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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디편] 창공의 콘서트

The translated version of the Smash Novels will be here soon. Thank you.
똑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자, 스노우는 공중에 떠 있는 증강현실 서류를 읽던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로빈.”
문을 열고 들어온 로빈은 살짝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인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 건물 안에서 제 방 앞까지 이렇게 조용하게 오는 사람은 로빈, 당신 뿐이니까요.”
스노우의 대답에 로빈은 혀를 내둘렀다.
‘하루종일 업무를 보면서도 감각을 예리하게 하고 있다니…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니까.’
로빈은 이야기 속에서 의적 활동을 했기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한 채로 주변의 기척까지 감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크흠 그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닌… 아니, 어쩌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스노우가 증강현실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하자, 로빈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설마 또  몸이 안 좋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조퇴하겠다는 얘긴 아니겠죠?”
“마, 말도 안 되는 이유라니… 제가 요새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는 중인데요. 벌써 삼일째 자정까지 야근에…”
“로빈의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유쾌한 친구들’과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로빈은 일주일쯤은 잠도 자지 않고 버텨도 쌩쌩하시다면서요?”
“그…건 그냥 동료들이랑 있을때 허세를 조금 섞어서 한 말이었죠. 그리고 한창때랑 지금은 하는 일도 다르지 않습니까.”
“현장에서 잠복, 침투하는 업무에 비하면 회사 일의 강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을 텐데요.”
“윽. 그건 그렇지만…”
스노우의 논리적인 말에 로빈은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안돼. 이대로면 분명 이번 주도 풀 야근이다…!’
로빈은 익숙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까지 업무량을 줄이려고 스노우를 찾아올 때마다 늘 이런 패턴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해하신 것으로 알고…”
스노우가 대화를 마무리하려던 그때, 별안간 문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 심심한데 뭐 재밌는 일 없나? 키 큰 멍청이는 또 어디로 간 거야?”
잘그락거리는 스프레이 통 소리와 함께 복도에 울리는 큰 목소리. 굳이 스노우처럼 집중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골디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로빈은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저거 보십쇼. 움브라에서 종종 침입해 오는 꼬맹이 하나만 해도 일거리가 산처럼 쌓이는데, 쟤는 내부에서 매일같이 일거리를 늘린다니까요. 사방에 스프레이를 뿌려둬서 드론 카메라들을 마비시키질 않나, 기타를 튜닝한답시고 경비용 장비들을 무단으로 분해해서 갖다 쓰질 않나…”
로빈은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골디가 저지른 사고들과,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골디는 스노우와 로빈은 물론이고 라이브러리 월드의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려고 할 만큼 자유분방했기에 어째서 7D에서 데리고 있는지 많은 이들의 의문점이었다.
“그럼 지금 골디가 찾고 있는 저 키 큰 멍청이라는 건…”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로빈은 자신의 큰 키를 보라는 듯이 손바닥을 머리위에 가져다 대며 외치다가, 올려다보는 스노우의 시선에 머쓱해하며 다시 내렸다.
“크흠… 아무튼, 진짜 이대로는 일을 못할 지경이니, 뭐라도 대책을 좀 세워주시죠.”
로빈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다른 한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골디는 어느새 로빈을 찾는 것을 포기했는지, 기타를 연주하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스노우는 오늘은 절대 그냥 나가지 않겠다는 듯이 결연한 표정의 로빈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로빈이 그렇게 피해다닐수록 골디는 더 재밌어할텐데요.”
“네? 그럼 쟤랑 같이 사내 밴드라도 하라는 말입니까? 아니, 물론 저도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스노우는 로빈의 말에 왜 골디가 로빈의 반응을 재밌어하며 따라다니는지 알 것도 같았지만, 굳이 입밖에 내진 않았다.
“그럼, 당분간 골디랑 떨어져 지내보시겠습니까?”
“네? 휴가라도 주시는 건가요?”
로빈이 기뻐하며 말하자 스노우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요. 안그래도 이번에 들어온 보고서 중에 신경 쓰이는 건이 하나 있었는데, 로빈이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이어 스노우는 증강현실 서류 하나를 새로 띄웠고, 로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스노우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럼 그렇지… 그나저나 출장이라니. 어딥니까? 시놉시티 하층인가요?”
“아니요. 저 위쪽입니다.”
스노우는 손가락으로 천장 방향을 가리켰다.
“시놉시티 최상층 말입니까? 그곳은 현자회의의 전용 공간 아닌가요?”
“아, 물론 거긴 아니고요. 시놉시티 상공에 떠 있는 정거장입니다.”
“네? 그럼, 우주 정거장을 말하는 겁니까?”
“정확히는 성층권에 있습니다. 원래는 후크가 제토페토에 의뢰해서 만든 비밀 정거장이었죠.”
로빈은 스노우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크라면… 구름바다의 대해적 후크 말입니까? 그런 범죄자의 기지를 왜 저희가 가지고 있는 거죠?”
“최근 잦아진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으로, 성층권 구름바다에 있던 이 후크의 정거장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포착이 불가능한 위치에서 저희의 관측 범위까지 밀려온 것이죠. 그래서 정찰 인원을 투입하는 등 대응을 시작하자, 후크는 위치가 노출된 비밀 기지는 쓸모가 없다는 말만 남기고 기지를 비웠습니다. 굳이 우리 7D에 양도한 이유를 따로 말은 안했지만, 아마 일전에 목숨을 구해준 일에 대한 보답적인 성격도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노우의 설명에 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크가 라이브러리 월드에 올 당시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되어 큰 부상을 입었고, 그런 후크를 7D에서 수술해 줬다는 건 로빈도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곳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사실, 아직 잘 모릅니다.”
“모른다니요?”
“정거장의 위치상 상주하는 인원을 두기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 7D의 관측 장비와 정거장 내 자체 보안 시스템을 통해 무인으로 점검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자료에서 지상에서 관측된 정보와 정거장 내부의 보안 시스템의 정보값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구역별 오차값이 어떻게 되죠?”
스노우의 말에 로빈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야근으로 인해 지치고 무기력한 상태의 로빈이지만, 경비 업무를 볼 때 만큼은 철두철미한 성격이 되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스노우는 그런 로빈의 모습을 보며 역시 이 사람의 일을 쉽게 줄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증강현실 서류를 새로 띄웠다.
“이 자료를 보시죠. 오차에서 일정한 패턴이나 편중된 부분이 보이면 기기 결함이나 오류라고 생각하겠지만, 양 쪽의 데이터는 깨끗합니다.”
로빈은 신중하게 증강현실 화면에 뜬 숫자들을 읽어나갔다.
“흠…확실히 이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깔끔하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관측 자료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예측범위 이상의 오류가 저 위에서 발생했거나…”
“다른 누군가가 보안 시스템을 장악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거군요.”
로빈의 말에 스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국 직접 확인을 해 봐야 한다는 건데... 으음. 그런데 어떤 상태인지 모를 정거장에 도킹을 하려면 대규모 인원으로는 무리일 테니, 결국 우리 회사에서는… 대표님 아니면 저밖에 갈 사람이 없겠네요.”
“역시 로빈은 상황 파악이 빠르군요. 여건이 되면 제가 가볼까도 했었지만, 보시다시피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상태라서요.”
스노우는 사방에 펼쳐진 증강현실 서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로빈은 괜히 일찍 퇴근해보려다가 더욱 귀찮은 일거리를 맡은 건 아닌가 싶어 머리를 긁었지만, 그렇다고 주어진 임무를 모른척 할 수도 없었다.
“뭐,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고 격납고로… 음?”
“왜 그러십니까. 로빈?”
로빈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주변을 살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로빈의 말에 스노우도 그제야 로빈이 무엇을 말하는 지 이해했다. 방금 전까지 복도를 울리고 있던 골디의 음악소리가 어느샌가 들리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이렇게 얌전히 사라질 녀석이 아닌데…”
로빈은 갑작스레 사라진 골디의 기척에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스노우는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자며 로빈과 함께 방 밖으로 나왔다.
“골디가 왔던거 치곤 평범하군요.”
깨끗하게 유지되던 7D의 복도는 스프레이로 얼룩져 있었지만, 로빈과 스노우는 놀라지 않았다. 골디가 지나간 자리가 깨끗하면 그게 더욱 신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이건…”
그때, 스노우가 화려한 낙서 사이에서 익숙한 글자들을 발견했다.
“로빈, 여길 좀 보시죠.”
“뭐 재밌는 거라도 그려져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골디가 우리 얘기를 들은 것 같군요.”
벽 중앙에는 골디 특유의 그래비티 필체로, ‘내가 갈게!’ 라는 문구가 칠해져 있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로빈은 정거장 이야기에 흥미로워하며 격납고로 뛰어가는 골디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듯 했다.
“아니, 그렇게 시끄럽게 연주를 하면서 방 안에서 우리가 하는 대화를 들었다고요? 이곳의 방음 시설이 부족했나…”
“뭐, 골디는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아직 미지수니까요. 그런 그녀에게 보안의 개념을 쉽게 적용할 순 없겠죠.”
“끄응…이건 통제불능의 폭탄이 위험구역에 저절로 뛰어들어간 셈인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로빈은 인상을 찌푸렸다. 안그래도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곳인데, 거기에 사고뭉치 골디가 뛰어들었다니.
“어쩔 수 없죠. 이렇게 된 이상 처음 의도와는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아무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무엇..을요?”
스노우의 말에 로빈은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자신의 업무가 계속 늘어났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하 창고에 예비용 은페 수송기가 있습니다. 지금 바로 격납고로 끌어 올려 주유시키면, 금방 골디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아, 아니 대표님. 잠깐만요. 그럼 지금 저보고 골디를 데리고 파견지 정찰 업무를 같이 수행하라는 겁니까?”
“물론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뒷처리만 도와주신다면요.”
스노우는 언제나처럼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로빈은 그 안에 담긴 속뜻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가지 않아봤자 어차피 골디가 정거장에서 벌이는 일의 수습은 로빈 자신이 하게 될 것이고, 그때 수습해야 할 일은 분명 지금의 몇 배, 아니 몇십 배가 될 거라는 암시.
“휴… 바로 준비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빠르게 상황파악을 마친 로빈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제길 오늘도 야근이군.’
로빈은 마지막으로 야근을 하지 않았던 적이 언제였지? 하는 허망한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지하 창고로 향했다.
“후우. 성층권이라더니, 높기도 하네.”
구름 바다를 가르고 올라온 정류장에서는 지상의 모든게 까마득하게 보였다. 로빈은 7D의 특수 은폐 수송기에서 헬멧을 벗고 조심스레 정거장에 발을 디뎠다.
로빈이 타고 온 수송기 옆에는 같은 기종의 비행기가 있었다. 로빈은 기체 정보를 확인할 것도 없이 그것이 골디가 타고 온 수송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참. 정말 엄청난 행동력이란 말이야.”
골디가 정거장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된 로빈과 스노우는 일단 격납고에 연락해서 골디의 이륙을 막아보려 했으나, 골디가 한 발 빨랐다. 골디는 정식 허가를 받은 것처럼 격납고에 뛰쳐들어와서, 다른 직원들이 말리는 것을 모두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수송기를 타고 떠나온 것이었다.
‘제발 둘 중 하나라도 무사히… 아니지, 정거장 만이라도 문제가 없으면 좋겠군.’
로빈은 빠른 퇴근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정거장 안으로 향했다.
“어디보자, 정식 승강장으로 나가려면…”
비상구를 통해 내부로 들어온 로빈은 조심스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방치된 정거장의 벽을 따라 이어진 페인트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쯧. 얘는 자기가 왔다는 것을 동네방네 알리지 않으면 안되는 병이라도 있나?”
로빈은 굴러다니는 빈 스프레이 캔을 보며 혀를 찼다. 은밀함이 생명인 정찰 업무에서 이렇게 요란한 진입이라니. 로빈은 언제나처럼 골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골디가 남긴 페인트 자국은 정거장 내부를 따라 길게 이어졌다. 로빈이 그 흔적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하다보니, 기타로 내려쳤는지 중간중간 흠집이 난 벽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나사, 파이프 등의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골디가 한 건가? 이러면 원인 파악이 더욱 복잡해질텐데. 으으. 이 말썽꾸러기 같으니…”
투덜거리며 내부로 진입하던 로빈은 기이함을 느꼈다. 아무리 골디가 왔음을 감안해도 내부가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벽에 붙어있던 철판들은 억지로 떼어낸 듯 흉하게 구겨진 채 내부를 보이고 있었고, 안쪽의 전선들도 마구 뽑혀서 끊어진 가닥들에서 전기가 튀고 있었다.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난장판을 만들어 놨다고?”
로빈이 아는 바에 따르면 골디는 예측하기 힘든 장난을 치고 다닐 지언정 악행을 하고 다닌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훼손하려 든 흔적이었다.
불안감을 느낀 로빈은 빠른 발걸음으로 복도 끝까지 달려나갔다. 바깥이 가까워질수록 정거장 내부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기에, 로빈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갔다.
마침내 외부로 나가는 출구에 도달한 로빈은 곧장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인 것은 신기하다는 듯이 정거장을 뛰어다니고 있는 펑크 패션의 금발머리 소녀, 골디였다.
“야! 골디 너..!”
“어라, 생각보다 빨리 왔네? 키 큰 멍청이.”
골디는 로빈의 다급한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였다. 로빈은 그런 골디를 보자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지만, 자신의 할 일은 잊지 않았다.
“휴. 그래, 일단 무사해서 다행인데… 골디. 혹시 네가 여기를 이렇게 만든 거야?”
로빈은 자신이 나온 복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골디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엥?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저렇게 쓸모없는 짓을 왜 해?”
로빈은 순간 골디가 7D에서 저질렀던 수많은 장난들이 떠올라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말을 말자… 아무튼 정말 네가 안 했다는 거지?”
로빈은 비상상황임을 깨닫고 무전기를 꺼냈다. 하지만 전원을 켠 무전기에서는 지지직 거리는 소리만 나올 뿐 7D 본부와 연결되지 않았다.
“이상하네. 겨우 이 정도 올라왔다고 전파가 끊길리는 없는데…”
“너무 구닥다리라서 고장난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이 7D의 특제 무전기는 진공상태부터 수심 500미터까지 이상없이 작동되는 방수방진…”
“아~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아무튼 지금 작동 안 되는 고물이라는 거잖아. 맞지?”
골디는 로빈이 곤란해하는 모습이 재밌는지 다가와서 놀려댔고, 로빈은 다시금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짚었다.
“끄응. 그래. 맘대로 생각하고, 일단 돌아갈 준비 해. 귀환해서 상황을 보자.”
“뭐어? 이제 막 왔는데 재미없게 바로 돌아가자고? 싫은데~?”
“투정부릴 때가 아니야. 여긴 지금 위험하다고.”
“나도 알아! 그러니까 더 재밌는 거 아니겠어?”
골디의 말에 로빈이 기가 차서 대꾸하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쿠르릉 거리는 큰 소리와 함께 정거장이 크게 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와! 움직인다! 얘 살아 있는 거였어?”
“그럴리가 있겠냐!”
로빈이 골디의 말에 딴죽을 거는 사이, 전광판이 팟 하고 켜졌다.
뒤이어 화면에 등장한 것은, 기계 몸을 한 움브라의 과학자. 제페타였다.
[키히히힛! 겁없는 쥐새끼가 두 마리나 찾아왔군.]
“으응? 저건 또 뭐야? 로봇 몸이네? 신기해라!”
“제페타! 역시 움브라가 관여한 거였나…!”
의아해하는 골디와는 대조적으로, 로빈은 한때 7D 소속이었다가 이제는 움브라의 수석 기술자가 된 제페타를 곧장 알아보았다.
[헷갈리지 마라! 여길 차지한 것은 움브라가 아니라 이제 곧 라이브러리 월드를 정복할 이 제페타 님이니까!]
제페타의 외침에 로빈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제길. 벌써 여러곳에 개조를 해 뒀군.’
로빈은 이곳에 오기 전 정거장에 대한 기본 사양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였기에, 내부에서 울리는 엔진의 출력이 비정상적으로 높고 곳곳에 새로운 장치가 추가되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사이, 골디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제페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겨우 요만한 정거장 하나 가지고 너무 꿈을 크게 꾸는 거 아니야?”
[키히히힛. 아둔한 녀석 같으니. 요충지인 이 정거장의 위치에다 내가 피땀흘려 완성한 특대형 리펄서 레일건을 장착하기만 하면, 이곳은 곧 시놉시티 전역을 사정권으로 두는 초특급 공중 요새가 될 것이다!]
골디의 단순한 도발에 제페타는 자신의 계획을 술술 불기 시작했고, 그 얘기를 들은 로빈의 표정은 점차 굳어졌다.
“어때. 이제 좀 무서워졌느냐? 혹시 내 수하가 되고 싶다면 말해라! 지금의 나는 관대하니까 들어줄 지도 모르지. 키히히힛.”
제페타가 자신의 이야기에 도취된 사이, 로빈은 전파 방해를 뚫고 스노우와 연락하기 위해 몰래 무전기를 초기화 시키고 있었다.
‘이 정보는 어떻게든 대표님께 전해야 해. 골디!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줘!’
로빈은 뒤로 돌린 한 손으로 무전기를 조작하며 골디에게 필사적인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골디는 로빈을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보냈다.
‘다행이야. 아무리 골디라도 이런 때에는…’
하지만 이어 골디의 입에서 나온 것은, 로빈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아, 시끄러. 깡통 할망구가 머릿속까지 고철인가? 되게 재미없네.”
“뭐… 뭐라고?! 이 건방진 녀석 같으니!”
골디의 말에 분노가 어지간히 치밀었는지, 화면 속 제페타는 들고 있던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거칠게 눌렀다.
그러자 골디와 로빈이 서 있던 바닥이 잠깐 덜컹 소리를 내며 판과 분리되었다.
“어?”
그리고 둘이 같은 소리를 내는 동안, 이동식 바닥은 빠른 속도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어어?”
로빈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손을 휘저었지만, 잡히는 것은 성층권의 차가운 공기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잠시 뒤, 허공에 떠 있던 둘은 성층권 상공에서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골디 너 임마아아아아!”
로빈은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활을 빠르게 튕겼다.
그러자 7D의 기술력의 집약체인 그의 활, 페일노트(Failnaught)에는 빛의 화살이 생성되어 날아갔고, 로빈은 그 반발력으로 골디를 잡아챈 뒤 정거장 제일 밑바닥 구조물까지 간신히 도달할 수 있었다.
골디를 안은 로빈은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몇 바퀴나 데굴데굴 굴러갔다.
“우와! 이번 건 좀 재밌었어!”
구르는 것이 멈추자마자 로빈의 품에서 빠르게 빠져나온 골디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로빈은 몸에 붙은 먼지들을 툭툭 털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야 그렇다치고, 너는 안전장치 하나 없으면서 왜 그렇게 무모한거야?”
로빈이 자신의 슈트를 점검하며 말했다. 그의 슈트는 이번 임무에 맞춰 1인용 초경량 낙하산이 달려 있는 모델이었지만, 골디는 평소 옷차림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아~ 시끄러. 맨날 안전한 일만 하면 대체 무슨 재미야?”
골디와 로빈이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는 그때, 복도 위 스피커에서 제페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런. 재빠른 놈들이군. 하지만 여기서 빠져나갈 순 없을 거다!]
“쳇. 역시 알고 있었나.”
로빈은 괜한 기대를 했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들이 떨어진 위치는 둘이 타고왔던 특수 수송기가 있는 곳의 반대 지역이었기에, 복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정거장 내부를 빙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골디. 슬슬 너도 싸울 준비를 해야겠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골디는 자신의 기타인 락스(Rocks)를 어깨에 들쳐메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저기다! 저쪽에 있다!”
곧이어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늑대떼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만월의 늑대들이군. 골디, 여기서는 일단 거리를 벌리는게 좋으니까 내 뒤에서 엄호를…”
“멍멍이들이네! 꺄핫! 신나는데!”
“...그래, 네 맘대로 해라.”
골디는 로빈의 말을 철저히 무시하며 만월의 늑대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리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늑대는 그런 골디를 보고 가소롭다는 듯이 날카로운 발톱을 들어올렸다.
“크큭. 멍청하게 제발로 걸어 들어오… 크컥!”
늑대의 들어올린 손이 채 멈추기도 전에, 골디의 기타가 그의 턱을 올려쳤다. 늑대는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허공으로 떠올랐고, 골디는 머뭇거리지 않고 기타를 다시 아래로 빠르게 휘둘렀다.
곧이어 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늑대는 무리들 사이로 튕겨나갔고, 그 여파로 몇 마리의 늑대들이 휩쓸려 같이 넘어지기까지 하였다.
“이힛~ 놀랐지?!”
골디는 한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씨익 웃었다.
겉으로만 보면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문제는 자신보다 커다란 덩치의 늑대를 단 두방에 날려버린 직후라는 점이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흩어져서 상대해!”
늑대들은 그제야 골디가 위험한 상대임을 알아챘지만, 딱히 전황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물러나 주면 나야 고맙지.”
산개한 늑대들은 로빈의 시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고, 이어진 페일노트의 화살은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겨우 두 놈을 못 잡는다고? 뭣들 하고 있는거야!  다들 달려들어!]
“크아앙! 들었지? 모두 돌격!”
화면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제페타의 질책이 이어지자, 늑대들은 제각기 포효를 터트리며 눈앞의 골디에게 달려들었다.
“느려~ 느리다구!”
하지만 골디는 그들을 조롱이라도 하듯 기타를 치며 뒤로 물러나다가, 다시 앞으로 미끄러지면서 기타를 휘둘러댔다.
“으으 정신없어 죽겠네. 이 녀석! 잡히기만 해 봐라!”
“아하하하. 날 잡고 싶다구? 나는 너희같이 지루한 애들은 싫은데~”
골디는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기타를 사정없이 휘둘러댔고, 늑대들은 점점 갈 곳이 없어졌다.
남은 늑대들은 어쩔 수 없이 달려들다가 골디의 기타의 뾰족한 모서리에 사정없이 얻어맞거나, 아니면 아예 물러나다가 로빈의 화살에 맞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뭐야. 이게 다야? 너무 싱거운데~”
골디는 복도에 널부러진 만월의 늑대들을 바라보며 기타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보던 제페타는 주먹을 꽉 쥐며 다시 방송 마이크를 잡았다.
[이.. 이놈들! 제법 재주가 있었구나.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뒤부터는…]
“아아~시끄러워!”
골디는 제페타의 목소리가 나오는 스피커를 향해 스프레이 캔을 세차게 집어던졌다. 그러자 펑 소리가 나며 스프레이가 터졌고, 스피커는 바로 고장이 났는지 지직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골디. 왜 그러는 거야? 내버려 두면 술술 정보를 다 불 것 같았는데.”
“그래서 싫은거야! 뭐가 있는지 알고 가면 하나도 재미 없잖아!”
“너는 이 상황에서도… 에휴. 그래, 됐다.”
로빈은 골디는 역시 골디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시각, 둘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통제실에서 제페타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히힛. 감히 내 말을 중간에 끊다니. 건방진 녀석 같으니.”
움브라에서 데려온 만월의 늑대떼는 모두 쓰러졌지만, 제페타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그 복도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되면, 내 얘기를 끝까지 듣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키히히힛.”
화면 속 골디와 로빈이 들어서고 있는 복도. 그곳이 바로 제페타의 비장의 한 수였다.
복도는 겉으로 봐서는 그저 밋밋한 벽 뿐이지만, 그 안에는 각종 무기와 폭탄 등 위험한 장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페타는 이곳에 들어서면 제 아무리 날고기는 7D의 요원이라 할 지라도 탈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제는 울며 매달려도 늦었다!”
제페타는 두 손을 비비며 재밌어한 뒤, 스위치를 눌러 함정들을 모두 발동시켰다.
때마침 복도에 들어선 로빈은 낮게 울리는 진동 소리를 감지하였다.
“골디. 이 복도... 조금 수상하지 않아?”
“뭐야. 너도 느낀거야?”
로빈은 골디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밋밋하잖아! 이 정도로 멋진 정거장에 이렇게 재미없는 벽이라니!”
골디는 곧장 스프레이를 들고 뛰쳐나갔고, 로빈은 그럼 그렇지 하는 혼잣말과 함께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여기에는~ 고래가 뛰어다니고~ 그 위에서~ 레몬 파이가 수영을 하고 있고~ 흠흠~ “
골디는 알아듣기 힘든 콧노래와 함께 알아보기 힘든 그림을 복도 양쪽에 그려댔다. 그렇게 골디가 복도 중간에 다다를 무렵.
벽 안에서 별안간 끼기긱 하는 소리가 울렸다.
“골디! 조심해!”
로빈은 다급하게 골디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벽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잠잠했고, 골디는 스프레이 캔을 든 채로 복도에 엎드린 로빈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에엥? 그건 또 무슨 놀이야?”
“뭐, 뭐야. 분명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로빈은 머쓱해하며 괜히 벽을 퉁퉁 두드렸다. 하지만 벽은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잠잠했고, 골디는 배를 잡고 그런 로빈을 놀려댔다.
“야야. 다시 한 번 해봐! 이렇게 뛰어서 자빠지면 되는거야? 앗하하하!”
이어 골디는 방금 전 로빈의 다급한 얼굴과 몸짓을 흉내내며 뛰어다녔고, 살짝 얼굴이 붉어진 로빈은 분명 뭔가를 들었다며 억울한 표정으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통제실에서 이 광경을 처음부터 모두 바라보고 있던 제페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마, 말도 안돼. 스프레이가 침투해서 기기 고장이라고? 대체 뭘 어떻게 뿌리면 저것들이 한번에 고장이 나!”
골디가 쓰는 스프레이는 뒷골목에서나 거래되는 불법 물건으로, 매우 잘 터지고 예쁜 색이 나온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애초에 자세한 성분 구조에 대해서는 파는 쪽도, 사는 쪽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페타가 많은 시간을 공들여 제작해둔 정밀한 함정들은 우연히도 이 수상쩍은 스프레이의 용액에 맞아서 연달아 오류를 일으켰지만, 당연하게도 골디가 아무런 계획 없이 벌인 일의 여파일 뿐이었다.
“크윽. 이놈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겠군.”
제페타는 탁자를 쾅 하고 내려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거장을 요새화 하기 위해 제페타가 가져온 특대형 리펄서 레일건은 상당한 시간과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한 물건이었다. 때문에 제페타 역시 그동안 각종 예산을 빼돌려 겨우 완성시킨 것이었고, 만약 이번에 문제가 생긴다면 두 번 다시 같은 프로젝트는 꿈도 꾸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제페타가 분노에 차서 뛰쳐나오는 동안, 골디와 로빈은 갈림길에 도달했다.
“저쪽으로 가면 들어왔던 길이니까, 골디 넌 타고 온 수송기로 7D에 돌아가. 나는 이곳 상황을 처리하고 갈 테니까.”
“나만 여기까지 와서 빠지라고? 말도 안 되지~ 여기에 재밌어 보이는 게 많던데~”
골디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기타를 치켜들었다.
“그래. 니가 가란다고 갈 애였으면 내가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리도 없지… 다 좋으니까 내 발목만 잡지 마라.”
로빈은 체념한 목소리로 제발 방해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뒤, 정거장 위쪽으로 올라섰다.
“어디보자. 그런 위험한 이름의 무기라면 분명 저것… 어?! 너는..!”
정거장 위에서 리펄서 레일건이 있는 쪽으로 향하던 로빈은 한쪽에서 등장한 제페타를 발견하였다.
“제페타! 이제 포기할 생각이 들었나?”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라이브러리 월드의 패권이 눈앞에 있는데 내가 여기서 물러날 것 같으냐?”
제페타는 가당찮다는 표정과 함께 자신의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기계로 된 손이 들어가고, 드릴이 튀어나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까는 운좋게 나왔지만, 이곳에서는 어림도 없다!”
이어 제페타는 다른 한 손으로 리모콘을 눌렀다. 그러자 정거장의 곳곳에서 기계 팔들이 솟아올랐다. 기계  팔들은 마치 몸을 풀듯이 한 바퀴 회전한 뒤, 일제히 로빈 쪽을 향했다.
“이, 이건 또 뭐야?!”
“키히힛.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왔을 것 같으냐!”
제페타는 의기양양하게 외친 뒤, 드릴의 반대편 손으로 리모콘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처의 로봇 팔들이 로빈을 향해 뻗어오기 시작했다.
“쳇. 이런 비열한…!”
“비열하다고? 내게는 칭찬이야!”
제페타는 입꼬리를 올리며 직접 로빈을 향해 드릴을 휘둘렀다.
“아오. 오늘치 초과 수당은 보너스를 붙여서 받아내야겠네!”
로빈은 이를 악물고 사방에서 펼쳐지는 공격을 정신없이 피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간간히 활을 당겨 로봇 팔과 제페타를 공격해 나갔지만, 누가봐도 상황은 점점 로빈에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흐응. 치열하게 싸우네.”
골디는 로빈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둘의 전투보다 그녀의 흥미를 끄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게 그 무지 쎈 무기라는 건가? 재밌겠다! 어떻게 작동하는거지?”
골디는 정거장 안쪽에 있는 초대형 리펄서 레일건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한창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제페타의 눈에 들어왔다.
“이봐! 어디 가는거야! 멈추지 못해?!”
당황한 제페타는 골디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고, 로빈은 그 틈을 타서 제페타를 향해 활시위를 돌렸다.
“잘 했어 골디!”
“아차! 이 끈질긴 놈이..!”
제페타는 당황하며 몸을 틀었지만, 빛의 화살은 아직 채 빠지지 못한 제페타의 팔을 강하게 치고 지나갔다.
“으윽!”
그 충격에 제페타는 들고 있던 리모콘을 놓쳤고, 그 리모콘은 바닥을 몇 번 튕긴 뒤 골디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어라? 이건 또 뭐람?”
리모콘을 집어올린 골디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제페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제페타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 그거… 이리 다시 던져!”
“싫은데? 흐응. 이 버튼은 뭐지?”
골디는 제페타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신이 난 기색으로 리모콘의 버튼을 이리저리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삐빅 삑 하는 효과음과 함께 펼쳐져 있던 로봇 팔이 이상한 각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곧 푸슈슉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며 멈춰버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그 모습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제페타는 골디를 향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 뒤에는 그를 쉽게 보내줄 리 없는 로빈이 있었다.
로빈은 몸을 날려 뛰어가는 제페타의 발목을 붙잡은 뒤, 골디를 향해 힘차게 외쳤다.
“잘 했어 골디! 뭐라도 더 해봐!”
“안돼! 거기 있는 버튼을 함부로 누르면..!”
그리고 둘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골디는 리모콘 아래에 있는 빨간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고보니까 이건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골디가 중얼거리며 빨간 버튼을 누르자, 정거장 바닥에서 덜컹 소리가 났다.
“어?”
로빈은 어쩐지 익숙한 소리에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지금 자신과 제페타가 넘어져 있는 곳이, 방금 전 골디와 함께 떨어졌던 이동식 바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 잠깐만! 골디! 도와줘!”
로빈은 다급한 나머지 골디의 이름을 불렀고, 그 순간 이동식 바닥은 빠른 속도로 반대 편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로빈과 제페타는 동시에 바닥에서 허공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 로빈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빠르게 자신의 쪽으로 뛰어오는 골디였다.
“쳇.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위급할 때는 도와주는구나.’”
로빈이 속으로 흐뭇해하며 골디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멋지게 달려온 골디가 손을 뻗은 곳은, 로빈 쪽이 아니었다.
“읏챠! 쇳덩이라 그런지 꽤나 무겁네!”
골디는 지체없이 제페타를 붙잡은 뒤, 몸을 당겨 그녀를 끌어당겼다.
“골디이이이이 너 임마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아래로, 멀어지는 로빈의 절규가 낙하산을 펼 때까지 애처롭게 울렸다.
“어..? 나, 나를 구해준다고?!”
이어 까마득한 아래를 바라본 제페타는, 아직까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골디를 바라보았다.
“응. 저거 켜는 법은 네가 더 잘 알 거 아냐?”
“너… 저게 무슨 물건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막 화려하게 터트리고 그러는 거 아냐? 맞지? 난 최대한 시끄러운 곳에서 공연하는게 좋거든!.”
골디의 대답에 제페타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히..히힛! 키히히힛!  7D에서 왔다길래 영락없이 착한 놈인 줄 알았는데, 너도 악당이었구나! 좋아! 내 편이 되겠다면 언제든 환영이지! 좋아! 아직 출력 조율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렇게 원한다면 곧장 작동시켜주지. 어딜 노리고 싶으냐? 제토페토나 7D의 본사? 아니면 곧바로 현자회의?”
제페타는 마침내 자신의 야심이 실현될거라는 생각에 미소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골디가 삐딱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음~ 아니야. 역시 마음에 안 들어!”
“뭐가 마음에 안든다는 말이냐?”
“디자인! 너무 칙칙한 색깔이잖아. 어휴. 대체 무슨 센스람?”
골디는 리펄서 레일건의 외관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곧바로 자신의 주머니에서 스프레이 캔을 꺼내 양 손에 집어들었다.
“자, 잠깐만. 그 스프레이는 안돼!”
골디가 치이익 거리며 스프레이를 뿌려대자, 제페타는 화들짝 놀랐다.
골디의 스프레이가 기계 부품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이미 당해봤기 때문이었다.
“그만! 그만하라고!”
“왜 방해하고 난리야? 왜, 그쪽도 칠해줘?”
하지만 골디는 제페타의 말을 전혀 듣지 않은 채 한 손으로 레일건을 향해 분사하며, 나머지 한 손을 제페타 쪽으로 돌리기까지 하였다.
“어푸! 어푸푸… 이, 이놈! 역시 교활하게 내 계획을 망치려는 거였어!”
제페타는 얼굴에 묻은 스프레이를 닦아내며 뒤로 물러섰다.
이어 골디가 마음 놓고 레일건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사이, 그녀를 향해 양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한 쪽 손에서는 드릴, 다른 한 쪽에서는 망치가 튀어나왔다.
“이건 못 피할거다!”
제페타는 골디의 뒤에서 양 팔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으핫. 휴. 조심 좀 해야겠네.”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스프레이를 뿌려대던 골디는 마침 다 쓰고 버려둔 스프레이 캔을 밟았고, 그 영향으로 잠시 균형을 잃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넘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제페타가 뛰어오는 경로와 정확하게 겹치는 곳이었다.
“비, 비켜! 아니, 비키지 마..!”
갑자기 골디가 뛰어들자 제페타는 방향을 꺾으려고 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만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발이 얽히고 말았다.
“흐아악!”
강력한 기세로 달려들던 제페타는 그대로 공중에 붕 떴고, 그의 앞에는 리펄서 레일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안돼! 안돼!”
제페타의 절망적인 외침에도 불구하고 무기화된 그의 양 팔은 거칠게 리펄서 엔진의 조작부를 뚫고 들어갔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부 기판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제페타는 황급히 드릴을 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에이. 그렇게까지 튜닝할 필요는 없었는데. 비켜봐. 내가 예쁘게 칠해줄 테니까.”
골디는 넋이 나간 표정의 제페타를 무시한 채, 유유히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너… 너는 대체 누구냐!”
제페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소리를 질렀지만, 골디는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나? 난 골디라고 하는데. 하핫. 어때. 재밌었어?”
골디는 스프레이 캔을 달각달각 흔들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때, 리펄서 레일건의 내부에서 작게 펑 하는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히익. 뭐, 뭐야. 설마 내부 배터리가 붕괴되고 있나!? 그것만은 안돼. 제발!”
제페타는 다급하게 리펄서 레일건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회로 내부의 폭발은 스프레이와 닿을 때마다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며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크흑…위치 퀸에게 대체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제페타는 망연자실한 자세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실의에 빠진 제페타와는 대조적으로, 골디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좋아! 이게 내가 원하던 거였어!”
골디는 주저하지 않고 이동식 바닥으로 향한 뒤, 리모콘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동하는 발판에 다리를 딱 붙인 뒤, 기타에 손을 올렸다.
지잉 거리는 기타 소리는 계속 커져가는 폭발음에 묻힐 지경이었지만, 골디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성층권에서 시작된 골디의 단독 공연은, 문자 그대로 이제껏 라이브러리 월드의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들~ 내 노래를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