 두렵지. 그렇지만 말이네, 젊은이.”
인자한 미소를 짓던 돈키호테는, 다시금 화가 난 것처럼도 보이는 강한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걸 참으며 드러내는 거라네. 두렵다고 도망쳐서 무엇이 남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정든 땅을 떠나 어디로 갈 것이며, 악당들은 승리를 맛보며 더욱 날뛸 것이니 더 많은 이가 고통받을 게 아닌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현재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참된 용기라네.”
“기사님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저는 그런 용기가 없습니다.”
청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돈키호테는 그 대답에 껄껄 웃었다. 청년은 그 웃음이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고 생각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제 말이 그렇게 우습습니까? 겁쟁이의 말이라?”
“아니, 그런 게 아니네. 인간은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법, 자네는 자신의 용기를 비춰본 적이 없어 잘 모르는 모양이로군. 생각해보게나, 자네는 아까 내가 화를 냄에도 용기를 내서 말을 했고, 지금도 나에게 맞섰다네. 그것은 또 용기가 아니겠는가?”
돈키호테의 말에 청년은 놀랐다. 그 충격 덕분에 청년은 돈키호테가 했던 말들을 다시 되짚어볼 수 있었다. 청년은 문뜩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속에서, 돈키호테는 마지막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을 기억해냈다. 어쩌면 이 돈키호테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걱정하지 말게나 젊은이! 설령 자네가 용기를 내지 못하더라도, 이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과 간악한 움브라는 이 몸이 해결할테니 말일세! 나 같은 위대한 편력기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제 아무리 사악한 위치 퀸이라고 할지라도 두려움에 벌벌 떨며 용서를 빌테니 말이지!”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돈키호테의 자신감 넘치는, 그리고 의심 없는 말을 듣자 청년은 방금 전의 생각에 의심이 들고 말았다. 설령 제정신이라고 해도, 본인이 말했듯 늙은 영감이 무시무시한 악당들의 대장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창은 어디 가고 방패만 들고 다니시는 겁니까?”
문뜩 떠오른 의문에 청년이 물어보자, 돈키호테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 창을 쓰면 우리 로시난테가 불편해해서 말이네. 로시난테를 지키기도 힘들고 말이야. 기사의 본분은 지키는 자, 게다가 나 같은 위대한 편력기사에게는 방패만으로도 충분한 법이지!”
으하하, 하고 소리 내어 웃는 돈키호테의 웃음에, 청년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 무렵, 다시금 여관 밖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창밖을 본 청년은 슬슬 해가 저물기는 시작했지만, 아직 밤이 되기에는 이르기에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사이 여관 문이 열리고, 촌장과 함께 마을 주민들이 나타났다.
“저, 기사님…”
“음, 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편력기사를 찾아오셨는가?” 돈키호테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혹시라도 이 몸의 모험담을 듣고 싶어 온 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라네! 자, 그럼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아니, 아닙니다 기사님.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저희는 마을을 비우고 떠나기로 해서, 그걸 전해드리려 한 것입니다.”
“뭐라! 그런 불한당들의 협박에 넘어가 마을을 버린다니!! 이 내가 늑대떼를 쫓아낼 거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인 거요!!”
촌장을 대신한 마을 주민의 대답에 돈키호테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쩌렁쩌렁한 호통에 여관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귀를 막던 촌장은 씩씩거리는 돈키호테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기사님. 그야 물론 기사님이 늑대떼를 무찔러주실 거라고 믿습니다요. 그렇지만 저희 같은 주민들이 늑대에게 맞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녀석들이 어떤 무시무시한 악당을 데려올지 솔직히 두렵습니다요.”
촌장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마을 주민들은, 역시 자신들을 도와주겠다는 돈키호테를 차마 내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도와 늑대들과 싸우는 것은 두려웠고, 그렇다고 마을 안에서 싸움을 구경하다가는 무슨 꼴을 보게 될지도 걱정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우선 마을을 떠나 돈키호테가 마을을 지켜내면 돌아오고, 그렇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이야기 섬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촌장과 마을 주민들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돈키호테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우리의 돈키호테는 그런 마을 주민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위대한 편력기사인 자신에게는 정의가 함께 하는 바, 이전에도 상대했던 늑대떼 정도는 적이 아니며 그 얼마나 강력한 악당이, 설령 위치 퀸 본인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돈키호테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열변은 마을 주민에게 믿음을 주지는 못했다. 특히 청년은 방금 전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하던 생각을 이젠 완전히 지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의 돈키호테가 아무리 열변을 펼친들, 이미 마을 주민들의 결심은 확고했으니 그러는 사이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 외각의, 돈키호테가 올랐던 바로 그 언덕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마을을 놓고 벌어질 결투를 마을 주민들 역시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찌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던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돈키호테를 바라봤지만, 돈키호테는 청년과 마을 사람들은 무시한 채 로시난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로시난테. 바로 그거다. 본디 기사의 결투란 구경거리가 아니라 신성한 의식과도 같은 것.
오히려 마을 주민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행한다면, 그건 시정잡배들의 싸움과도 같겠지. 아무렴!”
어느새 마을 주민들이 떠나는 분노도 잊은 채, 원래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마을 주민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돈키호테에게 들던 존경이, 그가 이야기에 나온 대로 이성을 잃은 노인이라는 생각에 실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야 마을 주민들이 언덕 위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텅 빈 마을에서 돈키호테는 홀로 다가올 적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올라 세상이 어둠에 잠기었지만 돈키호테는 두려워하지도 쓸쓸해 하지도 않았으니, 그저 달과 별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을 뿐이었다.
“오, 사모하는 나의 레이디! 저 별과 달이 내려보는 이 밤에 또다시 불의에 맞서기 위한 결투가 벌어지게 되었으니, 레이디께서도 저 별과 달을 바라보며 나의 승리를 기원해주실 터이니 오늘 밤 나의 방패는 빛나고 심판을 내릴 것이옵니다! 간악한 이들은 자신의 행패와 이 기사 돈키호테에게 도전한 것을 후회할 것이니…”
이렇듯 돈키호테가 들어주는 이는 어깨 위의 로시난테 뿐인 독백을 이어가는 사이, 마을 주민들은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멀리서부터 쿵… 쿵… 하는 낮은 울림이 들려오더니, 마을 저편의 숲의 나무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아닌가. 마을 주민들은 드디어 늑대떼가 예고했던 무시무시한 악당이 나타났구나 하고 몸을 떨었다.
“이렇게 멀리에서도 땅이 울리다니, 용이 틀림없어!”
“아니야, 늑대떼가 동화속 괴물들을 모조리 끌고 온 거야!”
“아아, 우리 마을은 이제 끝이야!”
마을 주민들이 탄식을 흘리는 사이, 마침내 숲의 술렁거림이 끝나고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는 커다란 나무보다도 크고, 돌로 된 팔과 다리를 가진 괴물은 머리에는 나무와 기와로 만든 지붕을 마치 모자처럼 쓰고 있었고 등에는 네 개의 날개가 있었으니, 그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원래 그 모습이 무엇인지 이미 익숙했던 마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거대한 괴물을 손가락질 하며 누군가가 외쳤다.
“풍차 거인이다! 움브라가 풍차를 거인으로 만들었어!”
아! 놀랍게도 나타난 괴물은 마을의 사라진 풍차가 거인으로 변한 것이었다! 그 괴물은 ‘그믐달 마녀회’가 마법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늑대떼와는 별개로 그들은 이 마을에서 그들만의 사악한 마술을 실험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나쁜 마녀들은 모든 마녀들의 수장으로 일컫어지는 위치 퀸에게 협력하는 대신, 그들의 사악한 마술을 연구하고 서로 전하는 조직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그믐달 마녀회’였다. 늑대들의 조직인 ‘만월의 늑대떼’와는 같은 움브라의 소속이지만 서로 그리 좋지만은 않은 관계였으나, 돈키호테와 로시난테를 위해 드물게 손을 잡은 것이었다.
“흥, 멍청한 늑대들! 그깟 노인이랑 망아지 하나 잡지 못해서 우리까지 부르다니! 뭐 됐어. 우리 힘을 똑똑히 보여주자!”
지축을 뒤흔들며 마을을 향해 가는 풍차 거인을 보며 마녀들은 키득거렸다.
“흥, 짜증 나는 마녀들! 뭐 됐어. 그 망아지를 발견한 건 우리들이니까, 우리가 가져가면 위치 퀸께서도 기뻐하실 게 분명해!”
한편 다른 곳에서 풍차 거인을 지켜보던 늑대떼들 역시 기대에 킬킬거렸다.
그렇게 두 악당들의 무리와 마을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돈키호테는 저 멀리서 나타난 풍차 거인을 보고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돈키호테는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외쳤다.
“보거라, 로시난테! 악당들이 무엇을 끌고 왔는가 하니, 나에게 이미 쓰러진 적 있는 풍차 거인을 데려왔구나! 그때는 마법사가 거인을 풍차로 둔갑시켜서 결판을 내지 못하였으나, 이번에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이 돈키호테가 멋지게 거인을 쓰러트릴 것이니! 이 거인아 나의 방패를 받아라!”
돈키호테는 마을을 향해 다가오는 풍차 거인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는, 방패를 앞세우고 거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서 돈키호테를 바라보던 마을 주민들은 돈키호테가 거대한 풍차 거인을 향해 두려움 없이 달려가기 시작하자 깜짝 놀랐다.
“기사님은 저런 거인을 보고도 두렵지 않으신 건가?”
“그야… 저분은 전에도 풍차 거인을 향해 달려든 적이 있으니까요…”
마을 주민들이 깜짝 놀라는 사이,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말뜻을 잘못 알아들은 마을 주민들은 청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기사님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했지?”
“정말 자기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기사님이신가?”
“그래서 그 풍차 거인은 멋지게 쓰러트리셨나?”
마을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알기는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전해 들은 내용으로 아는지라 그가 위대한 기사라는 것만을 알고 있던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앞다투어 청년에게 물어보자 청년은 깜짝 놀랐다. 그러는 사이, 어깨 위에는 로시난테를 태운 채 우리의 용감한 돈키호테는 어느새 풍차 거인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돈키호테는 방패를 높게 든 채, 두려움 없이 풍차 거인을 향해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풍차 거인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돈키호테를 향해 돌로 된 거대한 주먹을 내리치려 했지만, 그때 돈키호테에게서 무언가가 번쩍 빛나더니, 재빠른 그림자가 풍차 거인의 몸을 휘감자 풍차 거인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네 이놈 거인아! 물러나거라!”
돈키호테가 그렇게 외치며 있는 힘껏 방패를 앞세우고 부딪히자, 비틀거리던 거인은 그대로 지면에 나자빠져 버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오르자 마을 주민들 쪽에서는 환호가, 늑대떼와 마녀들 쪽에서는 탄성이 울려 퍼졌다.
“보았느냐, 사악한 패거리들아! 너희들이 그 어떤 마술을 쓰더라도 정의와 기사도, 그리고 나의 레이디의 가호가 나와 함께 하나니, 너희들은 결코 이 몸을 쓰러트릴 수 없느니라!”
당당하게 돈키호테가 외치는 사이, 풍차 거인은 그 거대한 몸을 천천히 일으키기 시작했다. 돈키호테는 다시금 방패를 고쳐 쥐며 외쳤다.
“아직 포기하지 않다니, 간악한 마법으로 만든 주제에 제법이구나! 하지만 이미 승부는 정해진바, 이제 그만 포기하고 너의 패배를 인정하고 나의 레이디가 가장 아름다우며 고귀하신 여인이라고 인정하거라!”
돈키호테가 당당히 외치거나 말거나, 풍차 거인은 그저 다시금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거대한 바위주먹에 맞으면, 돈키호테의 갑옷이 아무리 튼튼하다 하더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한바. 마을 주민들은 방금 전 돈키호테가 보여준 투혼에 기대하는 한편, 이번 위기는 어떻게 이겨낼지 불안해하며 지켜봤다.
달빛마저 가리고 하늘 높게 치솟은 풍차 거인의 주먹. 그 주먹을 보면서도 돈키호테는 피하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돈키호테는 방패를 굳세게 쥐며 소리 높여 외칠 뿐이었다.
“오, 나의 레이디! 나를 지켜주시오!”
돈키호테의 외침과 함께, 돈키호테의 어깨 위가 빛나기 시작하더니 그에 호응한 듯 방패가 빛을 발하며 그 모습을 바꾸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풍차 거인의 바위 주먹이 돈키호테를 향해 내려꽂히기 시작했다!
“기사님!”
마을 주민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풍차 거인의 바위 주먹이 돈키호테의 방패에 부딪히자 그대로 튕겨 나간 것이었다! 있는 힘껏 내리친 바위 주먹이 튕겨 나가자, 그 힘을 이기지 못한 듯 풍차 거인은 그대로 다시금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충격이 어마어마했는지, 바닥에 넘어진 순간 풍차 거인은 그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마치 풍차가 태풍에 쓰러지듯 우르르 무너져 돌무더기와 잔해로 변해버렸다.
“어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늑대떼는, 기대했던 풍차 거인이 노인 한 명에게 쓰러져 버린 것에 단걸음에 마녀들에게 달려가 따졌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마녀들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당황하던 마녀들은 오히려 늑대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가 할 말이야! 기껏해야 다 늙은이 하나라고 했잖아! 어떻게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풍차 거인이 이렇게 쓰러질 수가 있어!”
“뭐라고? 이상한 장난감이나 만드는 주제에! 너희들을 믿은 우리가 바보였지!”
“지금 뭐라고 했어? 너희들 모두 개구리로 만들어줄까! 그렇게 잘났으면 지금이라도 가서 저 늙은이를 쓰러트리든가!”
그렇게 서로를 탓하며 늑대떼와 마녀들이 소란스럽게 굴자, 그 소리는 멀리 떨어진 돈키호테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돈키호테는 소리 높여 외쳤다.
“거기 숨어있었구나 이 못된 것들아! 너희들이 부리던 요상한 재주는 바로 나, 돈키호테의 앞에 쓰러졌도다! 이제 너희들의 차례이니 거기 꼼짝 말고 기다리거라! 가자, 로시난테! 저 적들을 향하여!”
돈키호테가 그렇게 외치고 방패를 든 채 빠른 걸음으로 달려들자, 서로 싸우기 바쁘던 늑대떼와 마녀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들이 보기에, 돈키호테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냥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늙은이가 아니라 정말로 풍차 거인을 쓰러뜨릴 만한 힘을 가진, 강력한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야 깜짝 놀란 늑대떼와 마녀들은 달려드는 돈키호테에게 맞서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사방으로 흩어져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비겁한 녀석들, 도망칠 때만 걸음이 빨라지는구나!” 흩어져 사라지는 무리들을 보며 돈키호테는 말했다.
“그래, 그래 로시난테! 또다시 우리가 함께 승리를 거뒀구나!”
히이잉! 하고 로시난테 역시 돈키호테의 말이 맞다는 듯 기쁜 소리로 울었다. 언덕 위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환호하며, 거대한 풍차 거인을 쓰러트리고 자신들의 마을을 지켜낸 돈키호테를 향해 단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동쪽으로부터 동이 터오르기 시작할 무렵, 돈키호테는 마을 주민들 모두의 환대를 받으며 마을 입구에 섰다.
“정말 그냥 떠나시는 겁니까, 기사님? 조금 더 이 마을에 머물며 여독을 푸시지요. 우리 마을을 지켜주신 답례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요.”
“아니오.” 촌장의 말에 돈키호테는 대답했다. “기사는 답례를 바라고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 법, 편력기사로서 나는 다시 정의와 기사도를 찾는 이들을 향해 여행을 떠나야만 하오.”
“그래도 조금만 더 계시지요. 없는 살림이지만 이제 늑대들도 사라졌으니 마을의 고민도 사라져 얼마든지 대접해드릴 수 있는데…”
“글쎄 괜찮소! 대접에 혹하는 것은 진정한 기사의 자세가 아니거늘!”
“아, 알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기사님.”
“화 안 났소!”
그렇게 마을 주민들의 환대를 받는 사이, 청년의 차례가 되었다.
“그래, 젊은이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 그 전에 묻고 싶습니다.” 청년이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두려움 없이 그 거인을 향해서 돌진하신 겁니까? 생각해보면 그게 진짜 풍차였든 아니든, 기사님이 보기에는 거인에게 이야기 속에서도 지금도 돌진하신 거 아닙니까?”
“하하하! 자네의 말 속에 대답이 있다네, 젊은이.” 돈키호테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이 진짜 거인이든, 아니면 풍차든, 내가 맞서 싸우기로 용기를 낸 이상 같은 것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맞서 싸우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라네. 내가 정의와 기사도를 믿고 따르는 이상 승리할 것을 아니, 그것이 풍차든 거인이든 마찬가지인 것이지.”
돈키호테의 대답에, 청년은 헤매던 답을 찾아낸 것만 같았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돈키호테에게 말했다.
“저는 잠시 이 마을에 머물면서, 라이브러리 월드에 적응하고 시놉 시티로 떠나려 합니다. 혹시 저처럼 이변으로 영문을 모른 채 이곳에 나타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런 이들이 없다면, 시놉 시티에는 많은 이야기가 모인다고 하니 제가 온 이야기와 동향 사람들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음, 좋은 생각일세! 그대는 비록 기사는 아니지만 어려운 이를 돕는 기사도의 본분을 잘 지키고 있군 그래!”
청년의 대답에 돈키호테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저, 그리고 기사님, 혹시 한 가지만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돈키호테가 몸을 돌려 길을 떠나려 할 무렵, 청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돈키호테는 말해보라는 듯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청년은 물었다.
“혹시나 싶어 여쭙습니다만, 서둘러 마을을 떠나려고 하시는 것이 그 늑대떼나 마녀들이기사님이나 기사님이 데리고 다니는 망아지를 쫓아 더 강한 이를 데리고 올까봐 그러는 것이십니까?”
청년의 질문에 마을 주민들도 눈을 깜빡이며 돈키호테를 바라보았지만, 돈키호테는 대답을 하는 대신 다시 고개를 돌려 걸음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야 돈키호테는 자신이 지켜낸 마을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해를 향해 어깨에는 로시난테를 태운 채 걸어가기 시작하였으니, 여기에서 우리는 돈키호테가 길을 가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그리 하는 것이 돈키호테가 저 유명한 ‘스매시 레전드’에 참가할 때까지 이어질 이야기를 계속해서 적어나가는데 필요한 다른 사건들을 이야기할 빌미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