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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공편] 여기는 제천대성, 당신은 바나나.

하늘이 푸르렀다.
높고 쾌청한 하늘 아래 초록빛 가로수가 우거진 길을 오공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오공의 털 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는 부드럽고 향긋한 향기가 함께 배어 있었다. 오공은 코를 벌름거렸다.
“이건… 진저브레드 패밀리에서 나는 버터 향기로군!”
오공은 가던 길을 멈추고 『진저브레드 패밀리』 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놉 시티 최고의 레스토랑 『용궁』에 예약을 해둔 상태였지만 에피타이저로 과자 몇 개 정도는 집어먹어도 될 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오공은 진저브레드맨이 윙크를 하며 손을 들고 있는 그림이 프린팅된 유리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다. 문에 달려있던 종이 경쾌하게 딸랑거렸다.
카운터에 있던 진저브레드맨이 팔을 들어 경쾌하게 인사를 해왔다. 허리를 굽히지 않는 것은 부서질 수 있는 위험 때문인 듯했다. 진저브레드 패밀리가 헨젤과 그레텔 베이커리와 함께 시놉 시티의 양대 베이커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맛이 좋기 때문이었지만 살아 움직이는 진저브레드맨들이 운영한다는 점도 컸다.
“어서 오세요, 진저브레드 패밀리입니다!”
오공은 언제봐도 신기한 친구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답했다.
“여어, 나야!”
“아, 오공님! 오셨군요!
진저브레드맨은 아이싱으로 된 눈썹과 입을 꿈틀거리며 오공을 환영했다. 오공이 시놉 시티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오늘처럼 버터 향기를 맡고 홀린 듯이 가게에 들어와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과자를 모두 먹어 치우고 팁까지 포함한 후한 값을 치른 후, 이곳은 오공의 가장 큰 단골 가게 중 하나가 되었다. 진저브레드 패밀리 입장에서도 오공을 VIP 대접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공은 그런 대접이 익숙했고, 또 좋았다.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 미식가가 아닌 다른 방향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당시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이곳은 헨젤과 그레텔 베이커리와 함께 시놉 시티의 빵 가게 중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고, 특히 높은 퀄리티의 구움 과자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 유명한 헨젤과 그레텔 베이커리에서도 과자를 만들때는 이곳의 반죽 배합을 참고한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다.
오공은 진열장을 살펴 보았다. 아직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하는 듯한 오공의 표정에 진저브레드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셨네요! 지금 막 오븐에서 과자를 꺼낸 참이거든요!”
“아하! 어쩐지 여기에 오고 싶더라니. 슬슬 새로운 과자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자, 이쪽으로 오시죠!”
진저브레드맨은 오공을 가게 한 쪽에 마련된 푹신한 소파로 안내했다. 옆자리에는 어느 커플이 색색의 마카롱을 예쁘게 쌓아놓고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오공님의 코는 속일 수가 없군요. 이달의 신작은 얼 그레이를 넣은 까눌레와 복숭아를 넣은 티그레입니다!”
오공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반짝반짝 빛나는 은쟁반과 3단으로 된 애프터눈 티 트레이에 먹음직스러운 구움 과자들이 듬뿍 차려져 나왔다.
오공은 제일 먼저 홍차 향이 진하게 나는 종 모양의 과자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우움, 이거 식감이 아주 독특한데?”
겉은 쫀득하면서도 속은 부드럽고, 폭신폭신하지만 씹히는 감촉이 좋으며, 달콤하면서도 고소하다는 오공의 평에 진저브레드맨은 감격한 척 눈가를 훔쳤다.
“티그레는 어떠세요? 오공님 때문에 일부러 복숭아를 넣은 버젼을 추가했다고요!”
“말해 뭐해! 복숭아가 들어간 건 뭐든지 최고라고!”
“사실 바나나를 넣은 버젼도 있는데…”
“뭐? 그런 건 진작에 얘기해야지! 어서 맛보게 해줘!”
끊임없이 과자를 우물거리며 오공은 미식가라도 된 양, 긴 평을 늘어놓았다. 진저브레드맨은 연신 눈가를 훔치는 시늉을 했고, 가끔은 메모까지 해가며 오공의 평을 경청하는 척했다. 오공의 평은 대체로 잘 들어맞았기에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영업 차원이었다. 진저브레드맨은 그간의 경험으로 오공을 치켜세워주는 만큼 매상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공의 감상을 들을 때마다 신상 과자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아서 너무 기쁘다는 얘기를 하는 진저브레드맨의 뒤로 보이는 풍경이 어느새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히고 있던 오공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서두르지 않으면  용궁의 예약에 늦을 것 같았다.
“오늘은 이만 가야겠어. 용궁에 예약을 해놨거든. 시식만 하고 가서 미안해!”
“어휴, 오공님이라면 시식만이라도 언제든 환영이죠!”
딸랑딸랑!
진저브레드맨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오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진저브레드맨은 뿌듯한 맘으로 까눌레와 티그레를 진열장에 전시했다. 오공의 평대로라면 이 과자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것이 분명했다. 진저브레드맨은 다음에는 포장을 권유해서 매상을 조금이라도 더 발생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공은 시놉 시티의 거리를 속도를 내 뛰어갔다.
털이 복슬복슬한 곰이 서빙을 하는 아기자기한 가게를 지나고, 알록달록한 접시들로 장식된 세련된 가게도 지나쳐 오공이 도달한 곳은 도원경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느낌의 입구에 화려한 옷을 입은 시녀들이 늘어서 손님을 맞이하는 시놉 시티의 최고급 레스토랑, 용궁이었다.
누군가는 입구에 놓인 메뉴판과 간판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었다. 오공은 가게 사진이나 음식 사진을 왜들 그렇게 찍어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어! 나야!”
“어서 오십시오, 오공님! 예약하신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오공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헐레벌떡 지배인이 나타나 오공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급하게 나오느라 문에 부딪힌 지배인의 몸에서 비늘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번쩍거렸다.
오공은 겉옷을 벗어 지배인에게 휙 던져버렸다. 아슬아슬하게 옷을 받아든 지배인은 시녀에게 눈짓을 했고, 시녀는 오공을 안쪽 깊숙한 방으로 안내했다. 곧 또다른 시녀가 나타나 지배인에게서 오공의 겉옷을 받아들었고, 지배인은 거울을 보며 수염을 가다듬은 후 바쁘다는 듯 안으로 사라졌다.
오공이 들어간 방에는 이미 한 상 가득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은 오공은 가장 먼저 복숭아를 하나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과육과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차올랐지만 오공은 천계에서 먹던 복숭아에 비해서는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아무리 용궁이라 해도 천계의 복숭아를 공수해 오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공은 문득 천계에서의 나날을 떠올렸다.
“오공님의 별명이 정말로 제천대성인가요?”
지배인이 보내 오공의 시중을 들던 시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공을 향해 물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되었고 나이가 어려 오공의 비위를 맞춰주기엔 딱이라는 지배인의 생각은 적중했다.
오공은 짐짓 화난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별명이라니! 직위라고, 직위.”
“어머, 죄송해요. 제가 잘 몰라서… 그치만 제천대성이란 하늘과 맞먹는 큰 성인이라는 뜻이라는 건 알아요!”
“키킥! 그렇게 불리던 때도 있었지.”
한 바구니 가득 담겨 있던 복숭아를 모두 먹어 치운 오공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다른 음식들에도 손을 뻗으며 생각에 잠겼다. 수상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영감들과 같이 놀며 매일같이 반도 복숭아를 따 먹던 한가하고 평화롭던 나날들. 그때는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치만! 복숭아 좀 따먹었다고 해서 오공님을 바위산 아래 봉인해버린 건 정말 너무했어요! 석가여래 님 말이에요!”
“내 말이 그 말이야!! 무려 오백 년이라고. 믿어져? 오백 년 동안이나 산 아래에 갇혀 있는 그 기분… 정말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거라고!”
“그치만… 전 아직 백 살도 안 돼서… 정말 상상조차 못하겠어요.”
“뭐, 그래도 너처럼 어린 시녀도 내 무용담을  알고 있다니, 역시 용궁은 격조가 높네? 헤헤.”
“어떻게 오공님을 모를 수가 있겠어요! 다른 분들이 모두 입을 모아 오공님의 이야기를 해주신 걸요.”
“그, 그래? 엣헴….“
시녀는 진심을 담아 오공의 말에 맞장구를 쳤고, 오공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시놉 시티에서의 자신을 제천대성의 직위를 가진 오공이라고 알아주는 이가 워낙에 없었던 탓이다.
천계에서는 귀한 복숭아를 모두 훔쳐먹고도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오공을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석가여래에 의해 오공은 오행산 아래에 봉인되었고 무려 오백 년이 지나서야 삼장에 의해 구출되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오공은 삼장의 답답함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갔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왔다.  삼장은 그 사이에 관세음보살에게서 긴고아를 받은 상태였다.
그 후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오공은 불경을 찾아 천축국으로 떠나는 삼장의 여행에 함께하게 됐고, 팔계와 오정을 만나 결국 서천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으로 인해 서천에 도달하기 전에 위치 퀸과 라비가 나타나 일행을 덮쳤고, 삼장은 납치당했다. 마지막에… 뭐라고 했더라? 무슨 말을 했었는데…
여튼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공은 낯선 세상, 라이브러리 월드의 시놉 시티에 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팔계와 오정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같이 안 계신 거예요?”
“어…? 그러게? 걔넨 어떻게 됐지?”
오공은 시놉 시티에 온 뒤 팔계와 오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내 심드렁해졌다.
“흠… 뭐 어디서든 알아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겠지!”
오공은 굳이 다 큰 요괴 녀석들의 걱정을 자신이 할 필요가 있나 하며, 식사에나 좀 더 열중하기로 했다. 용궁의 예약 시간을 맞추느라 뛰어온 탓에 진저브레드 패밀리에서 먹은 과자는 이미 애초에 깨끗이 소화가 된 후였던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부른 배를 안고 계산을 하려던 오공은 눈에 띄게 얇아진 금낭을 보고 시무룩해졌다. 시놉 시티에 온지도 어느덧 제법 시간이 흘렀다. 삼장과 서천을 향해 가면서 신도들이 베풀어준 각종 재물인 보시를 라이브러리 월드의 돈으로 바꾼 결과는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그만큼 오공은 시놉시티에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즐겼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구두장이 요정들에게 구매한 것이었고, 시녀가 들고 있는 겉옷은 두루미가 베를 짜 옷을 만드는 리넨 드 그루의 것이었다. 하나 같이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인정 받는 고급품들이었다.
리넨 드 그루는 모든 옷을 특별 제작하는 곳으로 오공의 옷에는 꼬리 구멍을 따로 내 주었고, 감동한 오공은 바로 단골이 되었다. 붉은 눈동자가 잘 돋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자수로 놓은 점퍼를 개인적으로 주문 제작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 잠시 보류해둔 곳이기도 했다. 물론 그 점퍼가 아니라도 지금 입은 점퍼도 무척 마음에 들긴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의 모습이 오공은 마음에 쏙 들었다. 아무도 자신을 눈여겨 봐주는 이가 없다는 건 좀 섭섭했지만 말이다.
제천대성이라 불리던 오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그냥 시놉 시티에서 놀고먹는 원숭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오공은 울적해졌다.
화수분이 아닌 금낭을 원망하며 계산을 하고 나온 밤거리의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오공은 어쩐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이럴 땐 음악이지!”
오공은 아까 거리에서 새로 오픈했다는 클럽의 전단을 받은 것이 생각났다. 유명한 디제이를 초청해서 크게 행사를 벌인다고 했는데…
오공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꼬깃꼬깃해진 전단을 꺼내 살펴 보았다. 커다란 선글라스에 비니를 쓴 사람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내밀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유명하다는 디제이인 모양이다.
오공은 잠시동안 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디제이를 따라 손을 앞으로 내밀어보았다. 똑같은 포즈를 취한다면 당연히 자신이 좀 더 멋있어 보일 것이다.
혼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보던 오공은 순간 머쓱해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 오공은 어쩐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클럽으로 향했다.
“여어, 나야!”
“에이요! 왔어, 오공? 딱 좋을 때야! 지금 막 이벤트가 시작됐다고!”
클럽의 문지기가 오공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공은 문지기와 주먹을 꿍- 마주치고는 묵직한 문을 가볍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지기는 종종 놀러 와서 음악을 즐기고 돈도 흥청망청 쓰는 오공의 정체가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원래도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문지기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공은 그 점이 가끔 섭섭했다. 내가 원래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같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곤 했다.
순식간에 쿵쿵거리는 비트와 음악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클럽은 이미 등장인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대는 물론, 구석진 곳, 기둥 뒤까지. 저마다 멋을 낸 이들은 흥에 겨워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무대 한 가운데에는 디제잉 부스가 새로이 마련되어있었고, 그곳에는 포스터에서 본 커다란 선글라스에 깔끔하게 손질한 콧수염, 그리고 모자 대신 깨끗한 민머리의 디제이가 현란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오, 디제잉이라… 좀 멋있는데? 나중에 나도 한번 해봐?’
민머리의 디제이를 보며 어딘가 낯익은 기분이 들었던 오공은 전단을 너무 열심히 들여다본 탓이라 생각하고 음악에 몸을 맡겼다. 현란한 조명이 천장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디제이의 머리가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오공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고, 그때 오공의 귓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공아…’
오공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곳에서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
오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헛것이 다 들리고, 요즘 너무 신나게 놀았나? 음악이 너무 시끄러운가? 귀가 안 좋아진 건 아닐까? 이비인후과에 가봐야겠어, 까지 생각했을 때 다시금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행을 멈춰선 안 되느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오공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삼장은 위치퀸에게 납치당하지 않았는가! 설사 납치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삼장은 이런 곳에 올만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 때 또 다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무언가가 관자놀이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긴고아가 머리를 세차게 조여온 것이다.
“마, 말도 안돼!”
오공은 비명을 질렀다.
음악 소리를 선명하게 뚫고 나온 오공의 우렁찬 비명에 모두가 놀라 오공을 바라보았다. 디제이 또한 손을 멈추고 오공을 바라보았고, 흥겨운 비트만이 계속 쿵작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클럽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에 당황한 오공은 손사래를 치며 디제에게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해!”
디제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디제잉을 위해 고개를 숙였고, 그의 머리가 다시금 조명을 받아 번쩍하고 빛났다.
그리고 희미한 두통과 함께 또 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행을 계속하렴…’
“으, 으아아아!!”
오공은 가득 찬 사람들을 마구 쓰러트리듯 헤집으며 클럽을 뛰쳐나갔다. 오공에게 밀쳐져 투덜거리는 등장인물들은 물론 디제이까지 오공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원숭이 한 마리의 부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묻혀 순식간에 잊히고 말았다.
“헉, 헉…”
클럽 입구에서 숨을 몰아쉬던 오공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삼장의 목소리였다.
생각해보니 그건 삼장이 위치 퀸에게 납치되면서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었다.
‘오공아, 선행을 계속하렴. 선행을 멈춰선 안 되느니…’
선행을 하지 않아서, 긴고아가 갑자기 조여왔단 말인가?
…확실히 그간 선행 같은 건 잊고 아주 신나게 놀긴 했다. 특히 오늘은 그랬다. 애초에 시놉 시티처럼 놀고 즐길 거리가 가득한 곳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선행 같은 걸 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냔 말이다.
오공은 가만히 숨을 가다듬었다. 어느새 새벽이었다.
환청, 환통이라고 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 선명했다. 하지만 삼장은 이곳에 없다. 납치되었다. 자신이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다.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서, 춤을 너무 신나게 춰서, 단 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두통이 온 걸 수도 있다. 혹시 치통을 두통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삼장의 목소리는 민머리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삼장을 떠올려서 헛것을 들은 걸 수도 있다. 그래, 처음보고 익숙하다고 생각한 건 민머리 때문이었다. 전단에서는 비니를 쓰고 있어서 몰랐던 것이다. 디제이놈이 잘못했네!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공은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그럴 리가 없어. 잘못 들은 거야. 잘못 느낀 거야. 사람이 살다 보면 착각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다시 클럽으로 들어갈까, 어쩔까를 생각하던 오공은 흥이 식어버렸다는 생각에 개운하게 씻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온천 지대에 접어든 오공은 고민할 것도 없이 선녀 온천으로 향했다.
이곳은 과거 화산지대였던 곳으로, 일반적인 온천은 물론, 노천탕, 간헐천 등 다양한 온천이 몰려 있었다. 그 중에서 오공이 자주 가는 『선녀 온천』은 나무꾼에 속아서 결혼한 선녀가 이혼 후 차린 종합 온천 시설로 크고 화려한 시설이 장점이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선녀 온천은 텅 비어있지는 않았다. 오공은 어쩐지 쑥스러워져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오공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시무룩해진 오공은 홀로 쓸 수 있는 작은 노천탕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향하기로 했다.
오공은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던지고는 사방팔방으로 물을 튀며 노천탕에 뛰어들었다. 요란한 소리가 주변으로 흩어졌다.
“아어, 좋다아….”
조금 뜨겁다 싶은 물에 몸을 푹 담근 오공은 절로 나오는 신음 소리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도 오공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 오공은 노곤노곤한 몸 구석구석 퍼지는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크, 천계가 따로 있나. 내가 좋으면 거기가 천계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던 땀을 훔치던 오공은 손에 걸리는 긴고아의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아까 그건 정말 착각이었겠지? 삼장이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착한 일 안 한다고 긴고주 외우고 그런 거 아니겠지…?”
오공은 점점 눈이 껌벅껌벅 감기는 것을 느꼈다. 착각이 분명했던 듯, 두통이 사라지면서 긴장이 풀렸고 더불어 몸까지 따뜻해지자 마음도 편안해진 모양이었다.
목욕하다가 잠들면 큰일나는데. 천하의 오공이라 할지라도 수마의 유혹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오공의 시야가 점점 좁아지면서 이윽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늘이 오색찬란했다.
낮고 넓게 펼쳐진 하늘 아래 보랏빛 가로수가 우거진 길을 오공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오공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오공을 부르고 있었다. 옷을 입어봐라, 빵을 먹어봐라, 사인을 해달라, 사진을 찍어달라며 저마다 오공에게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오공은 흐뭇하게 웃으며 금낭을 열었다. 금낭 속에는 지폐뿐만 아니라 금은보화가 가득했다.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었다. 오공은 흐뭇한 맘으로 금낭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서 주변에 뿌렸다. 너도나도 달려와서 오공을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그때 오공은 무언가가 손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뭐야, 끈끈이라도 붙었나?”
오공은 손에 붙은 게 뭔지 살펴보았다. 그것은 긴고아였다. 오공은 질색하며 손을 흔들어댔지만 긴고아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기는커녕 몸 전체를 조여오려는 듯, 점점 커지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놔! 난 착한 일 따윈 절대 하지 않을….읍!”
오공의 몸보다 더 커진 긴고아는 이윽고 오공의 입마저도 덮어버렸다. 오공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푸하악!”
오공은 허우적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오공이 이대로 물 속에 잠겨 깨어나지 못했다면 선녀 온천은 문을 닫아야만 했겠지만, 오공은 거기까지는 생각도 못 한 채 그저 숨을 헐떡이며 이마의 고통에 집중하고 있었다. 긴고아가 분명하게 머리를 조이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착각도 아니었다.
“뭐야! 왜 머리가 아픈거야! 왜 날 조여오는 거냐고! 이유가 뭐야?!”
“도, 도둑! 도둑이야!”
순간 오공의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듯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도둑?”
오공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모든 퍼즐이 맞춰진 기분이었다. 도둑이라니. 누군가가 도둑질을 하고 있다. 도둑질은 나쁜 짓이다. 나쁜 짓을 막는 것이 곧 선행. 결국 선행을 하지 않아 긴고아가 머리를 조인 것이었다. 삼장이 자신을 지켜보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장치를 해둔 것만은 분명했다.
“쳇, 어쩔 수 없군. 이 오공님이 또 나서줘야 한다 이 말이지?”
오공은 벗어둔 옷을 아무렇게나 집어들고 노천탕을 뛰쳐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체 노천탕 쪽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고, 그 느낌을 확인시켜주듯 누군가의 비명이 다시 들려왔다.
“꺄악! 무슨 짓이야!”
“도둑 잡아라!”
긴고아의 은근한 조임을 느끼며 오공은 한달음에 바깥으로 향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보채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 착한 일!”
단체 노천탕에 도착한 오공은 우선 근처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우왕좌왕하는 등장인물들 사이로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저 녀석들이 도둑이렷다? 그런데… 한 둘이 아니잖아?
오공은 우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을 노리기로 했다. 크게 도약한 오공은 여의봉을 꺼내 들어 그림자를 후려치며 외쳤다.
“네놈이냐… 내 평화를 방해한 게!”
오공은 한 손으로 여의봉을 여유있게 돌렸다. 핑그르르 돌아간 여의봉은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그림자를 여러 번 타격했고, 딱 따다닥! 하는 소리와 그림자의 비명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으악! 뭐, 뭐야?!”
오공은 가볍게 바닥에 착지해서 그림자를 한 발로 깔아뭉갰다. 오공의 발밑에 깔린 그림자가 버둥거렸다. 옷차림으로 봐서는 H.U.N.N.T 라는 집단의 사냥꾼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미세하게 다른 느낌이긴 했다.
“뭐긴 뭐야, 네 놈을 잡아 가둘 제천대성님이시다! 네가 도둑질을 했냐?”
사냥꾼의 그림자는 순순히 자신의 죄를 시인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큰 소리로 동료들을 부른 게 그 증거였다.
“도, 도와줘! 방해꾼이 나타났다!”
사냥꾼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몇 개 인가의 그림자가 나타나 오공을 에워쌌다. 모두 오공의 발 밑에 깔린 자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웬 놈이냐!”
사냥꾼들의 외침에 오공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제천대성이라니까? 혹시 귀가 막혔냐? 이 여의봉으로 좀 뚫어줄까?”
사냥꾼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누군지 아냐?”
“ ...아니, 넌?”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너 난생이었어?”
“...너랑은 말을 말자.”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던 사냥꾼들은 오공을 향해 다시 질문을 해 왔다.
“우리를 방해하는 이유가 뭐냐?”
이 오공님의 별명도 모르는 촌놈들같으니! 오공은 부글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올라 생각과 동시에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내 평화를 먼저 방해한 건, 네놈들이잖아!”
오공은 입을 염과 동시에 여의봉을 휘둘렀다. 길이가 닿지 않을 것 같던 여의봉은 어느새 슬쩍 늘어나 오공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사냥꾼의 배를 찔렀고, 예상치 못한 공격에 허를 찔린 사냥꾼은 차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헉 하는 소리만을 내며 뒤로 나자빠졌다.
사냥꾼들은 당황한듯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 중 한 놈이 외쳤다.
“한꺼번에 덤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공을 향해 덤벼드는 사냥꾼들을 보며 오공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오공은 여의봉을 쥔 손에 힘을 단단히 주었다. 이런 조무래기들을 상대로는 도술도 근두운도 필요없었다.
여의봉만으로도 충분했다.
“늘어나라!!!”
늘씬하게 뻗어버린 사냥꾼들 사이에서 오공은 한숨을 쉬었다.
“이게 뭐야… 결국 또 착한 일을 해버렸잖아. 뭐, 덕분에 두통은 확실히 사라진 것 같긴 하지만.”
오공은 긴고아를 만지작거렸다. 삼장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착한 일을 하자마자 두통이 사라졌다고? 뭔가 이상한데… 상념에 잠긴 오공을 방해한 것은 손뼉 소리였다.
짝…
짝짝…
짝짝짝짝짝!
갑자기 울려 퍼진 손뼉 소리에 어리둥절해진 오공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녀 온천을 이용하던 고객들과 온천을 관리하던 선녀들이 모여 오공을 향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온 듯한 어린이는 스마트폰으로 오공의 동영상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뭐야?!”
오공은 갑작스러운 관심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짐짓 당황한 척 소리쳤다.
모여있던 이들 가운데서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선녀 한 명이 나왔다.
“나는 이곳의 관리자요. 나무꾼과 헌터 일당을 물리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소.”
“나무꾼과 헌터? 걔네가 왜 온천을 공격했어?”
“거기에는 길고 긴 이야기가 있소…”
관리자 선녀의 이야기는 정말로 길었지만, 내용 자체는 단순했다. 자신의 날개옷을 훔쳐 간 것이 나무꾼이었음을 알게 된 선녀는 이혼한 후, 라이브러리 월드의 기술과 스크루지 뱅크의 도움을 받아 온천을 창업했던 것. 다만 이를 알고 이를 갈던 나무꾼이 일부 사냥꾼과 손을 잡아, 종종 온천을 습격해 왔던 것이다. H.U.N.N.T 에서는 그들은 H.U.N.N.T 에서도 쫓고 있는 악질 사냥꾼들이라 자신들도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최대한 많은 악질 사냥꾼들을 잡아 선녀 온천을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 H.U.N.N.T 만을 믿고 있을 수 없었던 온천 측에서는 자경단에 종종 순찰을 부탁하기 했지만, 하필 오늘밤은 사람이 부족해 순찰 나온 팀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공이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을 해치워버린 것이다.
“그대의 선행에 정말 감사드리는 바요…. 사소하지만, 그대에게 선녀 온천의 일주일 무료 이용권을 드리고 싶소만.”
“뭐? 아, 아니. 잠깐만. 이용권은 고맙지만 난 딱히 선행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
“세상에, 겸손하시기까지…. 이용권은 한 달로 업그레이드해드리지요!”
“뭐어?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뭘 바라고 그런건 더더욱 아니라고!”
“세상에… 그렇다면 일 년도 고려해보겠소.”
오공이 손사래를 치며 질색하는 사이, 뒤늦게 자경단이 도착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만… 벌써 해결된 모양이군요.”
자경단은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했지만 관리자 선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오공을 가리키며 뿌듯한 얼굴로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렇소. 갑작스레 의인께서 등장하셔서 모두를 소탕해주셨다오.”
의인이라니! 오공은 질색했다. 하지만 모두들 다시 손뼉을 쳤고, 오공은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두통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자경단의 관계자는 오공을 보더니 전투에 아주 적합해보이는 탄탄한 몸이라며 감탄을 하고, 여의봉을 보고도 아주 멋진 무기라며 감탄했지만 오공이 장난삼아 한번 들어보라고 한 권유는 정중히 사양했다. 오공은 내심 제법이라고, 자경단이라는 곳이 보기보다는 쓸만한 집단인가보다는 생각을 했다.
“자경단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혹시 H.U.N.N.T 나 자경단 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결을…”
“...아니야! 아니라고!”
의인만은 되고 싶지 않았던 곤혹스러운 오공의 비명이 높이높이 울려 퍼졌으나 모두의 환호성 소리에 묻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오공은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보통 때에는 밤사이 올 만한 연락은 딱히 없었다. 뉴스 속보, 혹은 날씨 정보 정도. 그런데 이 날은 좀 달랐다. 휴대폰 화면 가득 뭔가가 떠 있었다.
“뭐야, 밤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까치집이 된 머리를 긁적이던 오공의 눈이 점점 커졌다.
‘헤이! 정의의 사도! 굉장한 활약 잘 봤어!’
‘오공, 맨날 놀러만 다니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용사 오공이었어?’
‘오공님, 활약 잘 보았습니다. 시놉 시티를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10% 할인 쿠폰과 신메뉴 시식권을 동봉합니다.’
……
“이게 다… 뭐야?”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 오공은 머리를 긁적이며 티비를 켰다. 일기예보를 보기 위해 뉴스를 튼 오공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원숭이가 기다란 봉을 들고 검은 그림자를 제압하는 장면을 보았다.
“거 참, 잘생긴 원숭이네… 속시원하게 잘 때려잡… 응?!”
머리에 긴고아를 쓰고 여의봉을 든 원숭이가 또 있을 리는 만무한 일. 뉴스에 나오고 있는 원숭이는 바로 자신이었다.
오공이 넋이 나갔거나 말거나, 티비 속의 화면은 곧 리포터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간밤에 보았던 관리자 선녀가 날개옷으로 연신 눈가를 찍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모두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오. 그런데 갑자기 의인께서 나타나셔서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주셨소.”
“자신의 목적이나 정체에 대해서는 따로 밝힌 바가 없었나요?”
리포터는 공손하게 물었고, 관리자 선녀 역시 공손하게 대답했다.
“일언반구도 없으셨소. 심지어 이름조차 밝히지 않으셨다오. 허나 그분의 붉은 눈동자를 우리 모두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소. 우리 선녀 온천에서는 의인을 기념하기 위해 그 분에게 선녀 온천 평생 무료 이용권을 드리기로 했소.”
오공은 차마 감추지 못한 채 만면에 미소를 가득 드리웠다.
“뭐야, 그 어두운 데서 내 눈동자 색은 어떻게 봤어? 참 나… 어둠도 이 미모를 가리지는 못했구먼? 거기다 평생 무료라고? 오…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의인이라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다음 인터뷰이는 웬 어린아이였다.
“어랏, 저 녀석 날 스마트폰으로 찍던 그 녀석이 아닌가…?
어린이는 카메라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아주 똘똘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자기를 제천대성이라고 칭했어요. 제가 스마트폰으로 똑똑히 찍었어요. 뉴스에 제보한 것도 저고요! 스매시 차일드 채널을 검색해주세요, 구독과 좋아요 필…..읍읍! 이거 놔, 엄마! 내 채널을 홍보할 좋은 기회란 말이야!
어린이는 어색하게 웃는 부모의 손에 의해 끌려나갔다. 역시 어색하게 웃는 리포터가 다시 나타났다.
“네, 지금까지 리포터…”
오공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매시 차일드 채널…?”
그날 오후, 오공은 선녀 온천을 다시 찾았다. 관리자 선녀는 반색하며 오공을 맞이했고, 평생 온천 이용권을 커다란 액자에 넣어 선물해주었으며, 기념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달라고 했다. 액자는 기념으로 온천 로비의 정중앙에 걸렸다. 오공은 마땅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있는 자신이 조금 쑥스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제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이 훨씬 많아질 터였다.
오공은 관리자 선녀에게 붙들려 사진을 몇 장이나 더 찍은 다음에야 원래 온천을 찾아온 목적에 대해 물어 볼 수 있었다.
“내 영상을 찍은 어린이가 누구인지 혹시 알아?”
관리자 선녀는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이오! 그 애의 어머니는 달목욕을 끊어놓고 우리 온천을 이용한다오.”
“달목욕… 이 뭐야? 아니, 아니.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니까 대답하지마.”
달목욕에 대해서 신나게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던 관리자 선녀는 다소 시무룩해진 것 같았지만 오공이 그 어린이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자, 금방 원하는 대답을 내주었다. 평소 일정대로라면 이번 주말에 어머니와 함께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 애는 어린만큼 어찌나 신문물에 잘 적응했는지! 우리 온천을 콘텐츠로 꽤나 이름난 스트리머로 활약하고 있지 뭐요! 덕분에 은근히 이용객이 늘기도 했다오. 그 애의 채널을 보고 찾아왔다는 손님이 아직까지도 제법 있소.”
“콘텐츠? 스트리… 뭐?”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찍은 영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그렇게 부른다오. 나도 잘은 모르니 그 어린이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는게 좋지 않겠소?”
그리고 주말, 오공은 조금 일찍 온천에 도착해 몸을 담그고 있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무엇부터 질문해야 할지 생각에 잠겨 있던 오공의 옆에 갑자기 누군가 어흠, 하는 소리와 함께 물 속으로 들어왔다.
느긋한 분위기를 방해당했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린 오공은 대체 누구인가 싶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시선을 마주해야 할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좀 더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오공이 애타게 찾던 어린이였다.
“너…!”
“저 찾으셨다면서요?”
“그래! 너, 말이야. 허락도 없이 내 영상을…”
“일단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주세요.”
“…뭐?”
“아저씨한테는 식혜 추천할게요. 드셔보셨어요?”
“…아니.”
“달콤하고 시원하고 엄청 맛있어요. 밥알도 씹히고요. 제가 주문하고 올게요!”
오공은 너무 당당한 어린이의 태도에 얼이 빠져,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어린이는 금세 자신의 몫인 아이스크림과 오공의 몫인 듯한 얼음이 담긴 컵에 찰랑거리는 음료수를 가져왔고, 오공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선수를 쳐 외쳤다.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스트리머가 될 수 있어요!”
오공은 얘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나 싶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그러니까…”
오공은 자신의 허락도 없이 어린이가 뉴스에 영상을 보낸 것은 잘못이라고 하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어린이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가 아저씨라면 지금쯤 백만 독자는 모았을텐데! 아저씨 영상 조회수가 벌써 이만큼이나 많아졌다고요!”
“아니, 그러니까! 허락도 없이 내 영상을 올려서 그걸로 지금 조회수라는 걸 올렸다는 얘기 아냐?!”
“네. 맞아요.”
오공은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기로 했다.
“근데 조회수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거냐?”
어린이는 한입 베어먹은 아이스크림을 주륵 흘렸다.
“아저씨, 채널 몰라요?”
“모르는데.”
“……”
어린이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골똘히 고민하는 눈치였다.
“인터넷이 뭔지는 아시죠?
오공은 버럭 화를 낼 뻔 했다.
“누굴 바보로 아냐?!”
“아니 그런데 채널을 몰라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동영상이 엄청 많이 나오잖아요!”
“그렇지.”
“그 동영상은 모두 채널에 올라오는 거에요.”
어린이는 스마트폰을 꺼내 오공에게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저씨 영상을 올리고 나서 제 구독자가 천명이나 늘어났다고요!”
“내 얼굴을 팔아서?”
어린이는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그럼 안 돼요?”
오공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긴고아의 감각이 차갑게 느껴졌다. 안돼, 지금 화를 내면 긴고아가 또 이마를 조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 허락을…”
“지금 구하고 있잖아요. 허락해주세요.”
“아니…”
“아저씨, 유명해지는 거 싫으세요?”
오공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답변하고 말았다.
“...뭐?”
“조회수 좀 보세요. 지금도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이 영상을 계속 올려두면 아저씨는 유명해지고, 저는 좋아요와 구독자 수를 늘릴 수 있다고요. 서로 좋은 것 아니에요?
오공은 점점 할 말이 없어졌다. 어린이를 상대로 무슨 말을 더 한단 말인가. 그리고 유명해지는 것. 당연히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원하는 바였다. 모두가 이야기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알아본다면…!
오공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태연스럽게 말하는 어린이를 머쓱하게 쳐다보다 자신의 몫으로 주문한 식혜를 빨대로 쭈욱 빨아들였다.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는 맛이었다. 오공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며 만족스러워하던 어린이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자, 그대로 계세요?”
“뭐? 지, 지금 뭐하는 거야?”
“라이브 방송 하려고요. 찍어도 되죠? 이번에는 미리 허락 구하는 거예요!”
“라이브 방송은 또 뭐야? 실시간으로 방송을 한단 말이야?”
“네. 질문도 받고, 대답도 해 주고요!”
“내가 식혜 먹는 걸? 이런 걸 내보내서 뭐하게?”
어린이는 한숨을 쉬며 오공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이 참! 식혜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온천의 의인, 소문이 무성한 주인공을 다시 만나다! 이게 중요한 거죠. 심지어 라이브로요!”
“그럼 뭐가 좋은데?”
어린이의 이번 한숨은 가히 땅이 꺼질만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잖아요. 다들 아저씨가 누군지 궁금해한다고요!”
“나, 나를? 정말?”
“자, 그럼 시작할게요?”
“자, 잠깐만! 거울 좀 보고!”
오공은 기진맥진해졌다. 라이브 방송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피곤한 일이었던 것이다. 시청자들은 오공을 향해 별의별 질문을 다 해왔고, 어린이는 그 중에서도 적당한 질문만을 잘 골라내 오공에게 전달해주었지만 오공은 어디를 봐야할지, 누구를 보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한참을 쩔쩔 매기만 했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오공은 다음에는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이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오공은 자신이 직접 라이브 방송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라이브 방송이라는 것은 짜릿하기도 했던 것이다.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화면 너머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환호하고 있었다. 이 환호성을 직접 들을 수 있다면.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직접 전해지는 관심이 오공에겐 필요했다.
구독자 수가 두배도 넘게 늘었다며 기뻐하는 어린이를 붙들고 오공은 슬며시 물어봤다.
“그 스트리머랑 채널이라는 것 말인데…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야?”
어린이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태까지 제 얘기 제대로 들으신 거 맞아요?”
오공은 어린이에게 배운걸 그대로 써먹기로 했다. 바로 태연하게 대답하기였다.
“난 이 세계에 온지 얼마 안됐단 말이야!”
“뭐가 더 궁금한거예요? 마지막으로 질문 타임 드릴게요. “
오공이 입을 열려던 찰나, 어린이가 갑자기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만요! 그 전에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오공은 어리둥절해졌다. 지금에 와서 더 중요한게 뭐가 있단 말인가?
“뭔데?”
“아이스크림 하나만 더 주문할게요. 아저씨도 식혜 더 드실래요?”
잠시 망설이던 오공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 이번엔 나도 아이스크림.”
그날 이후 오공은 한참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셀카만 몇 번 찍고 말았던 스마트폰의 기능을 하나하나 공부하고, 영상 편집에 대해서 배우고, 자신의 콘텐츠에 가장 걸맞은 플랫폼을 조사했다. 오공의 생각대로였다. 확실히 시놉시티에는 온갖 놀고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 오프라인에 국한되어있던 오공의 세계는 온라인을 통해 무한대로 넓어지고 있었다.
어린이의 말대로라면 스트리머라는 직업은 오공에게 딱이었다. 삼장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언제가 재회할 그날에 대비해 오공은 자신이 선행을 쭉 해왔음을 증거로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스트리머가 되서 백만 구독자와 좋아요를 달성하면 엄청난 수익은 물론, 시놉 시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오공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당연히 긴고아로 인해 고통 받는 일 역시 사라질 것이었다.
오공은 코를 쓱 훔치며 새로 주문한 스마트폰을 살펴 보았다. 구동속도 최상, 초경량에 흔들림 방지와 수평 기능도 뛰어나고 노이즈 감소 기능으로 저조도의 야외환경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자신처럼 활동성 높은 스트리머들은 두 사용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제품이었다. 오공은 마치 두 번째 여의봉을 마련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이 여의봉은 오공의 화수분이 되어줄 수도 있었다.
오공은 채널 이름을 고민했다. 뭔가 강력한 이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사말은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다.
“여어, 안녕! 좋아요랑 구독 잊지 마세요! 여기는 제천대성, 당신은 나에게 반하나? 아니, 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