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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편] 레드는 레드가 될 거야!

제 이름은 레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에요.
우리 마을은 작은 시골 마을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어른들은 매일매일 바쁘고 같이 놀 또래 아이도 없어요. 늘 따분한 매일매일이 반복될 뿐이었지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저는 착한 아이라서 어른들 말씀을 잘 들으며 하루하루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어요.
“작은 빨간 모자야, 이리 온.”
엄마가 저를 부르시기에 착한 아이인 저는 쪼르르 달려갔지요. 빨간 모자는 제 별명이에요. 제 이름인 ‘레드’와도 잘 어울리는데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이 빨간 모자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늘 쓰고 다녔거든요. 엄마는 저에게 바구니를 건네면서 말씀하셨어요.
“이 바구니를 들고 숲 속에 있는 할머니에게 다녀오렴. 숲으로 들어가면 한눈 팔지 말고 길만 따라 얌전히 걸어가야 해. 숲 속에는 무서운 늑대가 나타나 너를 한 입에 꿀꺽 삼킬지도 모르거든.”
“엄마가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
저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니까,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는 바구니를 들고 할머니 집을 향해 길을 떠났답니다.
늘 보던 지루한 마을과는 다르게, 숲 속에는 재미있어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처음 보는 꽃들이 여기저기에 피어있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어요. 토끼 같은 동물 친구들도 있었고요. 늘 보는 똑같은 마을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저는 너무 신이 나서 그것들을 따라다니며 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돼요. 저는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착한 소녀거든요. 게다가 엄마가 말씀하셨는걸요? 숲에 들어가면 한눈팔지 말고, 길을 따라 얌전히 걸어가야 한다고요.
그렇게 얼마동안 길을 따라가던 제 눈에, 신기한 것이 보였어요.
낯선, 처음 보는 언니였어요.
그 사람은 길 한 가운데에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있었고요.
커다란 검은 모자와 검은 드레스. 검은 머리카락. 창백해보이는 피부까지 합쳐진 그 사람은 어딘지 무서워보였어요. 저는 길을 벗어나 그 사람을 피해갈까 했지만, 한눈 팔지 말고 길만 따라 얌전히 걸어가야 한다는 엄마 말이 생각났어요. 저는 착한 아이니까 엄마 말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결국 저는 그 사람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살며시 살며시 한 걸음씩 다가갔어요. 그 사람은 그런 저를 보며 재밌다는 듯 쿡쿡, 하고 웃었어요.
그때 문뜩 생각났어요. 숲에는 늑대가 나타난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던 것이요. 어쩌면 이 사람도 분장한 늑대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물어봤어요.
“저기, 혹시 언니는 늑대인가요?”
제 질문에 그 사람은 다시 쿡쿡대며 웃었어요.
“아니, 나는 늑대가 아니란다 꼬마 아가씨.”
“그럼… 혹시 마녀인가요?”
“정답이란다, 꼬마 아가씨.”
역시나. 역시 제 생각대로 마녀였어요. 엄마나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에서 무시무시한 마녀 이야기를 많이 봐서 두려웠지만, 눈 앞에 있는 마녀는 듣던 것과는 조금 달랐어요. 매부리코에 나쁘게 생긴 할머니가 아니라, 젊고 예쁜 언니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역시 마녀는 마녀, 저는 무서워서 떨면서 물어봤어요.
“저, 저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세요? 저를 개구리로 만들거나 저주를 내리려는 건가요?”
“아니, 그런 일은 하지 않아.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오늘의 나는 마녀보다는 마법사에 가까울 거란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움을 주는 마법사 말이야.”
마녀님의 말에,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도움을 주는 착한 마법사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그런 마법사님은 대단한 사람들 곁에나 나타나니까요. 공주님을 찾아가는 왕자님이라든가, 멋진 기사님이라든가요. 그게 아니라면 왕자님을 만날 공주님에게 찾아가지, 저 같은 시골에 사는 평범한 여자아이에게는 찾아오지 않거든요.
“후후, 그렇지 않단다 레드. 보렴, 이렇게 내가 찾아왔지 않니?”
그런 생각을 하던 저는 마녀님의 말에 깜짝 놀랐어요. 마치 제 생각을 읽은 것만 같았으니까요. 거기에 제 이름을 말한 적도 없는데, 마녀님은 당연하다는 듯 저를 불렀고요. 마녀님은 깜짝 놀라는 저를 보며 말했답니다.
“레드, 너는 운명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니?”
“운명… 이요?”
저는 마녀님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운명이라는 게 뭔지는 들어본 적 있지만, 저 같은 얌전한 시골소녀에게는 인연이 없는 말이니까요. 그런 건 뭔가 더욱 대단한 사람들이나 듣는 말이 아니겠어요?
“흐음… 그래, 아직 레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구나. 하긴.”
“이번에도 제 생각을 읽으신 건가요?”
제가 말하기도 전에 알았다는 듯 말하는 마녀님에게 물어보자, 마녀님은 싱긋 웃었어요. 그 웃음은 어쩐지 상냥하게까지 느껴져서, 방금 전까지 무섭게 서있던 마녀님과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란다. 하지만 아직 레드는 자신이 평범한 시골 여자아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운명 같은 거창한 말을 들어도 놀랄 거라고 생각했거든.”
마녀님의 말에 저는 놀랐어요. 마치 마녀님은 제가 모르는 저를 알고 있다는 것만 같아서요. 지금까지 제가 모르게 저를 지켜본 것처럼요. 그렇지만 저는 마녀님을 오늘 처음 보는지라,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마녀님은 대체 누구세요? 절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아, 그러고 보니 자기 소개가 아직이었구나.”
제 질문에 마녀님은 깜빡했다는 듯 말했어요.
“나는 위치 퀸.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지 않고, 이겨내, 언젠가는 모든 이야기를 지배할 사람이란다.”
“모든… 이야기요?”
제 질문에 마녀님, 아니 위치 퀸 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어요.
“그래, 그렇단다. 그리고 레드, 널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봤지? 그건 말이지 레드, 네 생각보다 너는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넌 하나의 이야기의 ‘주인공’이거든.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야기의.”
“제가 주인공이라고요? 말도 안 돼요!”
위치 퀸 님의 말에 저는 웃고 말았어요. 흔해빠진 시골 마을에서 재미없는 일상을 보내는 제가 주인공일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제 웃음에도 위치 퀸 님은 어딘지 신비한 미소를 지은 채 저를 바라볼 뿐이었지요.
“거짓말이 아니란다, 레드.”
그 미소가 무슨 뜻인지 저는 알 수 없었어요.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지만요. 위치 퀸 님은 어느새 저에게 다가오며 말했어요.
“이 세계는 레드, 네가 주인공인 이야기란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반복된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이지. 이 이야기 안에서는 너는 평범한 소녀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밖에서는 모두가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단다.”
그렇게 말하는 위치 퀸 님의 말에는, 근거는 없지만 그 말을 믿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어요. 의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그런 힘이 말이에요. 제가 놀라고 있자 위치 퀸 님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그렇지만 너의 이야기는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란다. 오늘, 너는 할머니의 병문안을 가는 길이지? 그곳에는 할머니 대신, 할머니를 잡아먹은 나쁜 늑대가 널 기다릴 거란다. 넌 그 늑대에게 꿀꺽 잡아삼켜진 뒤에, 지나가던 사냥꾼이 우연히 발견해서 살아날 거야. 그걸로 네 이야기는 끝이 난단다. 고작 그것뿐인 이야기지.”
“잡아먹힌다고요?”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위치 퀸 님이 말해서, 저는 뒤늦게 놀라고 말았어요. 제 이야기가 고작 그런 거라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말에 기뻤던 마음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어요.
“자, 빨간 모자, 작은 레드야. 이제 너는 어떻게 하겠니?”
위치 퀸 님은 손등으로 제 뺨을 쓸어내리며 물었어요. 하지만 늑대에게 잡아먹힌다는 말을 듣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어요.
“이,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래요.”
“어머, 도망치는 거니? 그럼 할머니는 어떻게 할 거지? 네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널 그렇게나 아껴주시는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 텐데?”
제 대답에 위치 퀸 님은 안타깝다는 듯 말했어요. 그 순간 퍼뜩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위치 퀸 님이 도와주세요! 마녀라면 나쁜 늑대도 해치우실 수 있겠죠?”
“흐응…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거구나.”
위치 퀸 님의 말에, 저는 순간 무서워졌어요. 위치 퀸 님의 말투가 꼭 실망했다는 것처럼, 제가 뭔가 큰 잘못을 했다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위치 퀸 님은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부드러운 미소와 따스한 시선 대신, 차가운 눈으로 절 내려보며 말했어요.
“하지만 그럴 순 없단다. 나는 이 이야기의 주민이 아니라, 이야기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거든. 그리고 굳이 내 도움을 받을 필요 있겠니? 늑대에게 잡아먹혀도, 사냥꾼이 금방 구해줄 텐데. 그렇지만 레드, 너는 늘 그렇게 남의 도움만 바랄 생각이니?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군가가 널 도와주고 구해주기만을 기다릴 거니?”
“그, 그건…”
위치 퀸 님의 말에 저는 말문이 막혔어요.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위치 퀸 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설명, 어쩌면 변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저 같은 평범한 여자아이가 늑대랑 맞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위치 퀸 님도 그러셨잖아요. 그게 제 이야기라고. 그게 만약 위치 퀸 님이 말했던 ‘운명’이라면, 저 같은 아이가 바꿀 수 있을 리가 없어요.”
혼나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렇게 말하자, 위치 퀸 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일 뿐이지, 그런 대단한 힘은 없는 걸요.
마을에서의 매일매일은 별다른 일 없는, 재미있는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매일매일일 뿐. 그런 마을 안에서 늘 착한 아이로 지내야 한다고, 어른들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다고 들어왔는걸요. 여태까지 싸움 한 번 한 적도 없었고, 어른들이 시키면 귀찮고 싫은 일이라고 해도 해왔어요.
거기에 전 여자아이인 걸요. 힘을 쓰는 밭일도 할 수 없고, 마을을 떠나 무언가 하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어요. 모험에 나서거나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노력하는 건 남자들의, 왕자님이 하는 일인 걸요. 공주님은 기껏해야 왕자님이 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아.”
제 말을 들은 위치 퀸 님은 단호하게 말했어요.
“날 보렴, 레드. 너는 나를 처음 보니까, 내가 이야기에 나오는 마녀로만 보이겠지. 그렇지만 그렇지 않단다.”
위치 퀸 님은 제게 얼굴을 가까이 해, 눈과 눈을 마주하고는 말했어요.
“나는 심지어 이야기의 주인공도 아니었어. 주인공이 되고 꿈을 이루고 싶었지만, 내 운명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단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아. 언젠가는 반드시 내 이야기와 운명을 바꾸고, 이겨내서, 내 꿈을 이루고야 말 거란다.”
그렇게 말하는 위치 퀸 님의 눈빛에는 저는 상상도 못할 힘이 실려 있어서, 저는 두근거림까지 느낄 정도였어요.
위치 퀸 님은, 제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으니까요.
지금까지 제가 만난 사람들은, 엄마나 아빠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꿈이라든가 목표를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뿐이고, 제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렇지만 위치 퀸 님은 아름답고, 성숙하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힘’이 있었어요.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운명이나 뭐나 하는 것들을,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힘이요.
그런 힘에 홀려, 저는 물었어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질문에 위치 퀸 님은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란다. 결정하는 것은 레드, 바로 너지. 나는 단지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너에게 줄 뿐이란다.”
“그럴 수 있는 기회요?”
“그래. 운명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기회.”
그렇게 말하고, 위치 퀸 님은 거울을 꺼냈어요. 특이하게 생긴 그 거울은 혼자서 공중에 떠 있어서, 마법의 거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요. 위치 퀸 님이 그 거울에 손을 뻗자, 위치 퀸 님의 손은 거울 안으로 들어갔어요. 제가 깜짝 놀라는 사이, 위치 퀸 님은 거울에서 무언가를 꺼냈어요. 그건 커다란 가위였어요.
“그게 뭔가요?”
“이건 너에게 줄 선물이란다.”
제 질문에 위치 퀸 님은 웃으며 말했어요. 커다란 가위는 거의 제 키의 절반은 되어보였고, 제 이름과도 같은 빨간색이었어요.
“레드, 이제 선택하렴. 만약 네가 네 운명을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사냥꾼이 구해주길 기다리는 무력한 여자아이로 남고 싶다면 그냥 이 오솔길을 쭉 따라가면 된단다. 하지만 만약 네가 그런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위치 퀸 님은 제게 그 가위를 건네주며 말했어요.
“그 방법은 오로지 싸우는 것뿐이란다.”
“싸우는 것…”
저는 새빨간 가위날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봤어요. 착하고 얌전한,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소녀. 지금까지 늘 보아왔던, 익숙한 모습.
하지만, 그런 매일매일이 마음에 들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에요.
마을은 아무 것도 없고, 착한 아이로 지내는 건 지루하고, 재미있는 장난거리도 없고, 신나는 일이라고는 없어요.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날.
만약 위치 퀸 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늑대에게 꿀꺽 잡아먹혔다 사냥꾼에게 구해진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될까요? 똑같겠죠. 또 재미없는 나날들이 이어지겠죠.
늘 생각했어요. 뭔가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 하고. 솔직히 시시한 나날은 질렸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위치 퀸 님이 건네준 가위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나는 손을 뻗어, 그 가위를 움켜쥐었지.
“아…”
그리고 알게 되었어. 위치 퀸 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말이야.
가위를 집는 순간, 잊고 있던 모든 것들이 기억났어. 이 숲속 길을 몇 번이나 걸었던 것도, 몇 번이나 늑대에게 꿀꺽 하고 잡아먹혔던 것도, 겨우 사냥꾼에게 구해져서 이야기가 끝나고 라이브러리 월드로 돌아갔던 것도,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던 것도.
몇 번이고 그것만을 반복할 뿐.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 나날들. 분명 이 가위를 붙잡지 않았다면, 위치 퀸 님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아니지, 위치 퀸 님이 만나러 와주지 않으셨다면 그 나날들만 반복했을 거야!
그리고 그런 건 이제 질렸어!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위치 퀸 님은 기분 좋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어.
“내가 준 선물은 마음에 드니, 레드?”
“네, 위치 퀸 님! 최고에요!”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어. 가위를 받자마자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에 더해서, 알 수 없는 힘이 차올랐거든. 지금까지 얌전히 지내던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이. 내 대답에 위치 퀸 님은 더더욱 기분 좋으시다는 듯 웃으셨어.
“그렇다니 나도 기쁘구나. 그 가위의 이름은 ‘피카부’. 앞으로 소중히 다뤄주렴.”
“물론이죠, 위치 퀸 님!”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위치 퀸 님은 물어보셨어.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
“그거야 당연하죠! 그 늑대 배를 확! 하고 갈라버릴 거예요!”
위치 퀸 님의 질문에, 나는 피카부를 찰칵찰칵하고 소리내며 말했어.
그 늑대, 지금까지는 내가 삼켜지기만 했지만, 이제는 다르니까! 이 마법 가위 피카부가 있으면, 그딴 늑대쯤 사냥꾼의 도움이 없어도 괜찮아! 내 손으로 직접 해치워줄 수 있어! 그리고 늑대에게 마찬가지로 꿀꺽 삼켜졌을 할머니도, 내 손으로 구해낼 거야!
내 대답에 위치 퀸 님은 말씀하셨어. 어쩐지 신기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야.
“자, 그럼 가렴 레드. 네 손으로 운명을 비틀어버리는 거란다.”
“네, 위치 퀸 님!”
위치 퀸 님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단걸음에 할머니의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어. 어느새 엄마가 준 바구니 같은 건 버리고, 피카부를 양 손에 든 채로 말이야.
그 늑대, 지금까지 사람을 몇 번이나 잡아먹다니! 하지만 이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걸? 이제 나는 도움이 없으면 잡아먹히기만 할 뿐인 착한 아이가 아닌 걸!
그래, 이제 이전까지 있었던 착하고 얌전한 소녀 같은 건 없어!
이 가위와 힘이 있으면, 그딴 재미없고 시시한 일 같은 걸 할 시간은 없을 테니까!
그 늑대를 해치우면, 이번 이야기도 끝나니까 라이브러리 월드로 가게 될 거야! 하지만 이전처럼 따분하게 지내고, 다시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이야기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
위치 퀸 님은 말하셨지. 누구나 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이야.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아는 건, 이전의 착하고 따분한 내 모습이잖아?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린 여자애말이야.
그건 내가 아니야! 새로 태어난 내 모습은, 아직 사람들은 모를 테지.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날 알도록 할 거야!
그래, 우선 늑대를 해치운 다음에 말이지!
할머니 집의 문을 걷어 차니, 오래된 나무문은 파삭, 하고 부서져버렸어. 안에는 물론, 기대하던대로 늑대 혼자만 있었지. 가증스럽게도 할머니로 분장하고 날 속이려 했던 건지, 할머니의 빨간 안경을 쓴 채로 말이야.
커다란 늑대는 내가 나타나자 깜짝 놀란 모양이었어. 그야 그렇겠지! 얌전히 바구니에 포도주와 케이크를 들고 왔어야 하는 내가, 이런 거대한 가위를 들고 나타났으니까 말이야! 늑대는 날 보고 뭐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거 들어줄 필요 없잖아?
“배를 싹둑! 잘라줄 거야!”
그냥 그렇게 외치면서, 늑대를 향해 달려들었지!
사실, 그 다음은 잘 기억이 안 나.
늑대의 배를 가르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싸워본 적이 없어서인가 배 대신 늑대의 팔을 잘라낸 건 기억하는데, 그 뒤에 정신을 차리니 나는 더 이상 할머니 집에 있지 않았어.
그 대신, 라이브러리 월드에 와있었지. 위치 퀸 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잘 해냈구나, 레드.”
위치 퀸 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치 장한 동생을 바라보듯 말하셨지.
나는 알 수 있었어. 날 찾아오신 것도, 내가 늑대와 싸운 것도, 모두 위치 퀸 님이 나를 위해 준비한 시험이었다는 걸. 내가 위치 퀸 님의 부하가 되기 걸맞는지 말이야.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위치 퀸 님은 이미 모든 걸 준비하고 계셨어. 위치 퀸 님은 나를 앉혀놓고, 이야기 속에서는 못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지.
그 분은 나나 위치 퀸 님처럼 정해진 이야기에 놀아났던 등장인물들을 모아, 재미없고 꽉 막힌 라이브러리 월드를 바꾸려고 하신다는 걸!
정해진 이야기대로 늘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신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시는 거야!
난 다시 한 번 위치 퀸 님을 존경하게 됐지. 위치 퀸 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강하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위치 퀸 님에게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 아무 생각도 없이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다른 어른들과는 다르게!
나도 그런 위치 퀸 님처럼 되고 싶었어. 그래서 위치 퀸 님을 목표로 하기로 했지. 언젠가 위대한 악당이 되어서, 모두가 나를 알고, 두려워하는, 위치 퀸 님처럼 강하고 아름답고 멋진 어른이 될 거야!
그렇게 난 위치 퀸 님의 부하가 되어서 움브라의 일원이 되었지. 그 늑대가 기어코 살아서는 위치 퀸 님의 부하가 된 것도,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여러 장난을 치면서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알리고, 더 훌륭한 악당이 되어 언젠가 그 늑대를 쓰러트리면, 분명 위치 퀸 님도 나를 다시 보게 되겠지!
그럼 또 보자구! 그땐 내가 깜짝 놀래켜줄 테지만! 캬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