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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 시티에 어서 오세요! - 4화

“...뭐?”
천진난만하게까지 들리는 피터의 말에, 구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피터는 팔에 올라탄 거미와 지네, 뱀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듯 몸을 돌려 구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아니, 확실히 좀 신기하긴 했는데… 음… 이게 끝인가 싶어서.”
피터의 목소리에는 기대했는데 별 거 아니라는 실망의 기색까지 있었다. 바로 머리 옆에서는 지네와 거미가 기어다니고, 뱀이 팔을 쥐어짜고 있음에도 두려움이나 고통도 없어 보였다.
“너… 그런 건 전혀 무섭지 않다는 것이냐?”
“내가 살던 이야기는 외딴 섬이라서 거미도 지네도 뱀도 많긴 해서 그리 안 무섭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가까이에 있으면 징그럽긴 하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구미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피터는 벌레들이나 뱀을 떼어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구미는 이를 악 문 채, 양 손에서 날카로운 손톱을 뽑아내고는 피터에게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외치며 달려드는 구미의 모습이, 순식간에 세 개로 불어났다. 완전히 똑같이 생긴, 세 개의 환영. 둘의 싸움을 지켜보는 누구도 어느 것이 진짜 구미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흥!”
하지만 피터는 힐끗 구미의 발치를 보더니, 세 개의 환영 중 하나로 달려들었다. 놀란 구미가 다급히 손을 휘둘러 피터의 단검을 막아냈다. 나머지 두 개의 환영은 똑같이 손을 휘둘렀지만, 허공을 막아내려 할 뿐이었다. 구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외쳤다.
“어떻게? 어떻게 내 환술을 깬 것이냐?!”
자신의 환술은 완벽할 것이다. 그런데 이 꼬맹이는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환술을 깬다는 말인가?
다시 거리를 벌린채 놀란 구미에게, 피터는 씩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네 환술은 신기했어. 완전 진짜처럼 보였으니까. 아까 난 공터에서 땅까지 팠었다고.”
구미의 환술은 상대를 완벽하게 속인다. 그때, 실제로 피터는 제자리걸음을 하다 숨겨진 생쥐 가족의 집 앞에서 땅을 팔 뿐이었지만, 환술의 영향에 있던 모두, 심지어 피터 본인에게도 그렇게 보이고 느껴졌다.
“그럼 어떻게!”
“그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예전에 경험이 있었어서 특히 신경 쓰이는 게 있거든. 공터에 석양이 질 때 그걸 눈치 챘어.”
“그걸?”
구미의 질문에,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림자.”
“그림자…? 앗!”
피터의 말에 의아해하던 구미는 깨달았다. 피터는 그 놀란 반응이 즐겁다는 듯 씩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예전에 내 그림자가 도망친 적 있어서, 그런 일이 없도록 그림자에는 늘 신경쓰고 있거든. 근데 네 환술에는 그림자가 이상했어.”
그 말에, 스노우는 깨달았다. 지금도 구미와 같은 모습으로 놀라고 있는 두 개의 분신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구미 역시 놀란 듯 자신의 밑을 바라봤지만, 두 개의 분신은 아무 것도 없는 발 밑을 바라볼 뿐이었다.
피터가 처음 이상함을 깨달았던 건, 석양이 지는 공터에 놓인 물건들의 그림자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석양이 지고 있으니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야 하는데, 거기 있는 사물들은 그렇지 않았다.
구미의 환술은 대상을 완벽하게 복제해내고,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환상을 보여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림자는 달랐다. 주변에 있는 빛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 그것들을 환술을 통해 재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림자는 물건이 빛을 받아야만 생기니까.
“방금 전의 벌레나 뱀들도, 내 그림자를 보니까 보이지 않더라고. 그럼 환상이라는 게 확실하니까 두려울 게 없지.”
피터는 신디와 스노우가 들고 있는 손전등을 바라보며 웃었다. 만약 깜빡이는 작은 가로등 하나 뿐이었다면, 그림자를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구미가 손전등을 깨버릴 수도 있다. 달빛만 받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를 알아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손전등, 그것도 밝은 게 필요하다고…”
신디는 놀라서 중얼거렸다. 피터가 꼭 필요하다고 해서 구해왔지만, 그런 이유가 숨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신디는 지금까지 피터가 생각 없이 행동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것, 그저 바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터는 단검을 스스로의 실수를 깨닫고 인상을 찌푸린 구미에게 겨누며 말했다.
“자, 네 환술은 나한테 안 통해! 이제 그만 얌전히 항복하고 포기하시지!”
“이… 이 꼬맹이가…!”
구미는 으득,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 물며 중얼거렸다.
시선을 돌려 구미는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을 바라봤다. 각양각색의 표정을 짓고 구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들의 두목이 최강이 아니었던 것, 고작 그런 실수로 밝혀질 환술이라는 것에 놀란 것으로 구미에게는 느껴졌다.
부하들 앞에서는 창피를 당하고,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환술은 깨어졌다. 그것도 고작해야 어린 꼬맹이 하나에게. 구미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 상처는 피터에 대한 맹렬한 적의와 분노로 변해갔다.
“이 꼬맹이…!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
구미는 피터를 향해 표독스럽게 외쳤다. 고혹적인 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거기에 있는 것은 이제 흉폭한 맹수의 모습일 뿐이었다. 구미는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 지금 당장 보물을 본거지로 옮겨!”
“하, 하지만 두목…”
“이런 결투 같은 장난, 계속할 필요 없잖아요! 우리가 한번에...!”
“내 명령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당장 움직여라!”
부하의 말을 딱 잘라버리며 구미는 외쳤다. 부하의 말대로 부하들과 함께 한 번에 공격한다면, 저 꼬맹이들을 모두 해치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회복되지 않는다. 아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악당은 비겁한 것이 칭찬이라고 했으면서, 구미 본인도 어느새 그 말을 잊었다.
“네, 네! 두목! 가자!”
울부짖는 듯한 구미의 외침에 악당들은 허둥지둥 서둘러 옮기던 짐을 다시 들어 올렸다. 몇 마리는 피터를 응원하며 싸움을 지켜보던 생쥐 가족들을 움켜잡았다.
“스노우, 신디! 부탁해!”
피터는 구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외쳤다. 스노우와 신디는 피터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까 전 준비하며 세웠던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 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피터를 바라봤지만, 피터가 아무 생각 없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지금은 아까보다는 마음이 놓였다.
‘그렇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위해 달려가던 스노우는 멀어지는 피터를 보며 생각했다.
‘피터, 정면으로 싸워도 구미와 싸우면 네가 불리해. 알고 있어?’
모두가 사라진 뒤의 공터. 스노우와 신디가 손전등을 놓고 갔기에 공터는 여전히 밝았지만, 그 조명을 받는 것은 이제 피터와 구미, 단 둘 뿐이었다.
“절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꼬맹아!”
“꼬맹이, 꼬맹이 하지 마. 나한테는 피터라는 이름이 있다고!”
“그럼 죽어라, 피터!”
길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외치던 구미는 피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터는 조금 전과 같이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며 단검으로 구미의 손톱을 쳐내기 시작했지만, 구미의 공격은 아까 전보다 훨씬 매섭고도 빨랐다. 아까까지의 여유와 ‘고혹적인 미녀 두목’이라는 연기는 버린 채, 피터에 대한 증오와 분노에 몸을 맡기고 요괴의 본능대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피터는 피터대로 방금 전처럼 방어와 회피에만 집중하지 않고, 구미를 쓰러트리기 위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피터의 공격은 늘 허공만을 휘둘렀다.
“하하하하하! 아직 꼬맹이에게는 이르구나!”
“시, 시끄러워!”
구미의 도발에 맞서 외쳤지만, 피터 스스로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단검을 들고 손을 쭉 내민채로 피터는 생각했다.
‘거리가 너무 짧아!’
그것이 바로, 스노우가 생각했던 피터의 불리한 점이었다.
구미는 성인 여성, 반면 피터는 아직 어린 소년.
당연히 키도, 팔 길이도 구미의 쪽이 길었다. 때문에 구미의 손톱은 어렵지 않게 피터에게 닿았지만, 피터는 팔을 쭉 뻗고 단검을 휘둘러도 구미가 조금만 물러나면 거리가 닿지 않았다.
이런 싸움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 속에서 숙적과 맞서 싸웠을 때도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피터는 하늘을 날 수 없었다.
이야기 속에서는, 피터는 친구에게 받은 ‘요정 가루’의 힘으로 하늘을 날 수 있었다. 그 능력과 재빠른 몸놀림으로 피터는 성인 남성이 휘두르는 검과도 맞서 싸울 수 있었다. 하늘을 날 수 있었기에 거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발을 땅에 붙이고, 익숙치 않은 상대와 싸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뭔가 없을까?! 이 거리를 극복할 방법이!’
필사적으로 생각하며 피터는 구미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냈지만, 매섭게 쏟아지는 구미의 손톱은 점점 피터의 손아귀에서 힘을 빼앗아갔다. 요괴인 만큼 구미의 손톱은 빠른 것 뿐만 아니라 힘도 아이인 피터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끝이다, 꼬맹아!”
“아차!”
챙─ 그르르르─…
기합과 함께 구미가 있는 힘껏 휘두른 손톱에 맞아, 피터의 단검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소리를 내며 저 멀리로 미끄러졌다. 척, 하고 자신의 가슴에 겨눈 구미의 발톱에 뒷걸음질을 치던 피터는, 결국 발에 뭔가가 걸려서 꽈당, 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야…”
엉덩방아를 찧고 신음을 흘리는 피터의 눈 앞에, 구미의 손톱이 반짝였다.
“애를 먹이는구나, 꼬맹아! 하지만 이제 다 끝났어!”
구미는 잔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홉 개의 꼬리가 즐겁다는 듯 살랑거리며 움직였다. 어느새 아름다운 여성보다는, 구미호의 무서운 얼굴이 된 구미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이제 굳이 간을 먹을 필요가 없으니 살생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를 놀리고 굴욕을 준 보답으로 네 간은 먹어야겠다. 오랜만에 맛보는 인간의 간이라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구나!”
키득거리며, 구미는 조롱하듯 말했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손톱은 반짝이며 섬뜩한 느낌을 들게 했다. 피터는 이를 악 문 채 생각했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거야? 정말?’
피터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이 새로운 세상도 더 둘러보고 싶고,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재회하고 패배한 숙적에게 다시금 자신을 증명하고도 싶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끝나지 않는 모험을 계속하고 싶었다.
‘이야기 속에서처럼, 나한테 나는 힘만 있었어도…!’
이야기 속에서 피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으며, 어떠한 역경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힘을 잃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며, 이제는 악당의 손에 최후를 맞이할 위기에 놓여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점점 다가오는 손톱을 보며 피터는 생각했다. 스노우나 신디가 있으면 도와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피터는 그 생각을 지웠다. 누군가의 도움만 받고 살아갈 수는 없다. 지금까지도 자신은 자신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해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그렇게 방법을 찾으며, 조금이라도 구미에게서 거리를 벌리려 뒤로 물러나던 피터의 손에, 어떤 물체가 잡혔다. 방금 전, 피터의 발을 걸었던 물건이었다.
‘이건…!’
“자, 이제 죽어라!”
구미는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피터에게 손톱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그때, 무언가가 날아와 구미를 강하게 때렸다.
“크악! 뭐, 뭐냐?!”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물러난 구미의 눈에 보인 것은, 손잡이가 달린 널판지를 들고 서있는 피터였다. 커다란 널판지를 든 모습은, 마치 커다란 대검을 들고 서있는 것만 같았다.
“마침 좋은 게 있었지 뭐야! 자아, 피터 님 나가신다!”
피터는 씨익, 하고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이곳은 또 다른 세계, 라이브러리 월드였다.
이야기와는 다른 세계. 그렇다면 이야기 속의 일만 그리워해도 바뀌는 건 없다. 이 세계에서, 이 세계에 맞는 새로운 자신이 되어야 했다.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익숙한 검으로는 부족하다고 한탄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돌아갈 때까지, 주인공으로 남아있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큭, 이 꼬맹이가!”
구미는 이를 드러내며 다시금 달려들었지만, 피터는 커다란 널판지 검으로 구미의 공격을 막아냈다. 피터가 널판지 검을 휘두르자 구미는 뒤로 물러났지만, 방금 전의 단검을 휘두를 때와는 다르게 거리가 길고 힘이 실려 피하고 막기 어려웠다.
“이거, 다루기 힘들어! 검술을 배워야하나?!”
널판지 검을 휘두르는 건 쉽지 않았다. 피터가 평소에 쓰던 단검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그렇지만 이대로 질 수는 없다. 피터는 이를 악 물고, 익숙치 않은 무기로도 자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읏! 익! 하압! 차!”
“큭! 이! 녀석! 악!”
피터가 휘두르는 널판지 검을 구미는 열심히 피하고 막았지만, 피터처럼 유연하지 않은 움직임으로는 모두를 피하고 막기는 무리였다. 널판지 검에 맞고 신음을 흘리는 구미의 모습에, 피터는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이렇게 큰 검을 쓴다면, 제일 확실하게 마무리 할 방법은…!’
결론을 내린 피터는, 양 손으로 널판지 검을 확실하게 붙잡고, 몸을 회전시키며 있는 힘껏 널판지 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빙글빙글 돌며, 널판지 검을 마치 회오리처럼 휘두르는 피터. 구미는 피하려고 했지만, 몇 번인가 공격당한 타격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큭, 크으윽!”
회전하는 널판지 검에 몇 번이나 맞은 구미에게, 피터가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골판지 검을 휘둘렀다.
“날아가버려!”
“크아아아아아악────!”
피터의 골판지 검에 맞은 구미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 높이 떠올랐다, 이내 땅바닥에 떨어졌다. 피터는 구미가 다시 일어날 것을 대비해 자세를 잡았지만, 구미는 완전히 힘이 빠져 기절한 것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이겼다!”
피터는 널판지 검을 떨어뜨리고, 양 팔을 높게 들며 신이 나서 외쳤다.
지켜보는 관객은 없었지만, 라이브러리 월드에 와서 피터가 처음 겪은 모험과 승리였다.
“자, 자. 빨리빨리 걸어.”
제복을 입은 시놉 시티 자경단의 재촉에, 구미와 악당들은 범인 호송 마차에 올랐다. 다른 자경단원들은 산더미 같은 보물들이 가득찬 박스를 확인하거나, 숨겨져 있던 집을 조사하고 있었다.
피터가 구미를 쓰러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쥐 가족의 집 앞.
둘의 대결이 펼쳐지는 사이, 생쥐 가족의 집을 떠났던 악당들, 그리고 신디와 스노우는 각자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악당들은 두 패거리로 나눠졌다. 한 쪽은 보물을 지하의 기지로 옮기는 일당, 다른 쪽은 인질로 삼은 생쥐 가족을 숨겨둬, 혹시 만에 하나의 일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하려는 일당이었다.
그리고 그건 피터와 신디, 스노우 역시 예상했던 일이었고, 대비한 계획대로였다.
먼저 신디는 보물을 찾아 가는 일당을 쫓았다. 하층으로 향하는 길은 복잡한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시놉 시티에서 배달부로 일하는 신디에게 그 정도 길을 찾아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신디는 누구보다 발걸음이 빠르기에, 무거운 짐을 들고 뛰어가는 악당들을 따라잡는 것은 물론, 그 속도로 시놉 시티 자경단의 사무소에 들러 그들에게 악당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하기도 했다. 악당들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자경단원들에게 전부 체포되어버렸다.
스노우는 생쥐 가족을 구출하기로 했다. 스노우는 7D에서 만든 도구를 여럿 가지고 있었으며, 시놉 시티에 위치한 감시 카메라나 각종 기기들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아직 모르는 피터와 신디 모르게 행동하고 싶었고, 홀로 움직이며 그럴 수 있었다. 악당들은 생쥐 가족들을 끌고 복잡한 골목 사이의 빈집으로 숨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스노우였다. 악당들을 쓰러트린 스노우는 시놉 시티 자경단에게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끝내고 돌아온 신디와 스노우가 발견한 건, 기절한 구미를 묶어두고 당당하게 승리의 V자를 그려보이는 피터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여서 쉬고 있는 피터 일행에게, 검은 정장을 입은 커다란 덩치의 일당들이 다가왔다. 그들이 길을 비켜주자 그 사이로 나온 것은 한 마리의 거위였다.
“‘황금알 거위’의 대표에요. 여러분 덕분에 저희 물건들이 악당들에게 넘어가는 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거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피터와 신디, 스노우 역시 고개를 숙였다. 황금알 거위의 대표는 스노우의 모습을 보고 놀랐지만, 스노우는 얌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 의미를 알아들은 황금알 거위의 대표는 그저 작게 웃었다.
“에이, 괜찮아!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피터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피터의 가차없는 반말에 신디와 스노우는 깜짝 놀라 피터를 말리려고 했지만, 황금알 거위의 대표가 있는 앞에서 피터를 혼내도 되는가 고민했다.
황금알 거위의 대표 역시 피터의 말에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무서운 악당들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신 건 대단한 일이예요. 그런 여러분에게 감사를 전하고자, 별 건 아니지만 답례를 드리려고 합니다.”
대표가 고개로 신호하자,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열었다. 안에서는 반짝이는 황금이 있었다.
“부디 받아주세요. 저의 작은 보답이랍니다.”
“이, 이런 건 괜찮아요!”
황금에 놀란 신디가 손사래를 쳤다. 피터 역시 보물을 찾고 싶기는 했지만, 막상 직접 준다고 하니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말아주세요. 여러분 덕분에 저희 황금알 거위가 되찾은 양에 비하면, 정말 얼마 안 되니까요. 여러분이 받아주시지 않으면, 오히려 제가 곤란하답니다.”
“으, 으음…”
정중한 대표의 말에 피터는 고민했다. 스노우는 사실 돈에 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피터와 신디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피터가 고민하는 사이, 신디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물었다. 대표는 뭐든 말해보라는 듯 웃으며 신디를 돌아봤다.
“그게… 생쥐 가족은 어떻게 되나요?”
그 말에 피터와 스노우는 시선을 돌려, 자경단원들에게 조사를 받고 있는 생쥐 가족을 바라봤다. 대표는 한숨을 쉬고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저희도 그 분이 협박을 당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좋은 직원이긴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 분과 계속 같이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응? 그건 말도 안 돼!”
대표의 대답에 피터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야 나쁜 짓을 했지만, 악당들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잖아! 그런데 회사에서 내쫓는다고?”
“그건 저희도 알고 있지만… 협박을 받았어도 이만한 양을 빼돌린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랍니다.”
“그렇지만…!”
“피터, 어쩔 수 없어.”
화를 내려던 피터의 어깨를 스노우가 잡으며,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에 피터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피터도 알고는 있었다. 협박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며 없던 일로 하고 지나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그렇지만 피터는 알고 있음에도 그런 결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풀이 죽은 피터의 모습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던 대표는 말했다.
“그럼, 저희는 뒷정리가 있어서 그만 가볼게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언제든 저희 황금알 거위에 들러주세요. 그럼 이만…”
대표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서류가방을 피터 일행의 앞에 두고는 경호원들과 함께 떠나갔다.
“피터…”
풀이 죽은 피터의 모습에 신디는 위로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스노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피터를 신디와 스노우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기.”
잠시 후, 들려온 목소리에 피터는 고개를 들었다. 생쥐 가족이 앞에 있었다.
“고마워요, 형! 형 덕분에 악당들도 쫓아내고, 집도 되찾았어요!”
“정말 멋있었어요! 그 악당 두목 누나도 형이 쓰러트린 거죠?”
생쥐 형제는 눈을 반짝이며 피터에게 재잘거렸다. 그런 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생쥐 아빠가 다가왔다. 생쥐 아빠는 긴 수염을 기르고 작은 안경을 써서 힘은 없지만 인자하게 느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면 어떻게 됐을지…”
깊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생쥐 아빠의 행동에, 피터는 당황해 말했다.
“괜찮아! 좋아서 한 일인데. 그보다 안 다쳤어? 아까 인질로 잡았을 때 악당들이 괴롭히진 않았어?”
‘역시 나중에 존댓말을 쓰는 법을 가르쳐야겠어.’
신디와 스노우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생쥐 아빠는 찍찍하고 웃으며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그 악당들에게 당해온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그래…”
고개를 끄덕이던 피터는, 하지만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번에는 생쥐 아빠가 피터의 행동에 당황했다.
“왜, 왜 그러시나요? 아까 구미호랑 싸우며 다치셨나요?”
“아니… 미안. 방금 전에 황금알 거위의 대표가 와서 회사에서 내쫓는다고 해서 말리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
“아아, 그 문제인가요.”
생쥐 아빠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풀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생쥐 아빠는 피터에게 말했다.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제 악당들도 체포되었고, 집도 되찾았으니, 분명 뭔가 방법이 있겠죠.”
“그래도…”
뭐라고 더 말하려던 피터의 손을 무릎을 꿇은 채 잡으며, 생쥐 아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악당들이 협박했을 때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H.U.N.N.T나 자경단에게 신고하는 것조차 못 할 정도로요. 거역하거나 싫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말이죠. 몇 번이고 황금알 거위에서 물건을 빼돌리라고 할 때도, 심지어 집을 내놓으라고 할 때도 무서워서 거절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생쥐 아빠는 피터와 신디, 스노우를 차례대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싸우는 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던 거라고요. 무서운 거야 여러분도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거기에 지지 않고 맞서 싸우고,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전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배웠죠. 저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그런 잘못된 일을 도우라는 말에는 거절해야 한다는 걸요.”
생쥐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니 이젠 괜찮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것은 제가 잘못한 일에 대한 대가고, 제가 용기가 없었던 탓이니까요. 하지만 이젠 다를 겁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여러분처럼 당당하게 맞서보려고 해요. 그게 우리 아이들에게도 더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일 테고요.”
웃으며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생쥐 아빠의 행동에도, 생쥐 형제는 기분 좋다는 듯 찍찍하고 웃을 뿐이었다. 고개를 꾸뻑하며 인사를 남기고 생쥐 가족은 몸을 돌려 떠나가기 시작했다.
“...신디, 스노우. 나 할 말이 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피터는 둘을 돌아보며 말했다. 스노우는 신디를 바라보고, 신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반응에 피터는 침울하던 얼굴을 환하게 하며 웃고는, 생쥐 가족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만!”
며칠 후.
“어휴, 피터는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자기가 불러놓고.”
“어쩔 수 없지. 피터잖아. 조금만 기다려보자, 신디.”
발을 구르며 하는 신디의 불만에, 스노우는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놉 시티 공원은 오늘도 한가로웠다. 일상의 일들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등장인물들이 각자 피크닉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포장마차가 핫도그 같은 간단한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그때, 저편에서 탁탁탁탁, 하는 발소리와 함께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어서 미안!”
고개를 돌린 둘의 눈에 공원 저편에서 손에 뭔가를 쥔 채 뛰어오는 피터의 모습이 보였다. 신디는 둘 앞에 멈춰 서 허리를 숙인 채 헉헉거리는 피터를 보며 말했다.
“피터! 상자성 앞에서 이 시간에 보자고 했던 건 너잖아!”
“미안하다니까. 그보다 이것 좀 봐봐!”
피터는 신디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내보였다. 안에는 세 개의 핫도그가 들어 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공짜로 줬어. 언제든지 말만 하래!”
피터는 히히 웃으며 말하고, 등을 돌려 떨어져 있는 포장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생쥐 가족이 피터를 눈치 채고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어휴, 하여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신디는 종이봉투에서 핫도그를 하나 꺼내 베어물었다. 스노우 역시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핫도그를 하나 꺼냈다.
“그런데 정말 괜찮아? 선물로 받은 황금을 그렇게 줘도.”
신디는 베어문 핫도그를 우물거리며 피터에게 물었다.
떠나가던 생쥐 가족을 불러세운 피터는, 황금알 거위에서 선물로 준 황금을 생쥐 가족에게 주었다. 생쥐 가족은 이런 건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피터는 거의 억지에 가깝게 그들의 손에 황금을 건네줬다. 그 돈으로 생쥐 가족은 포장마차를 시작해, 시놉 시티 공원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황금 같은 거, 가져서 뭐 해? 보물이라니까 가지고 싶긴 했지만, 반짝이기만 하는 돌멩이잖아.”
피터는 핫도그를 와구와구 먹으며 웃었다. 그 대답에 신디와 스노우는 얼이 빠졌다.
“너… 설마 그런 생각으로 선물로 줬던 거야?”
“맙소사… 그야 우리도 동의하긴 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는 신디와 마찬가지로 한숨을 쉬는 스노우의 반응에, 피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피터, 네가 생쥐 가족에게 준 황금이면, 이런 집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이런 집이라니! 여긴 내 ‘상자성’이야! 제대로 불러!”
스노우의 말에 피터는 셋이 모인 장소인 ‘상자성’을 가리켰다.
버려진 골판지 박스를 세우고 붙여서 만든, 성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는 아담한 사이즈의 집. 아이들이 놀이로 만든 비밀기지 같은 그곳이, 바로 피터가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살아가는 집이었다.
이야기에서 떠나와 라이브러리 월드에 온 등장인물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하며 그 돈으로 집을 구해 살아간다. 하지만 피터는 ‘나는 일하기 싫다’ 라는 이유로 직장도 구하지 않고, 따라서 집도 없었기 때문에 시놉 시티 공원에 멋대로 골판지 상자로 만든 집을 짓고는 살아가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노숙’이라고도 하는 생활방식이었다.
“뭔가 생각이 있어서 황금을 준 거라고 생각했더니…”
“내가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피터, 좀 더 제대로 된 집에서 살 생각은 없어?”
신디와 스노우의 잔소리에도, 피터는 핫도그를 마저 먹으며 말했다.
“흥! 여기야말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성인걸! 그리고 집 같은 건 필요없어!”
피터는 손가락으로 척, 하고 하늘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외쳤다.
“나는 이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도 전설이 되어서, 언젠가 이야기로 돌아갈 때까지 진짜 ‘성’을 손에 넣어 지낼 거니까!”
“그래, 그래.”
“핫도그 다 먹으면 어떻게 할까, 신디? 오늘에야말로 피터에게 시놉 시티 소개를 해줄 거야?”
“그럼 식당들도 가보고 싶은데, 핫도그 다 먹으면 배가 부를 거 아냐. 음… 뭐 상관 없나? 맛있기도 하고.”
“둘 다 무시하지 마!”
피터는 핫도그를 베어물며 서로 이야기를 하는 스노우와 신디의 모습에 발을 구르며 화를 냈다.
이곳은 라이브러리 월드.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곳.
이야기들은 정해진 줄거리를 따라 진행되고, 이야기가 끝을 맞이하면 등장인물들은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다음 여정을 준비하게 된다.
누구도 얼마나 반복됐는지 모를 순환. 하지만 최근 그 흐름에 이변이 생겨났다.
어째서인지 등장인물들은 라이브러리 월드를 빠져나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게 되었고,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은 도중에 영문도 모른 채 라이브러리 월드로 소환되게 되었다.
이야기로 돌아가지 못하고,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머물러야 하는 나날들.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그런 라이브러리 월드에 적응하고, 다른 이야기들과 소통하며 라이브러리 월드를 발전시켜나갔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이변 중의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
머지 않아, 그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이야기의 등장인물 중에서 언젠가 라이브러리 월드의 전설로 남을 ‘레전드’들을 선택해, 소원을 들어준다는 하나 뿐인 힘 ‘라이트 오 라이트’를 걸고 거대한 경기가 일어나게 된다.
그 머지 않은 날이 다가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채.
피터와 신디, 스노우는 오늘도 시놉 시티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은 시놉 시티. 라이브러리 월드의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