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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편 2화] 하

The translated version of the Smash Novels will be here soon. Thank you.
시간이 흘렀다.
“어머, 정말 소문으로 듣던 대로네요. 설마 싶어서 와보긴 했는데.”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볼프강은 나무를 패려던 도끼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모자를 쓴, 새카만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었다.
볼프강은 그녀가 누군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볼프강은 다시 도끼를 들어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했다.
“은퇴했다.”
“제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당신을 찾아왔는지는 안 물어보시나요?”
턱, 하고 도끼를 반으로 쪼개며 볼프강은 대답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 이후로 안 볼 상대니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분위기를 보면 현자회의 소속은 아니고, 그렇다면 함께 일할 악당을 찾아온 거겠지. 하지만 말했듯 나는 은퇴했다. 돌아가라.”
장작을 장작더미로 던지는 볼프강에게 방문자는 말했다.
“네, 그건 저도 소문으로 들었어요. 그래서 직접 확인하러 온 거고요.”
턱. 볼프강은 다음 장작을 쪼갰다. 여전히 방문자를 돌아보진 않았다.
“이제 확인했으니 목적은 달성했군. 돌아가라.”
“전설적인 나쁜 늑대, 모두의 존경을 받는 볼프강이 사라졌더니, 알고 보니 은퇴해서 어느 이야기의 산속에서 지내고 있다…
그것도 어느 할머니의 집에서, 그녀를 잡아먹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콰직. 볼프강은 양손으로 들어 올렸던 장작을 쪼갰다. 방문자를 바라보며 볼프강은 말했다.
“돌아가라. 아직 그럴 수 있을 때.”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가 아직이었네요.”
볼프강의 위협에도 방문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저는 위치 퀸. 언젠가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사람이죠. 그러기 위해 볼프강, 당신이 필요해요.”
“이야기기의 주인공이 되기 전에 목숨부터 간수하라고 해주고 싶군. 앞으로 볼 일 없는 상대니, 궁금하지 않다고 했을 텐데. 앞으로 보지 않을 방법은 다양하다.”
“그건 알고 있어요. 당신이 한 말도 들었고요.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 자주 보고 싶은걸요.”
이를 드러내며 위협하는 볼프강의 말을 위치 퀸은 농담하듯 받아쳤다. 위치 퀸. 그 이름만으로도 볼프강은 방문자가 마녀이며 마법을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묘할 정도로 겁이 없는 것을 봐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라이브러리 월드의 진실도 알고 있으니까.
위치 퀸은 볼프강과 오두막을 둘러보며 말했다.
“소박하지만 좋은 곳이네요. 은퇴한 뒤에 조용히 살아가기에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좀 아쉽지 않나요?
당신 정도라면 훨씬 좋은 곳에 머물 수도 있을 텐데요.”
“관심 없다.”
“할머니가 좋아하시기 때문인가요?”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 찾아온 이유인가?”
이번에는 볼프강의 위협에 위치 퀸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볼프강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뒤에야 평범한 목소리로 물을 수 있었다.
“왜 나지?”
“나쁜 늑대들을 통솔하는 건, 역시 나쁜 늑대가 제일일 테니까요. 그들 중의 전설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말이죠.”
위치 퀸의 말은 사실이었다. 볼프강은 자신이 나쁜 늑대들 사이에서 그런 존재가 된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신경 쓰지 않았을 뿐.
나쁜 늑대 역시 이야기 속의 존재.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이야기 속의 인물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나쁜 늑대’로만 불릴 뿐,
많은 이야기에 나오는 그들을 구분하거나 개체로 따지는 것이 어려운 점이 그러했다. 그 탓인지, 늑대들은 어렴풋하게 다른 이야기의 존재와
그 수많은 이야기를 떠돌며 ‘나쁜 늑대’로서의 역할을 했던 볼프강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악행을 수없이 저지르고, 때로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는 영웅.
그렇기 때문에 볼프강이 잠적할 때 가장 격렬하게 비난했던 것도 나쁜 늑대들이었으며, 끝까지 추적했던 것도 나쁜 늑대들이었다.
하지만 볼프강 역시, 그렇기에 볼프강이 다시 돌아왔을 때 가장 환영할 이들도 그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볼프강은 나쁜 늑대들이 늑대도 아닌 위치 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늑대들이 너에게 충성을 바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놈들이 멍청하긴 해도 개가 아닌 늑대다. 늑대는 누군가에게 길들여지지 않아.”
“아뇨. 그 점은 잘못 알고 계시네요. 길들여진 늑대가 바로 개랍니다. 당신이 할머니에게 길들여진 것처럼 말이죠.”
“살아서 돌아갈 생각이 없나 보군.”
볼프강은 발톱을 꺼냈다. 오랫동안 꺼내지도 않았고, 쓸 일도 없었음에도 볼프강의 발톱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동안의 길고 많은 싸움으로 더럽혀지고, 상처가 났음에도 햇빛을 받는 발톱은 마치 칼날과도 같았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죠. 최소한 은퇴했다는 당신이 다시 싸움에 나서긴 할 테니까 말이에요. 그쪽이 끝까지 은퇴한 몸이니
어떤 모욕을 들어도 제가 찾아온 이유도 듣지 않고, 싸우지도 않겠다고 하는 게 제일 걱정이 됐거든요.”
위치 퀸의 말에, 볼프강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런 볼프강을 보며 위치 퀸은 말을 이었다.
“알고 있어요.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직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는 걸요. 그 불꽃을 숨길 수 없었기에 전에도 이 오두막을 떠났었고,
오랫동안 돌아다녔죠. 나쁜 늑대라는 당신의 운명과 역할에 충실하도록.”
그랬다. 볼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과 함께 볼프강은 오두막을 떠나, 또다시 나쁜 늑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다시 시작된 이야기들을 찾아가 과거에 했던 악행을 또다시 저질렀다.
그렇지만 볼프강의 마음에 찾아온 것은 전과 같은 충족감이나 만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회의와 실망, 후회 같은 것에 가까웠다.
보람도 목적도 없는 생활. 또다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쫓겨 다니는 여로. 지금까지 놓친 만큼 따라잡아 오는 현자회의의 마수.
무엇보다 더 이상 볼프강은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도 즐겁지 않았고, 그 뒤에 따라오는 응징 역시 즐겁지 않았다.
무엇보다 볼프강은 두려웠다.
과거에, 먼 옛날에 자신이 입은 상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라이브러리 월드로 돌아가도 치료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그것이 자신의 본능을 좇아, 역할을 다해 맞이한 결과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는데.
두려움이란 습관과도 같았다. 한 번 두렵기 시작하자 볼프강은 배가 갈리는 이야기도, 총에 맞는 이야기도,
끓는 물에 삶아지는 이야기도 모두 싫었다. 볼프강은 돌아가고 싶었다.
볼프강은 처음으로 나쁜 늑대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볼프강은 나쁜 늑대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끝내 따라왔던 현자회의의 추격자는 볼프강을 눈감아주기로 했다. 다른 나쁜 늑대들은 볼프강에게 실망하고, 설득하려 하고,
보복하려 했지만, 볼프강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거절하고, 끝내 이겨냈다.
그렇게 볼프강은 돌아왔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다양한 이야기의 여러 곳을 본 뒤, 여성이 기다리는 오두막으로. 여성은 그사이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볼프강은 마침내 나쁜 늑대가 아니게 되었다.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위치 퀸의 말대로였다. 볼프강의 마음속에는 늘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다. 나쁜 늑대로 만들어진,
나쁜 늑대의 역할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불꽃. 그것은 본능이기도 했으며 볼프강의 역할이자 사명이기도 했다.
“옛날이야기다.”
그 본능과 사명을 다시 한번 삼켜내며, 볼프강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위치 퀸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불만인지 흥, 하고 콧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이미 모든 나쁜 늑대는 제 휘하로 들어오기로 했어요. 나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의 사모하는 할머니도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거고요.”
“네 말대로 지금 나는 길들여진 개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주인은 네가 아니다. 돌아가라.”
볼프강의 대답에 위치 퀸은 그 눈을 한동안 마주했다. 하지만 이윽고 마치 눈싸움에서 졌다는 듯, 위치 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물러났다.
위치 퀸이 손을 들어 올리자, 허공에서 마법의 거울이 나타나 빛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다른 곳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마법의 도구일 거라고,
오랜 경험으로 볼프강은 생각했다.
“알겠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일단은 돌아가도록 하죠. 하지만 생각이 바뀐다면 환영하겠어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 같고요.”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거울 속의 다른 공간으로 향하려던 위치 퀸은 볼프강의 질문에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는 위치 퀸에게 볼프강은 물었다.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뭘 할 생각이지? 나쁜 늑대들을 데리고 뭘 할 속셈이지?”
“나쁜 늑대들만 데리고 있는 건 아니랍니다. 모든 마녀들도 제게 협력하기로 했죠. 그 외에도 수많은 악당이나 등장인물들이 제 편이 되어주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로 뭘 할 생각이지?”
“운명을 바꿀 거랍니다.”
위치 퀸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은 지금까지 위치 퀸을 보면서 느꼈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웃음이었다.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웃음 같기도 했으며, 예전에 여성이 짓고는 했던 웃음과도 닮아 있었다.
볼프강이 그 웃음에 홀린 사이, 위치 퀸은 거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볼프강은 위치 퀸에게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 못한 것을 가볍게 후회했지만, 이윽고 생각을 고쳤다.
볼프강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으니까.
자신은 위치 퀸과 함께할 생각이 없다. 이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니 위치 퀸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든, 누구와 함께하든 볼프강이 알 바 아니다.
볼프강은 가슴을 얌전히 쓸어내렸다. 어쩌면 위치 퀸의 말에 혹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안에 있는 나쁜 늑대로서의 본능이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악당이 모여 무언가를 저지르겠다는 그 말에 두근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상관없는 이야기다. 볼프강은 고개를 내젓고는,
방금 팼던 장작 몇 개를 들고 오두막 안으로 향했다. 밤사이 불씨가 죽은 난로에 장작을 던져 넣고, 간단한 식사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왔었나요?”
“신경 쓸 것 없다. 길을 잘못 찾아온 사람이었으니까.”
볼프강은 그렇게 대답하고, 침대에 누운 할머니의 곁에 쟁반을 내려놨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할머니를 말리고, 잔기침을 하기에 이불을 끌어올려 줬다.
할머니는 병에 걸렸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할머니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지만, 볼프강은 그럴 때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했다. 볼프강은 말했다.
“미안하군. 의사라도 불러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볼프강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볼프강은 아쉬움을 어쩔 수 없었다. 그야 이런 산속까지 귀한 의원이 와줄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늑대가 아니라면 마을에 가서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무리다. 말하는 늑대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시골 마을의
순박한 사람들에게 늑대는 양들을 물어 죽이고 아이들을 위협하는 두려운 상대다.
볼프강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몇 번인가 숲을 내려가 마을 주변에서 얼쩡거린 결과, 오히려 숲에는 늑대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아 아무도 오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그 결과 할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을 마을의 가족들에게 알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볼프강은 그 점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잘 먹고 푹 쉬면 나을 거예요.”
할머니는 볼프강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털이 가득한 자신의 손을 쓸어내리는 할머니의 손을 보며 볼프강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손녀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
“네. 며칠 전에 딸이 왔다 가면서 그러더군요.”
“그날은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군.”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요.”
할머니는 손을 빼려는 볼프강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귀여운 손녀를 자랑하려는 듯.
“제가 만들어준 빨간 모자를 쓴, 정말 귀여운 아이랍니다. 아직 털이 푹신한 걸 좋아하는 나이니까, 당신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할머니의 웃음에 볼프강 역시 웃었다. 볼프강은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니까. 볼프강은 할머니의 식사를 돕고,
남아있던 약을 먹이고 잠재우고, 오두막을 떠나 숲속에 있는, 생각할 때 쓰는 볼프강만의 장소로 향했다.
운명이라.
위치 퀸의 등장 때문에 새삼스럽게 떠오른 말은 아니었다. 볼프강은 늘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볼프강은 운명에서 도망쳤다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다.
사명을 잊고, 본능을 억누르며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를 잡아먹고 빨간 모자를 잡아먹고, 사냥꾼의 가위에 배를 갈린다. 몇 번이나 경험해본 바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볼프강의 나쁜 늑대로서의 첫 기억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쁜 늑대로서의 오랜 세월 때문에 기억이 흐릿해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병은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니까. 할머니가 병에 걸리지 않으면 빨간 모자는 병문안을 오지 않는다.
빨간 모자가 병문안에 오지 않으면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는다.
운명을 바꿀 거라는 위치 퀸의 말이, 볼프강은 생각났다.
볼프강은 알고 있었다. 지금 위치 퀸을 부른다면, 그녀는 자신의 앞에 나타날 거라고. 그 마법의 거울로 아마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것을
볼프강은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볼프강이 굴복한다면, 위치 퀸은 뭔가 방법을 만들 것이다.
―이미 모든 나쁜 늑대는 제 휘하로 들어오기로 했어요. 나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의 사모하는 할머니도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거고요.
위치 퀸은 알고 있다. 볼프강이 있는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나쁜 늑대가 없으면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이대로 있으면 할머니의 병은 낫지 않는다.
볼프강이 움직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볼프강이 움직인다는 것은, 볼프강이 나쁜 늑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돌아가면,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완전히 망가트리는 방법도 있다. 마을에 나타나 할머니를 구해달라고 하는 것도, 빨간 모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도 모두 방법이다.
이야기가 무너지면 모두는 아마 라이브러리 월드로 소환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뒤에 볼프강은 현자회의에게 붙잡힐 것이 분명했다. 그 뒤의 일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나쁜 늑대로 돌아가 위치 퀸의 휘하로 들어가느냐,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현자회의에게 붙잡히느냐. 볼프강은 고민했다.
새들이 우는 것을 멈추고 해가 질 때까지 고민했다.
볼프강이 오두막으로 돌아오자, 할머니는 깨어나 볼프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 오셨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볼프강은 오두막의 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뿐이야.”
다음날이 되었다.
오두막에는 볼프강만이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 심란한 마음에 양손을 만지작거리며, 볼프강은 문을 열고 들어올 빨간 모자를 기다렸다.
충족된 본능이 가슴을 뛰게 했지만, 볼프강은 냉정하려 노력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운명이란 어쩔 수 없기에 운명인 것이다.
이야기가 완성되면, 모두는 라이브러리 월드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이야기에서 생긴 피해를 복구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때를 기다린다.
상처는 나을 것이고 병은 치료될 것이다. 이야기가 완성되어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할머니를 잡아먹은 나쁜 늑대가 빨간 모자를 잡아먹고, 마침내 지나가던 사냥꾼에게 배를 갈린다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지도 모르지만, 볼프강은 그럴 가능성은 당장으로는 낮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위해서는 나쁜 늑대가 필요하지만, 모든 나쁜 늑대는 위치 퀸의 부하가 됐다고 했다. 위치 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늑대를 보내서 이야기를 다시 진행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다고 위치 퀸이 얻을 것은 없을 테니까.
마지막 남은 나쁜 늑대가 없다면, 어쩌면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건강하게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손녀와 지낼 것이다.
모든 것이 그저 늑대 한 마리의 배가 갈라지면 해결되는 일이다.
볼프강은 할머니의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문이 부서졌다.
볼프강은 놀랐다.
빨간 모자는 문을 부수며 등장하지 않는다. 아픈 할머니를 병문 하기 위해 얌전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할머니에게 드리기 위한 포도주와 케이크가 든 바구니를 든 채로. 빨간 모자는 저렇게 커다란 가위를 들고 등장하지 않는다.
볼프강은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볼프강은 이 모든 것을 누가 조종했는지도 깨달았다.
“기다려라.”
볼프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빨간 모자에게 말하려 했지만, 빨간 모자는 커다란 가위를 찰칵거리며 외쳤다.
“배를 싹둑! 잘라줄 거야!”
가위를 빛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빨간 모자의 모습에, 볼프강은 반사적으로 발톱을 꺼내고 이를 드러냈다.
나쁜 늑대로서의 본능이 맞서 싸우라고, 저런 꼬맹이 따위 꿀꺽 삼켜버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제가 만들어준 빨간 모자를 쓴, 정말 귀여운 아이랍니다. 아직 털이 푹신한 걸 좋아하는 나이니까, 당신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곤란하군.
날아가 버린 양팔을 바라보며 볼프강은 생각했다.
“복종하겠다.”
무릎 꿇은 볼프강의 말에, 위치 퀸은 코웃음을 쳤다.
“정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군. 주인에게 복종하는 자세도 배우지 못할 정도로.”
“복종하겠습니다.”
볼프강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잘린 양팔에서는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져 나간 양팔은 볼프강의 앞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좋아, 볼프강. 너는 이제부터 나의 심복이다.”
웃음을 띤 위치 퀸의 목소리는 얼마 전 나타났을 때와는 달랐다. 이름 그대로 여왕임을 뽐내는 듯한 목소리. 그럼에도 볼프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볼프강의 주인이었으며, 주인의 말대로 길들여진 늑대가 바로 개였으니까. 개는 주인에게 복종한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규칙을 알고 있는 볼프강이기에 알 수 있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흐름에, 그 순환에 뭔가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볼프강은 자신이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다른 인물들은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지 못한 것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더는 이야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마치 볼프강의 생각을 읽은 듯 위치 퀸은 말했다.
“그녀는 미완의 이야기에 갇혀 있지만, 그 대신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주인공이 없어진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으니,
그 상태 그대로 남아있겠지. 내가 라이브러리 월드를 지배하고, 새로운 규칙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 때까지는 말이야.”
볼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볼프강, 너는 ‘만월의 늑대떼’의 수장을 맡아줘야겠다. 앞으로 우리 ‘움브라’의 힘이자 무력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해줘야겠어.”
위치 퀸은 손을 움직였다. 그 손놀림에 초록색 마법의 기운이 볼프강의 잘린 양팔을 들어 올려, 아직 피가 흐르는 상처에 가져갔다. 위치 퀸은 놀리듯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숨고, 도망치고, 어둠 속을 숨어다니던 너에게는 쉬운 일이겠지?”
볼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위치 퀸의 마법에 의해 팔이 다시 붙으며 느껴지는 고통을, 작은 신음을 흘리며 참을 뿐이었다. 위치 퀸은 말을 이어갔다.
“내가 레드에게 내려준 가위는 마법의 힘을 담고 있어서, 내 힘으로도 완전히 치료해줄 수는 없어. 그 흉터는 계속해서 남아있을 테고,
팔은 볼프강 네 전성기처럼 움직여주진 않겠지. 그 대신 선물을 주겠어.”
위치 퀸의 마법이 힘을 발하며, 볼프강의 양손이 빛나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마치 갑옷과도 같은 보호구와 날카로운 마법의 발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무기들이 너에게 새로운 힘이 되어주겠지.”
“고맙습니다, 주인님.”
볼프강은 손가락과 팔을 움직여보며 말했다. 위치 퀸의 말대로 마법으로 붙은 상처 자리에는 붉은 흉터 자국이 남아있었고,
볼프강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볼프강이 신경 쓰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레드. 그런 이름이었군. 볼프강은 그 이름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볼프강은 ‘만월의 늑대떼’의 수장이 되었다.
볼프강은 그리운 기분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잘라줄 거야!”
외침과 함께 자신의 목으로 날아드는 가위를 볼프강은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공간의 틈에서 나타나며 가위를 휘둘렀던 레드는,
볼프강을 쓰러트리지 못한 것에 이를 드러냈다.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라이브러리 월드. 그중에서도 중심에 있는 시놉 시티의 깊은 곳.
시놉 시티는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가장 높은 곳에는 라이브러리 월드를 관리하는 ‘현자회의’가 머무는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시놉 시티의 가장 아래는 ‘하층’이라고 불리는 복잡한 빈민가였다. 그 깊은 어딘가에는 움브라의 비밀 기지가 있었다.
그런 움브라의 비밀 기지의 외딴 복도에서, 볼프강은 레드와 마주했다.
“...무슨 짓이지?”
볼프강은 레드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기습이 실패해, 가위를 찰칵거리며 싸울 자세를 잡는 레드와는 다르게, 볼프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어떠한 동요도 없는 볼프강의 목소리.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는 눈빛에
레드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레드는 마법 가위 ‘피카부’를 위협하듯 찰칵거리며 말했다.
“몰라서 물어? 오늘에야말로 널 쓰러트릴 거야, 멍멍아!”
멍멍이. 모욕적인 발언에 볼프강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레드는 볼프강이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볼프강은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움브라 내의 싸움은, 위치 퀸님이 금지하신 걸 잘 알 텐데.”
“윽.”
볼프강의 지적에 레드는 찔린다는 듯 신음을 냈다. 위치 퀸. 볼프강과 레드가 소속된, 이야기 속의 악당들이 모인 집단 ‘움브라’의 수장.
그녀의 명령은 움브라에서는 절대적이었고, 특히 레드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볼프강은 싸늘한 눈빛으로 레드를 보며 말했다.
“위치 퀸님이 명령하신 이상, 나는 너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오늘도 나에겐 해결해야 할 임무가 있다. 임무도 없는 꼬맹이와는 달라.”
“이게!”
레드는 볼프강의 도발에 이를 드러내며 다시 양손으로 가위를 휘둘렀다. 그렇지만 볼프강은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가위를 피해내고,
휘두르는 가위의 힘이 떨어졌을 때 양손으로 가위를 붙잡았다. 레드는 힘을 주며 가위를 빼내려 했지만, 힘은 볼프강이 위였다.
“마음에 안 들어! 왜 너 같은 건 간부인데 난 아무 지위도 없는 건데! 왜 망할 멍멍이도 움브라에 있는 거냐고! 너 같은 건 내 가위로 잘라버릴 거야!”
마치 궁지에 몰린 어린아이처럼 소리치는 레드를 보며 볼프강은 한숨을 내쉬었다.
볼프강이 위치 퀸의 심복이 되고도 시간이 흘렀다.
레드, 빨간 모자는 같은 날 움브라의 일원이 되었다. 레드는 볼프강을 보자마자 달려들려 했지만, 위치 퀸이 말리자 겨우 참는 모습이었다.
볼프강은 레드가 위치 퀸을 존경하고, 그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위치 퀸이 말릴 수 있는 것은, 위치 퀸의 앞에 있을 때의 레드 뿐이었다.
레드는 위치 퀸과 같은 악당이 되고 싶어 했고, 그 시작으로 오랜 원수인 나쁜 늑대, 볼프강을 처단하고자 했다. 위치 퀸이 보지 않는 곳이면 레드는 언제나 볼프강을 습격했다.
위치 퀸이 하사한 마법 가위와 그 가위의 힘으로 공간을 자르고 숨을 수 있는 레드의 능력은 확실히 강력했다.
그렇지만 볼프강은 아주 오랫동안 나쁜 늑대였다. 비록 팔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해도 경험이 부족한 꼬맹이에게 당해주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볼프강은 이를 악문 채 자신과 힘겨루기를 하는 레드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늘 침착하고 현명했는데, 그 손녀는 늘 흥분하고 어리석군. 위치 퀸님은 역시 사람을 볼 줄 아는 분이다.
그런 어린애에게 높은 자리를 주지 않을 정도로 현명하고.”
“이 멍멍이가! 감히 할머니 이야기를… 아야!”
볼프강의 도발에 레드는 다시 발끈했지만, 이내 비명을 질렀다. 양팔을 붙잡은 채로 볼프강이 레드의 머리를 박아버렸으니까.
레드는 난데없이 박치기를 당한 이마가 아픈 모양이었지만, 차마 가위를 놓지도 못하고 울상만 지을 뿐이었다.
“흥분하는 건 나쁜 버릇이다. 위치 퀸님이 너에게 하사한 마법 가위와 그 능력이 있으면, 네가 침착하고 현명하게만 움직인다면 누구든 쓰러트릴 수 있다.
그리고 네가 그럴 수 있다면 위치 퀸님도 너에게 높은 지위를 내리시겠지.”
“시끄러워, 이 영감탱이!  매번 그런 식으로 꼰대처럼 잘난 척이나 하고!”
볼프강은 레드의 말도 질렸다는 듯, 레드와 가위를 통째로 들어 올려 복도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레드는 날아가던 중 겨우 몸을 틀어 벽에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다시금 볼프강에게 달려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난 바쁘다. 놀 상대를 찾는 거면 다른 녀석을 찾아봐라.”
그 말을 끝으로, 볼프강은 등 뒤에서 외치는 레드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복도를 걸어갔다. 조금 걸어 코너를 돌자, 엿보고 있던 듯한 부하 늑대가 말했다.
“두목님, 저대로 놔둬도 됩니까? 매번 두목님만 보면 덤벼들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지.”
볼프강이 무시하고 걸어가자, 부하 늑대는 뒤를 졸졸 따라오며 말했다.
“그야, 뭐, 눈물 쏙 나오게 혼내준다든가, 버르장머리를 고쳐준다든가…”
“움브라 내의 싸움은, 위치 퀸님이 금지하신 걸 잘 알 텐데.”
부하 늑대의 말에 볼프강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 박력에 부하 늑대는 자신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치고는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헤, 헤헤! 그, 그러믄요! 잘 알고 있습죠! 다만, 저기, 그, 뭐시기냐, 두목님이 귀찮으실 것 같아서…”
“내버려 둬라. 저 녀석이 저러면서 실력이 늘어나면 우리 움브라에도 좋은 일이니까. 혹시라도 다른 늑대 녀석들이랑 꼬맹이에게 덤빌 생각이라면,
위치 퀸님의 명령을 거스르지 말라고 다시 한번 말해두지.”
“알고 있습니다요! 네!”
송곳니를 드러내는 볼프강의 말에, 부하 늑대는 고개를 열렬히 흔들고는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볼프강은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목적지를 향했다.
지금의 볼프강은 그저 나쁜 늑대들의 수장이다.
라이브러리 월드를 지배하려는 사악한 마녀 위치 퀸의 제일가는 심복이자, 그 힘이자 무기인 ‘만월의 늑대떼’의 수장.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아직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도 그 존재를 아는 이가 드문 존재.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겠지. 볼프강은 생각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현자회의는 ‘스매시 레전드’를 개최했다.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전설의 비보, ‘라이트 오 라이트’를 건 싸움.
마치 그것이 목적이었다는 듯 움브라는 위치 퀸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참가했다. 그리고 오늘, 위치 퀸이 자신을 부른 것 역시 그런 이유라고 생각했다.
이제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도 끝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볼프강이 상관할 바 아니었다.
개는 주인의 명령에 복종한다. 그리고 위치 퀸은 그리 나쁜 주인도 아니었다. 볼프강의 본능과 역할을 충실하게 해줬으니까. 볼프강은 그저 운명에 순응하기로 했다.
나쁜 늑대가 자신의 본능이자 운명이라면, 그에 따른다.
운명을 거스르겠다는 주인이 운명을 목줄로써 자신을 묶어둔다면, 그에 따른다.
운명은 어쩔 수 없기에 운명인 것이니까.
그렇지만, 언젠가.
볼프강은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어깨의 흉터가 시큰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