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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 앤 아이스

The translated version of the Smash Novels will be here soon. Thank you.
밝고 눈보라 치는 낮이었다.
영원한 겨울 섬은 오늘도 그 이름답게, 어떠한 색으로도 물들지 않은 태초의 하얀색으로 덮여 있었다.
방향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밋밋한 순백의 공간 속에서, 붉은 색 옷이 눈에 띄는 두 소녀가 길을 만들며 걷고 있었다.
“으으으 추워. 플레어. 조금만 더 붙어줄래?.”
“알겠어요. 레드. 추위가 견디기 힘들면 아예 몸에 불을 감아 드릴까요?”
“자, 잠깐! 내가 불타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어!.”
레드는 황급히 손과 고개를 같이 내저었다.
“가도 가도 눈 뿐이네. 위치 퀸님은 이렇게 눈밖에 없는 곳이 왜 궁금하신 걸까?”
“플레어는 마음껏 따뜻하게 만들어도 되는 곳이 있다고만 들었어요.”
플레어의 대답에 레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의 여왕에 대해 알아와 달라는 위치 퀸의 부탁으로 이곳까지 오긴 했지만, 몇 시간동안 마주한 것이라곤 수북하게 쌓여있는 눈과, 그 위로 새롭게 내리고 있는 눈들 뿐이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특별한 것으로 눈보라 너머로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얼음 성이 있었기에, 레드는 그나마 방향감각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는 목표가 있다는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게 새하얀 설원에 두 줄기의 작은 발자국들을 남기며 얼마나 걸어갔을까.
빨간 후드모자에 쌓인 눈들을 털어내려 잠시 발걸음을 멈춘 레드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자신들이 이곳에 도착해서 성을 향해 걷기 시작한 것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얼음 성은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 성은 대체 얼마나 멀리 있는거야? 이렇게나 왔는데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저희 생각보다 아주아주 큰가봐요. 잘 됐네요. 오랫동안 따뜻하게 타오르겠어요.”
“끄응. 눈보라 때문에 얼마나 먼지 가늠이 안되네. 안되겠다. 플레어. 내 후드를 잡아볼래? 아야야. 그렇게 세게 잡지는 말고.”
플레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시킨대로 순순히 레드의 후드를 붙잡았다. 그러자 레드는 자신의 마법 가위인 피카부(Peek-A-Boo)를 양손으로 잡은 뒤, 힘차게 앞으로 내질렀다.
“위치 퀸님이 능력은 되도록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단숨에 도착하면 되겠지! 히얏!”
이어 레드는 플레어와 함께 피카부가 자른 공간 속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그러자 둘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여긴 눈이 더 내리고 있는 것 같네요.”
“이상하다. 꽤나 멀리 날아왔을텐데…”
아까와 별 다를 바가 없는 새하얀 공간이었다.
“끄응. 내가 힘을 좀 덜 썼나?”
레드는 머리를 긁적인 다음, 피카부를 들어올려 자세를 잡았다. 플레어는 그런 레드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며 그녀의 후드에 팔을 감았다.
“자, 이번엔 진짜 멀리 갈거야!”
레드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다시 한 번 공간을 갈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변의 풍경은 여전히 같았고, 플레어는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바라보며 자신의 휴대용 핸드 캐논, 매치 메이커(Match Maker)를 빙글빙글 돌렸다.
“이제 성이 아주 조금 잘 보이네요.”
“끄응… 그러게. 아무래도 저 성은 아주아주 멀리 있는 것 같아.”
“그런데도 이렇게 잘 보이다니. 엄청나게 큰 성인가봐요. 한 번 불을 피우면 오래오래 따뜻해지겠죠?”
“휴.그러면 좋겠지만… 애초에 우리가 저기까지 갈 수는 있을까? 이대로 돌아가면 위치 퀸님이 실망하실텐데..”
레드가 아주 조금 크게 느껴지는 성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주위를 둘러보던 플레어가 눈을 살짝 뜨며 입을 열었다.
“저길 봐요 레드. 저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나봐요.”
“뭐어? 어디? 어라. 정말이네. 굴뚝에 연기가 보여!”
플레어가 가리킨 곳을 본 레드는, 눈더미 속에서 살짝 튀어나와있는 나무와 집들이 눈에 들어왔고, 집 굴뚝에서 눈보라를 뚫고 올라가고 있는 하얀 연기도 볼 수 있었다.
평소라면 이 정도 작은 마을은 말썽을 부릴 거리도 없다며 무시했겠지만, 지금 레드의 심정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저기서 쉬면서 정보를 얻으면 되겠어.”
레드는 피카부를 어깨에 짊어진 채, 기운차게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플레어는 그런 레드를 따라가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묘하게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침엽수가 둘러싸고 있는 마을은 열 가구쯤 되는 집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마을 중앙에는 작게 광장도 있었다. 하지만 광장을 비롯해서 어느 곳에도 발자국 등 사람이 왕래한 흔적은 없었고, 마을 내부 길은 마을 밖과 다름없이 두터운 눈으로 덮여 있었다.
“으음…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긴 한 거겠지?”
가장 가까운 집 앞에 도착한 레드는 두꺼운 커텐 너머로 희미하게 일렁이는 불빛을 보며 말했다. 그리곤 헛기침을 몇번 한 뒤, 대문을 똑똑 두드렸다.
“저기요. 아무도 없나요.”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레드는 자신이 너무 작게 두드렸나 생각하고, 조금 더 세게 문을 탕탕 두드려 보았다.
“제발요. 추우니까 문 좀 열어주세요.”
이번에는 애원조로 말해보았지만, 문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두드려본 뒤, 레드는 화를 벌컥 내기 시작했다.
“이봐! 안 들려? 이 레드님이 밖에 있다고!”
레드는 발로 문을 쾅 찬 뒤, 씩씩대며 다른 집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다른 집들 역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레드는 미처 조사하지 못했던 정보로, 이곳 영원한 겨울 이야기 섬 속 사람들은 눈보라가 부는 날에는 절대로 바깥 문을 열지 않았다.
이는 추위를 막기 위한 이유 뿐 아니라, 눈의 여왕이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의 여왕은 눈보라 속에서 사람들을 홀리고, 눈의 여왕에게 홀리면 인간의 마음을 잃어버린 뒤 서서히 얼음 덩어리로 변해버린다.’
이러한 내용은 영원한 겨울 이야기 섬에서는 동요처럼 불렸기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레드 역시 눈보라와 함께 온 눈의 여왕의 속셈으로 여기고 있던 것이었다.
“이씨. 추워서 얼어붙겠는데 왜 아무도 안 나오는거야?”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던 레드는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화를 냈다. 그러자 레드는 어딘가 슬퍼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레드. 이 사람들은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예요.”
“응? 그걸 플레어가 어떻게 알아?”
그러자 플레어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밖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차갑게 얼어붙어 있으니까요.”
플레어의 말에 레드가 의아해하는 사이, 플레어는 매치 메이커를 들어올려 어깨에 걸쳤다.
“으응? 프, 플레어. 갑자기 왜 그러는거야?”
“왜긴요. 이 분들의 마음을 제가 따뜻하게 해드려야죠.”
“진정해 플레어. 위치 퀸님이 괜한 소란은 피우지 말라고 하셨…”
레드는 폭주한 플레어를 말리기 위해 양 손을 살살 흔들며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플레어는 활짝 웃으면서 매치 메이커의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추운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일인걸요. 위치 퀸님도 잘 했다고 칭찬해 주실거에요!”
플레어는 마치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듯한 눈으로, 출력을 최대로 올린 매치 메이커를 하늘로 쏘아올렸다.
“으익! 위치 퀸님 전 최선을 다했어요!”
이어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매치 메이커의 포신에서 불덩이가 하늘로 솟구쳤고, 플레어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눈보라를 뚫고 날아가는 새빨간 꼬리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하늘 높이 날아간 불덩어리들의 속도가 줄어들며 사방으로 펼쳐지기 직전.
갑자기 눈보라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으응?”
하늘을 바라보며 닥쳐올 폭발을 대비하고 있던 레드는, 처음 겪어보는 신기한 현상 앞에서 의아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솟구치는 눈보라는 단순히 바람의 변덕이 아니라, 마치 목적을 가지고 있듯이 한 점으로 몰려들고 있었고, 그 대상은 바로 플레어가 발사한 불덩어리였다.
눈보라는 마치 가두듯이 매치 메이커의 발사체를 강하게 휘감았고, 타오르던 빨간색 불덩어리는 무채색으로 변해가며 공중에서 힘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이어 눈보라는 폭주하듯이 사방으로 마구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마치 벌떼가 몰려들듯이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깔려있던 눈들까지 들썩거리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플레어. 이건…!”
레드는 세찬 바람으로부터 눈을 가리며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아주… 차가운 것이 오고 있어요."
플레어는 레드의 앞에서 매치 메이커를 들어올린 상태로,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잠시 뒤.
눈보라가 조금씩 잦아들면서 플레어의 앞에 나타난 것은, 내리는 눈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욱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큰 키의 여성이었다.
푸른색 모자 아래 하얀색 머리카락이 길게 나풀거리고, 하늘거리는 옷과 망토를 걸친 채 커다란 보석이 박힌 왕홀을 들고 있는 모습.
아직 시야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레드는 눈보라 사이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로도 그녀가 누구일지 떠올릴 수 있었다.
“...눈의 여왕!”
“익숙한 별명이네.”
눈의 여왕은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둘의 앞으로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눈의 여왕과의 조우에 레드는 피카부를 양 손으로 들고 전투 자세를 취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담담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정기회의에 몇 번 불참했다고 현자 회의가 이런 짓까지 벌이지는 않을테고, 역시 위치 퀸인가?”
레드는 자신과 플레어를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듯, 근거리에서 무방비로 있는 눈의 여왕을 보며 조용히 피카부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눈의 여왕을 잡아가면 위치 퀸님께서 기뻐해주시겠지?’
레드는 거센 눈보라에 잠깐 놀라긴 했지만, 상대가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미 임무는 망친거나 다름없게 된 이상, 눈의 여왕을 제압해서 움브라로 데려가면 이번 일을 만회하고도 남을 거란 생각에 레드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레드는 손과 발에 힘을 꽉 준 다음, 익숙한 몸놀림으로 양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쏜살같이 가위를 내질렀다.
“하앗!”
단 한 호흡에 사나운 늑대를 갈라버릴 수 있는 이 재빠른 공격.
레드는 이 공격만큼은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반응해서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감촉이.. 없어?’
분명 가위가 닿기 직전까지 눈앞에 있던 눈의 여왕의 형체는,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있지 않았다는 듯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레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익… 이럴리가 없어!”
레드는 믿을 수 없다는 소리와 함께 가위를 들고 사정없이 눈의 여왕이 있는 곳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레드가 눈의 여왕을 베려고 할 때마다, 마치 떨어지는 눈송이가 바람에 휘날리듯이, 눈의 여왕은 닿지 않는 곳으로 조금씩 이동해 있었다.
바짝 약이 오른 레드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피카부를 꽉 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앗!”
레드는 전신에 힘을 꽉 준 뒤, 눈의 여왕이 있는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눈의 여왕이 스르륵 사라질 때, 기회를 노린 레드의 움직임이 빠르게 공간을 베어나갔다.
“이건 못 피할거다!”
순식간에 공간을 찢고 들어간 레드는, 눈의 여왕이 이동한 위치를 향해 정확하게 뛰어들며 피카부를 내질렀다.
실체가 존재한다면 절대로 피할 수 없을 비장의 일격이었다.
레드는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공격이 통했다고 생각하며 손아귀에 힘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눈의 여왕이 돌아봄과 동시에, 공중에서 빠르게 얼음덩어리가 생성되었다. 얼음 덩어리는 레드의 공격 궤도를 정확히 가로막았고, 이어 레드의 손에 느껴진 감각은, 마치 쇠막대기로 철벽을 때리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으윽. 이건 또 뭐야!”
레드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얼음을 보며 황당해했다. 힘줘서 찌르면 바위도 무 자르듯이 할 수 있는 마법의 가위, 피카부가 고작 얼음에 가로막힐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눈의 여왕도 이번에는 약간 놀랐다는 듯이 레드를 바라보며 왕홀을 들어올렸다.
“제법 빠르네. 역시 위치 퀸의 수하는 다르구나.”
그리곤 한 손을 들어 왕홀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왕홀의 보석에서부터 얼음이 길게 뻗어나가더니, 곧 거대한 얼음 낫의 형상이 되었다.
레드는 분위기가 바뀐 눈의 여왕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자신의 모든 공격이 이렇게나 통하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었기에, 어떤 공격을 할지 감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심해. 봐주지 않을 테니.”
이어 눈의 여왕은 레드를 향해 멀리서 낫을 휘둘렀다. 그러자 얼음 낫이 휘둘러진 궤적을 따라 얼음 파편이 길게 뿌려지며 날카롭게 사방을 베어나갔다.
한 번의 공격이 휘둘러질 때마다 눈으로 이루어진 땅이 푹푹 파여나가며 공중으로 떠올랐고, 눈덩이들은 눈보라와 함께 휘날리며 눈의 여왕의 다음 공격을 기다렸다.
레드는 생전 처음보는 공격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를 악물며 땅을 박찼다.
“에잇! 뭐가 되었든 나는 못 잡을걸!”
상대가 누구든 마음먹고 숨는 자신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레드는 이런 생각을 하며 피카부로 공간을 찢은 뒤, 눈의 여왕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후 언제라도 눈의 여왕이 방심하면 곧장 그 틈을 찌를 셈이었다.
하지만, 눈의 여왕은 마치 그럴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레드가 있는 곳을 향해 낫을 휘둘러댔다.
다시 한 번 레드의 주변이 사정없이 할퀴어졌고, 레드는 그 속에서 간신히 구르며 비명에 가깝게 외치기 시작했다.
“크윽. 대체 어떻게 아는거야!”
“이곳은 나의 영토. 눈이 내리는 곳이라면 어디에도 숨지 못해.”
“제길. 그런 건 반칙이지!”
레드는 눈의 여왕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며 외쳤다. 하지만 눈의 여왕은 대꾸 없이 계속 낫을 빠르게 휘둘렀고, 레드는 점점 더 한 곳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더 이상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다고 생각한 레드가 눈을 꽉 감은 순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의 여왕의 공격이 멈췄다.
레드는 갑자기 멈춘 공격에 살짝 실눈을 떠 보았다. 그러자 레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의 여왕쪽을 향해 매치 메이커를 겨누고 있는 플레어였다.
“레드가 추워하잖아요.”
이제껏 둘의 공방을 지켜보고 있던 플레어가, 발사할 거리가 생기자 곧장 눈의 여왕이 있던 곳을 향해 핸드 캐논을 발사한 것이었다.
레드는 눈의 여왕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플레어의 공격으로 생성된 거대한 연기로 인해 눈의 여왕의 모습이 가려져 있었다.
레드는 눈의 여왕의 시선이 가려진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몸을 빼냈다.
“헉헉… 큰일 날 뻔 했네. 고마워 플레어!”
레드는 숨을 돌리며 자신을 도와준 플레어를 향해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플레어는 매치 메이커를 든 채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역시 이 정도로는 따뜻해지지 않나보네요.”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는데.. 쳇. 역시 괴물인가.”
레드는 연기가 걷힌 뒤, 얼음 벽 뒤에서 멀쩡한 얼굴로 나타난 눈의 여왕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방금 전 그녀가 말한 대로, 이곳에서 눈의 여왕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었다.
“안되겠어 플레어. 일단은 돌아가자!”
레드는 다시 낫을 들어올리는 눈의 여왕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리곤 위치 퀸이 건네준 거울을 꽉 움켜쥐고, 온 힘을 다해 공간을 갈랐다.
그러자 공간 너머로 둘이 넘어왔던 움브라의 비밀기지가 아른거리며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해명 없이 그대로 사라지려고?”
눈의 여왕은 레드의 움직임을 눈치채고는, 즉시 얼음 낫을 땅으로 내리찍으며 외쳤다.
“아이스 스파이크.”
그러자 눈의 여왕이 내려 찍은 곳에서 거대한 얼음 기둥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땅에서부터 위로 솟아나는 날카로운 고드름은, 이어 레드가 있는 쪽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생성되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땅에서 쩌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까워져오는 얼음 기둥들. 그 모습에 놀란 레드는 얼른 공간 속으로 몸을 넣으며 플레어를 바라보았다.
“플레어! 빨리 들어와!”
하지만 플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먼저 가세요 레드. 저는, 이곳을 따뜻하게 만들어야해요.”
“그게 무슨… 플레어…!”
레드는 눈을 크게 뜨며 플레어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거대한 고드름이 둘이 있던 곳에도 솟아올랐고, 차원의 틈새는 그 충격으로 인해 닫히며 레드는 혼자서 움브라로 되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얼음 기둥들은 쿠궁거리는 소리와 함께 멈추었고, 허공에 머물러 있던 플레어는 그곳에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조용히 착지하였다.
“왜 돌아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위치 퀸의 명령을 받고 온 거겠지?”
눈의 여왕은 방금 전 플레어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말했다.
얼음 기둥에 직격을 당하기 직전. 핸드 캐논을 자신의 발밑으로 발사해서 뛰어올라 피한 것. 그런 움직임은 평범한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플레어는 기뻐요”
“뭐?”
“이렇게 추운 마을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요.”
플레어는 불이 붙은 매치 메이커를 든 채로, 마치 춤을 추듯이 빙글빙글 돌면서 말했다.
레드가 자리를 옮긴 탓에 마을 중심부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여전히 플레어의 시야에는 문을 걸어잠그고 있는 집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네. 얌전히 따라와줬으면 좋을텐데.”
눈의 여왕은 차가운 한숨을 내뱉었다.
“언니도 추워 보이네요. 플레어가 따뜻하게 만들어줄게요.”
플레어는 주저없이 매치 메이커의 포신을 눈의 여왕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자, 매치 메이커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눈의 여왕은 플레어를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다시금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며, 플레어의 주변을 하얗게 물들였다.
“세상은… 더 따뜻해져야만 해요.”
플레어는 시야 밖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마을 방향을 바라보며 매치 메이커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콰앙 거리는 폭음과 함께 불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따뜻한 난로도…”
플레어의 중얼거림과 함께 두 번째 폭음이 울렸다.
“맛있는 음식도…”
세 번째 발사는 바람의 영향으로 플레어의 바로 근처에서 타올랐지만, 플레어는 오히려 기분좋다는 듯이 불길 사이를 거닐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상냥한 할머니까지. 모두 다 따뜻한 불 속에 있으니까요.”
이어 주저없이 사방으로 매치 메이커를 발사해대는 플레어. 어느덧 그녀의 주변에는 눈보라도 꺼뜨리지 못한 화염이 번지고 있었다.
“봐요. 아름답지 않나요?”
눈의 여왕은 불길 속에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플레어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얼굴에 의아함 이라는 감정을 드러내었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거쳐온 눈의 여왕. 그녀가 그동안 봐왔던 인물들 중 가장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 섬에서 지내고 있는 게르다였다. 게르다는 마음이 얼어붙은 채로 자신을 따라온 소꿉친구 카이를 쫓아 눈덮인 산과 얼어붙은 강들을 건넜고, 결국 자신의 온기가 담긴 눈물로 카이를 구해내는 아이였다.
하지만 플레어가 내뿜고 있는 열기는 게르다가 가지고 있는 온기와는 완전히 다르게 절박하면서도 어딘가 처연함이 느껴지는 뜨거움이었다.
‘이 정도의 열기를 속에 담아두면서도 자기 자신은 불타지 않는다는 것은...’
눈의 여왕은 플레어의 주변에서 타오르는 불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마음 속 깊은곳에 절대로 녹지 않는 차가운 냉기가 박혀 있구나.’
눈의 여왕이 플레어를 관찰하는 사이, 플레어는 자신의 주변을 계속해서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자 불줄기는 눈 덮인 언덕을 지나, 어느덧 마을 쪽을 향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만. 여기는 나의 마을이야.”
눈의 여왕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가 누구든 그녀는 이곳의 여왕이었고, 여왕은 자신의 사람들을 지켜야 했다.
눈의 여왕은 왕홀을 앞으로 띄운 뒤,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왕홀이 공중에서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였고, 중심부에서부터 매서운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세찬 칼바람은 눈보라와 결합하여 마치 두꺼운 장막처럼 플레어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고, 거기에 말려든 불길은 길게 이어지며 주황색의 긴 꼬리처럼 주변을 휘감았다.
이윽고 불길을 머금은 눈보라가 토네이도가 주변을 감싸자, 폭풍의 눈과 같이 고요해진 공간 속에서 플레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불을 끄려고 하나요?”
“어떠한 불이라도, 영원히 타오를 수는 없어.”
어떠한 의도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질문에 눈의 여왕은 왕홀을 붙잡으며 답을 해 주었다.
“그렇다면…”
플레어는 다시 한 번 매치 메이커를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새로운 불을 피우면 되겠네요.”
이어 플레어의 매치 메이커가 불을 뿜었다.
이전보다도 더욱 강해진 폭음 소리와 함께 불덩어리가 뻗어나왔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눈의 여왕이 지면을 향해 왕홀을 내리찍자, 다시 한 번 뾰족한 얼음 기둥들이 솟아올라 플레어가 쏘아낸 불덩어리들을 막아낸 것이었다.
플레어는 계속해서 폭음과 함께 불덩어리들을 쏘아냈고, 적중된 얼음 기둥들은 불의 열기에 빠르게 녹아내렸다. 하지만 사방에서 뻗어나온 커다란 고드름들은 잠시 녹더라도, 주변의 고드름과 다시 합쳐지며 이전보다 더욱 거대한 기둥이 되어 플레어의 주변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영원한 겨울. 누구도 눈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어.”
눈의 여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플레어는 그녀의 말에 답할 새도 없이 있는 힘껏 핸드 캐논을 쏘고 또 쏘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주변에 더 많은 대형 고드름을 만드는 결과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플레어는 절망하지 않았다. 불길은 점점 줄어들며 플레어가 한계에 다다른 것은 누가 보아도 분명했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난다면, 나라도 저 아이에게 웃어줄 수 있을까.’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플레어를 바라보던 눈의 여왕은, 이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
눈의 여왕은 다시금 마음을 차갑게 먹은 뒤, 왕홀에 냉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얼음 기둥은 더욱 빠르게 생성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어는 얼음 기둥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윽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플레어의 발과 손가락, 그리고 불꽃이 희미해진 매치 메이커의 포신에도 새하얀 눈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또 추운 밤이네요.”
플레어는 그제서야 들고 있던 매치 메이커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제는 정말 성냥불 정도의 불꽃만이 남은 매치 메이커의 불빛을 통해, 살짝 녹아내린 얼음 기둥의 벽면이 마치 유리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때, 플레어는 반투명하게 비치는 얼음 기둥을 통해 환영을 보았다.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벽난로와 그 앞 식탁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칠면조 요리. 거실에는 과자와 장신구들이 매달린 트리가 있었고, 음식을 다 놓은 할머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까지.
“아직… 따뜻하게 만들지 못했는데..”
환영을 바라보는 플레어의 웃는 얼굴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나 생글거리던 환한 웃음은 어느덧 작은 미소로 줄어들어 있었고, 희미한 미소를 유지하던 입꼬리도 조금씩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과 같은 추위를 느끼며 거리를 맴돌던 그때와 같은 얼굴이 되었을 때.
하얗게 쌓인 눈 위로 자그마한 소녀가 풀썩 쓰러졌다.
눈의 여왕은 그제야 왕홀을 거두고 플레어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본 플레어는 왜소한 체구를 가진 평범한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
“안타깝지만, 위치 퀸을 따른 네 선택을 원망하도록 해.”
눈의 여왕은 왕홀을 들어올리며 작게 말했다.
카이와 게르다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란 점에서 연민을 느꼈지만, 위치 퀸은 예상할 수 없는 음모를 꾸미는 자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상대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다.
이어 눈의 여왕이 플레어를 향해 주문을 외우자, 플레어의 몸 주변에 작은 얼음 결정들이 조금씩 생겨나며 그녀의 몸을 감싸오기 시작했다. 이 얼음은 눈의 여왕의 성과 같은 재질로, 한번 완성되면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이었다.
“이젠 온기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거야.”
눈의 여왕은 허리를 숙여 플레어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그때, 플레어의 작은 입이 살짝 열렸다.
“아직…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했는데…”
플레어의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말에 눈의 여왕의 손이 멈췄다.
그러자 플레어를 감싸기 직전이었던 얼음 덩어리도 작은 틈을 남긴 채 멈췄고, 순간적으로 찾아온 적막 속에서 눈의 여왕은 짧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설마, 이 아이가…”
눈의 여왕은 얼마 전 현자회의에서 전달되어 온 문건을 떠올렸다. 문건에는 이미 수없이 받았던 회의 참가 독촉내용 말고도, 최근 급증하고 있는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상 현상에 대해서도 적혀 있었다. 눈의 여왕은 그 문서를 통해 위치 퀸과 마담 레터스 등의 위협적인 인물에 대한 정보 및 다른 이야기 섬에서 벌어진 특이한 사안들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이 바로 성냥을 팔던 한 이름없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였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성냥팔이 소녀와, 이후 발생하기 시작한 시놉시티의 방화 사건들이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보고서.
눈의 여왕은 그제야 자신의 앞에 누워있는 소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자신처럼 영원의 굴레동안 추위 속에 살았으면서, 끝까지 온기를 찾지 못한 성냥팔이 소녀.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이름을 준 위치 퀸을 따르게 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너는 아직 해봐야 할 일이 많이 남았구나.”
눈의 여왕은 허공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직전까지 세차게 불고 있던 눈보라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어 플레어를 향해서 손을 내리자, 플레어의 전신에 붙어 있던 눈과 얼음조각들이 빠르게 사그라들며 주변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내면에 박힌 냉기는 나조차도 빼낼 수 없지만…”
짧게 읊조린 눈의 여왕은 플레어를 내려다보며 공중으로 조금씩 떠올랐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돌려 마을 외곽에 있는 공용 창고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여러 음식과 꿀과 설탕 등의 감미료가 잔뜩 들어 있었다.
눈의 여왕이 창고를 향해 손을 내밀자, 그 안에 있는 몇몇 물건들이 그녀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재료를 공중에서 섞은 뒤, 얼음으로 만든 컵 위에 올린 뒤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눈의여왕이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얼음 성에서 혼자 지낼 동안, 카이와 게르다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며 만들어낸 간식이었다.
“차가운 것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눈의 여왕은 그 말만을 남긴 뒤, 여전히 흐릿하게 보이는 자신의 얼음 성을 향해 날아갔다.
눈의 여왕이 눈보라와 함께 사라지고 얼마 지난 후.
플레어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대화 소리에 눈을 떴다.
“휴. 대단한 눈보라였어. 다들 집은 괜찮아?”
“우리 집은 괜찮네. 저기 공용 창고 문이 열려 있긴 한데… 큰 피해는 없구만.”
“이런 심한 눈보라가 갑자기 그치다니. 눈의 여왕의 변덕인가?”
플레어가 녹아내린 눈더미 사이에서 몸을 일으키자, 언덕 아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보라가 끝나자 그들도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또 언제 눈보라가 올지 모르니까 준비를 단단히 해두자고. 장작은 안 모자라?”
“우리는 아직 넉넉하지. 이왕 눈도 그친 김에,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다같이 하자구. 특제 스프를 끓여줄 테니까.”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그친 눈보라에 기뻐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을 집들의 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그 안으로 화목해 보이는 집안 풍경이 플레어의 눈에 들어왔다.
굴뚝과 이어진 벽난로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부엌에는 인자한 얼굴의 할머니가 식탁위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음식을 올려두고 있었다.
한때 누구보다 염원했던 그 평범한 풍경에 플레어는 손을 뻗으며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리고 그때, 툭 하고 발밑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그것은 그녀가 위치 퀸으로부터 받은 핸드 캐논, 매치 메이커였다.
플레어는 마을의 풍경을 다시 한 번 바라본 뒤, 뻗었던 손을 내려 매치 메이커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허공에 한 줄기 선이 그어지더니 공간의 틈에서 붉은 후드모자를 쓴 레드가 튀어나왔다.
“헥헥. 드디어 올 수 있네. 플레어 괜찮아?! 그 괴물은…!”
“괜찮아요 레드. 아무래도 겨울이 끝난 것 같네요.”
플레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무사해서 다행이네. 일단은 빨리 돌아가자! 위치 퀸 님도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
“...알겠어요 레드.”
플레어는 아직 둘을 발견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녀는 이제 온기를 찾아다니는 쪽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내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렇게 플레어와 함께 돌아가려는 준비를 하던 레드에게,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응? 그런데 플레어. 발아래에 뭔가 맛있어 보이는게 있는데?”
레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컵 위에 각종 과자와 시럽, 그리고 제일 이에 얹어진 아이스크림까지. 그것은 라이브러리 월드를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는 레드도 자주 접하지 못한 귀한 디저트였다.
“글쎄요. 누가 두고 간 걸까요?”
플레어는 얼음컵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신기하네. 그 디저트를 뭐라고 부르더라. 분명… 파르페?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나도 아직 못 먹어봤지만 분명 아주 맛있을… 앗. 정말 먹는거야?”
레드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플레어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파르페의 맨 위에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살짝 혀로 핥았다. 그리곤 놀란 얼굴로 한 입을 더 베어 물었고, 그 모습을 본 레드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잠시 뒤.
플레어는 입가에 아이스크림을 묻힌 채,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차갑지만… 달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