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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퀸편] 악의 대관식

글라시아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좁고 더러운 복도. 전기가 희미하게 통하는지 벽에 있는 비상등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일렁이며, 창백한 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무질서하게 파이프와 전선이 이어지고, 바닥에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글라시아의 옷차림은 그런 복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칠흑 같은 검은 색의 드레스에는 차분한 색체의 장식이 들어가 고귀한 느낌을 풍기고, 높은 굽의 구두는 주인의 명에 따라 또각거리며 콘크리트 위를 연주했다. 고고한 차림새와 더불어 주위에는 어떤 시선도 돌리지 않는 글라시아의 분위기는, 마치 더러운 것들이 감히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만 같았다.
“오셨습니까.”
그렇게 얼마나 복도를 걸었을까. 어둠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빡이는 전구가 목소리의 주인을 천천히 비추었다.
커다란 덩치의 늑대였다. 하얗게 새기 시작하는 갈기의 색채와 낮고 걸걸한 목소리는, 늑대가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몸에 두른 것은 정장과 코트. 하지만 그 옷차림은 단정함보다는, 육체의 주인의 날카로운 야성이 터져나오는 것을 가로막는 마지막 보루인 것만 같았다. 노안 탓인지 쓴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는, 노쇠했을지언정 약해지진 않은 본인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만 같았다.
“볼프강.”
글라시아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그 작은 목소리에는 믿을 수 없는 힘이 숨겨진 것만 같았다. 자신의 집사에게 하듯 부드럽고 간결했지만, 마치 유혹하듯, 억누르듯, 글라시아의 몸 속에 있는 힘이 흘러나오듯. 볼프강은 그 목소리에 굴복하듯, 정중히 자신의 주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모두 와있나?”
“네, 기다리고 있습니다.”
볼프강의 대답에 글라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신호라는 듯, 글라시아의 앞에 있던 양개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글라시아는 막힘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모습은 복도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마법을 통해 방금 전의 통로와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것처럼.
거울과도 같이 연마한 오석이 벽면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 사이로는 화려하게 장식된 대리석 기둥과 온갖 명화들의 액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기둥마다 설치된 횃불은 글라시아가 지나갈 때마다 하나씩 푸른 불길을 피워냈다. 또각거리는 글라시아의 발소리는 넓은 방에 울려퍼지며 희미한 메아리를 이루었다.
길고 긴 고급 테이블이 입구부터 방 안쪽까지 길게 이어지고, 그 양쪽으로는 온갖 이들이 앉아 있었다. 험상궂은 인상의 거구,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도깨비나 괴물들, 간사함으로 유명한 동물들이나, 동물과 인간이 섞인 것 같은 수인들도 있었다. 검은 고깔모자를 쓴 마녀들도 있었으며, 창백한 피부의 흡혈귀나 다른 이물(異物)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글라시아의 등장에 각자의 감정을 담아 시선을 보냈다.
글라시아는 그 시선들에도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도 없으며, 긴장도 없다. 수없는 괴물과 악당들의 시선에도, 글라시아의 태도는 복도에 널려있던 쓰레기나 오물들을 대할 때와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마치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듯이.
끼익. 글라시아는 테이블에 도착해, 볼프강이 당겨준 의자에 다리를 꼬며 앉았다.
“늦으셨군.”
그 맞은 편, 가장 방 안쪽에서 한 쌍의 눈빛이 반짝였다.
방 가장 안쪽에는 넓은 공동이 있어, 푸르게 불타는 횃불의 불빛도 전부 닿지 않았다. 하지만 거대한 한 쌍의 눈동자는 붉게 빛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찌르는 것 같은,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위압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한가한 몸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이런 회합의 자리에 늦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모두가 자네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네.”
눈동자의 주인의 목소리는 방 안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시끄러울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그 목소리는 다른 의미로 거대했다. 목소리에 담겨 있는 기운에 푸른 횃불은 일렁이고, 벽은 진동했다. 앉아있는 수많은 괴물들이나 악당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건 글라시아의 뒤에서 경호원이나 비서처럼 서있는 볼프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볼프강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회색 털이 하얗게 색이 바랄 정도로 볼프강은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만큼 많은 경험과 연륜이 쌓였으며, 어지간한 일에도 동요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그런 볼프강조차 당장 도망치고 싶어지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늑대의 본성이, 아니 동물의 감각이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속삭였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눈빛이 다가오고, 눈빛 뿐만 아니라 그 얼굴이 일렁이는 빛에 드러났다. 세로로 길게 이어진 동공. 파충류의 비늘로 뒤덮인 길쭉한 주둥이. 비늘에 새겨진 여러 흔적들은 볼프강이 어린애로 보일 정도로 늙은 기색을 드러냈지만, 그것은 노쇠했다기보다는 더욱 현명하고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오랜 시간을 살아온 고룡.
빛 속으로 나온 드래곤의 머리는 그것만으로도 사람 몇 명 분의 크기는 되는 것 같았다. 볼프강은 늙었지만 자신의 덩치가 작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웬만한 장정보다도 머리 하나는 크고,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육체도 두 사람의 몫은 된다고 자신했다. 그렇지만 그런 볼프강조차 드래곤의 머리에 비교하면 한 입 거리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 어둠 속에 있는 몸은 얼마나 거대할까.
드래곤은 흉폭하고 욕심이 많은, 이야기 속 악역의 대표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 드래곤과의 회담에, 다른 참석자들 역시 긴장한 것이 볼프강에게는 느껴졌다. 볼프강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허세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군요. 말씀하셨다시피 바쁜 몸이라서요.”
하지만 글라시아에게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방만하게 한쪽 다리를 꼰 채로, 글라시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미안하다는 기색은 담기지 않았다. 오히려 웃는 것 같은, 도발하는 기색까지 있었다. 회담에 참가한 참가자 중 누군가가 헉, 하는 숨소리를 냈다. 하지만 글라시아는 그 반응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글라시아는 드래곤을 마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제가 늦은 만큼, 회담을 바로 진행해주시죠. 그렇지 않으면 더 늦어질 테니까요.”
글라시아의 목소리는 드래곤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하지만 볼프강은 목소리에 담긴 힘 자체만은 결코 저 강력하고 거대한 드래곤에게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드래곤의 목소리가 강력하고 강력해 상대를 왜소하게 만들고 짓누르는 힘을 가졌다면, 글라시아의 목소리는 달랐다. 무언가 스산한 것이 다가오는 느낌과도 같았다. 형체도 정체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에게 다가와, 발치부터 기어올라오는 듯한 느낌. 유혹하듯 달라붙어 빠져들게 하는 위험한 매력. 짓누르는 게 아니라 달라붙는 것 같은 힘.
“...좋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회담을 시작하지.”
그 말이 신호라는 듯, 작게 일렁거리던 벽면의 횃불들이 커다랗게 타올랐다. 은은한
불빛으로 비춰지던 방 안이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밝아지고, 방 안에 있는 이들의 면면이 드러났다. 너무나도 거대한 드래곤의 거구도 함께.
“이 회담은 글라시아, 그대의 부탁으로 열리게 되었다.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보기 바란다.”
“고맙군요.”
드래곤은 콧김을 내뿜으며 어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거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글라시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흘려보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이곳에 모인 우리는… 본디 경쟁상대이죠. 이 ‘라이브러리 월드’에 모였음에도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든 사이고 말이에요.”
회담에 참석한 악당들을 둘러보며 하는 글라시아의 말에, 참석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글라시아의 말대로, 이들은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서로 경쟁하는 악당들이었으니까.
이야기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 이후로,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세계에 모여 살아야 했다. 선한 이들은 문제 없이 함께 살며 도시를 이루고, 기업을 차리고, 서로 교류했다. 하지만 함께 지내야하는 것은 악당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중에는 악당 일을 그만두고, 더 복잡하고 넓어진 세상에 적응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 더 많은 등장인물이 살게 되고, 이야기 속보다 복잡해진 사회는 이야기 속에서는 이루지 못할 야망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로만 보였다. 수많은 먹잇감과 기회로 가득한.
회담에 참석한 이들은 그런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올라온 이들이었다. 다른 악당들을 모으고, 굴복시키고, 조직을 이룬, 시놉 시티의 그림자에서 움직이는 조직의 수장들.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려고 부른 건 아니겠지?”
글라시아의 말을 끊은 것은, 산적들과 도적들로 이루어진 악당 집단의 두목을 맡은 인물이었다. 과연 그들을 대표하는 인물답게, 커다란 체구와 흉터, 제멋대로 자라난 무성한 수염이 험상궂은 인상을 강하게 하고 있었다. 두목은 금색으로 번뜩이는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여기 있는 인간들이 전부 한가해서 이 자리에 모인 줄 아나? 댁이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회담을 여니까, 무슨 헛소리나 하는지 들어보려고 온 거야. 그러니 그 중요한 이야기라는 거나 하시지.”
깔보는 것이 분명한 두목의 말투에, 볼프강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두목은 그런 볼프강의 반응에 오히려 잘 됐다는 듯 히쭉 웃을 뿐이었다.
“뭐, 불만 있냐 멍멍아? 한때는 은퇴니 뭐니 했으면서 이제는 저런 여자의 충견이나 되다니. 그 유명한 늑대도 별 것 아니었나봐?”
“...”
볼프강은 자신에 대한 모독에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려 했지만, 글라시아가 한 손을 들어올리자 고개를 끄덕이고 화를 삼켰다. 두목은 코웃음을 쳤다.
“새 주인이 아주 잘 훈련한 모양이군.”
이어진 모욕을 볼프강은 어렵게 받아넘겼다. 글라시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기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좋습니다. 다들 바쁘신 몸일 테니, 원하신다면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 하도록 하죠.”
글라시아는 회담에 참가한 인원들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말했다.
“저는 이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모든 이야기를 지배할 겁니다. 그러니 모두들 제 휘하로 들어오시도록 하시죠.”
한 순간의 침묵. 그리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하하하하! 글라시아 양은 농담도 잘 하시는군!”
회담장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운 소리로 가득 찼다.
분노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는 인원들. 산적들과 도적들의 두목을 대표로, 주로 힘을 쓰는 거칠고 무투파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농담을 들었다는 듯 큰 소리로 웃는 인원들. 흡혈귀나 괴물 등, 인간이 아닌 이들이 대부분으로, 그 웃음에는 비웃음의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개중에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드래곤을 비롯해 침묵을 지키는 이들, 그리고 키득거리며 웃는 마녀들.
글라시아는 그 어느 것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무슨 의미인지 알기 힘든 미소만을 지키고 있었다.
소란을 잠재운 것은 쾅! 하고 회담장을 내려치는 소리였다. 큼지막한 주먹으로 회담장을 내려친 채, 두목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고작 그런 장난질 같은 이야기나 하려고 우리들을 전부 여기 부른 건가? 모욕하는 방법도 가지가지군!”
글라시아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씹어 뱉는 듯한 두목의 말을 얌전히 들었다. 그 행동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두목은 글라시아 뿐만이 아니라 회담에 참가한 다른 악당들을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이렇게 다들 모였으니 그건 잘 됐군. 다들 잘 들으시지. 우리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생각 없어. 이야기 속에서 왕이나 귀족들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던 우리야.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그런 것도 없으니까, 더더욱 자유롭고. 라이브러리 월드의 뒷세계를 차지하는 건 바로 우리니까, 그렇게 알라고.”
“제대로 된 이름도 가문도 없는 천민 주제에 말은 잘 하는구나.”
“뭐야?!”
자신의 말에 냉소를 드러내는 반응에 두목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연미복과 망토를 두른 노인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두목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어리석은 것. 지배자는 고귀한 혈통이 증명해주는 법이다. 또한 뒷세계는 어둠의 세계, 우리 흡혈귀 말고 누가 지배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 라이브러리 월드의 어둠은 우리의 것이다. 너희들도 나의 피조물이 되어, 내 명령에 복종하며 나의 사냥감을 물어오는 자칼이 되면 충분해.”
백작은 그 몸 속에 흐르는 피만큼이나 차가운 음성으로 음산하게 말했다. 흡혈귀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퍼트린 장본인 답게, 그 목소리에는 사람을 두렵게 하는 공포가 서려있었다. 하지만 두목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기에, 백작의 말에도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너희들 멋대로 누가 주인이네 뭐네 하는 거야?”
둘의 말싸움에 끼어든 것은 괴물들의 대장이었다. 커다란 체구에 털이 가득한 것은 볼프강과 비슷했지만, 그 생김새는 어떠한 짐승이나 인간과도 닮은 듯 또 달랐다. 커다란 눈동자를 깜빡이며 괴물들의 대장은 입을 열었다. 말을 하려 입을 움직일 때마다 흉측한 이빨과 혀가 드러났다 숨었다.
“이야기에서는 숨어다녀야 했지만, 여기 라이브러리 월드라면 이상한 녀석들도 잔뜩 있으니, 우리도 숨어다닐 필요가 없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이 좋은 곳에서, 우리가 또 인간들을 두려워할 것 같아?”
그 뒤를 이어, 그 뒤를 이어. 방금 전 글라시아의 선언에 큰 소리로 반발하거나, 혹은 농담을 들었다는 듯 웃던 이들은 서로를 무시하고 비난하며 말다툼을 이어갔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이 새로운, 모든 이야기가 모인 라이브러리 월드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그런 이들의 말다툼을 글라시아는 자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를 지은 채 말없이 바라봤다. 드래곤 역시, 그 소란 속에서도 아무 말 없이 한 쌍의 눈동자로 글라시아를 응시할 뿐이었다.
키득. 키득키득. 그런 소리에 누군가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우연히 찾아온 외침 사이의 침묵 때문이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 이가 침묵하며 시선을 향하자, 다른 이들도 하나 둘씩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눈치챘다. 이윽고 회담장에서 아무도 소리를 내는 이가 없어지자, 키득거리는 소리만이 선명해졌다.
회담장의 끄트머리. 그곳의 세 자리는 마녀들을 위한 자리였다. 검은색 고깔모자와 케이프를 두른 세 명의 젊은 마녀는, 그저 즐겁고 웃기다는 듯 키득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마치 비웃음과 같아서, 방금 전까지 열을 올리며 말다툼을 벌이던 이들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가 그렇게 우습지, 꼬맹이들?”
이를 드러내며 입을 연 것은 산적과 도적들의 두목이었다. 커다랗고 험상궂은 사내가 협박하듯 말함에도, 마녀들은 그저 재밌다는 듯 키득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우습잖아요? 그렇죠?”
“다 큰 어른들과 이름난 악당들이 자기가 최고라고 말싸움이나 하는 걸요.”
“우스워요, 우스워요.”
“으음…”
키득거리는 마녀들의 재잘거림에, 머쓱하다는 듯 두목은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녀들의 재잘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여기에 모인 게 누구 덕분인지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렇죠?”
“뻔뻔한데다 주제도 몰라요.”
“우스워요, 우스워요.”
“뭐라고?”
자신들의 흉을 보는 소리에, 방금 전 악당들이면서 말싸움이나 했다는 말에 머쓱해지던 이들이 바로 화를 냈다. 백작은 인상을 찌푸린 채 세 마녀들을 보며 물었다.
“뻔뻔한데다 주제도 모르다니, 지금 우릴 보고 한 말인가?”
불쾌하다는 기색이 가득한 백작의 물음에도 마녀들은 키득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백작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가녀린 목을 물어뜯기 전에, 대답을 잘 생각하는게 좋을 것이야 어린 아가씨들. 뻔뻔한데다 주제도 모른다는게, 감히 나를 보고 한 말인가? 여기에 모인 게 누구 덕분인지도 모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리고 그 순간.
세 마녀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키득거리던 웃음을 멈췄다. 셋은 진지한 듯한, 어딘지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글라시아를 바라봤다.
“저희들이 대답해도 될까요?”
“아니면 직접 대답하실 건가요?”
“궁금해요, 궁금해요.”
마녀들의 변화한 태도에, 백작은 물론이고 모두가 글라시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미소를 띈 채 글라시아는 마녀들에게 대답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하며, 글라시아는 모두의 시선을 받는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 또각하고 구둣소리를 울리며, 볼프강을 대동한 글라시아는 천천히, 느릿한 걸음으로 앉아있는 모두의 뒤를 걷기 시작했다.
“우선, 여러분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라이브러리 월드에 와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죠. 네, 그래요. 이야기 속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꿈을, 지배하고 싶은 욕구를 이루고 싶겠죠.”
천천히, 마치 구두가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즐기듯 발걸음을 옮기며 글라시아는 가녀린 손가락으로 회담에 참가한 인원들이 앉은 의자의 등받이를 훑기도 하고, 참가자들의 어깨를 긋기도 하며 말을 이어갔다. 어투 자체는 평범함에도, 왠지 모를 압도감에 모두는 아무런 말도 반응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여러분이 간과하시는 사실이 있어요. 이 회담은, 그 점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연 것이기도 해요.”
“...그게 무엇이지, 글라시아 양?”
자신의 등 뒤에서 어깨를 손가락으로 훑는 글라시아에게 백작이 물었다. 글라시아는 발걸음을 멈추고, 백작의 귓가에 얼굴을 옮기며 마치 속삭이듯, 하지만 회담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우선은, 마녀들이 이야기한대로, 누가 여러분을 라이브러리 월드에 불렀나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죠.”
백작의 귓가에 속삭이며, 글라시아는 백작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훑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 행동과 말투에도, 백작은 굳어버린 듯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모든 흡혈귀의 왕이라고 불리우고, 흡혈귀라는 존재를 널리 알린 악당임에도, 백작은 마치 뱀 앞에 있는 개구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미 싸늘해진 시체이기에 땀을 흘리지 않음에도, 백작은 분명하게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에서 한 방울의 싸늘한 식은땀이 흘렀다고 느꼈다.
“모두가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이라고 부르는 일이 일어났죠. 이야기 속에 사는, 이야기의 등장인물인 우리는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떠날 수 없게 됐어요.”
글라시아는 질렸다는 듯 백작에게서 떠나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또각거리는 소리를 반주 삼아, 천천히 리듬감 있게 이어가는 글라시아의 말은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지만 모두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죠. 그 비밀을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과 나누겠어요.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은 사실…”
“뭐야, 설마 당신이 했다 이건가?”
글라시아가 입을 열려는 순간, 산적과 도적들의 두목이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마치 홀린 듯 글라시아를 바라보며 글라시아의 목소리를 듣던 이들은 놀란 듯 두목을 바라보았다. 두목은 거만하게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 댁이 얼마나 잘났고, 움브라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은 세상의 법칙을 바꾼 사건이라고. 댁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당신.”
주위를 보며 동의를 구하듯 낄낄거리는 두목의 말을 글라시아가 잘랐다.
“아무래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당신 뿐인 것 같네요.”
“뭐야?”
두목은 험상궂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글라시아는 싸늘한 눈매로 두목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주위를 한 번 보라는 듯.
그리고, 글라시아의 말대로, 두목의 말에 동의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두목은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까 전까지만해도 자신의 휘하에 들어오라는 글라시아의 말에 화를 내고, 비웃음을 짓던 이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저 어딘지 두렵다는 듯, 무모한 자를 보듯, 글라시아나 두목을 힐끔거릴 뿐.
회담장의 모두는 느낄 수 있었다. 마녀들이 어째서 침묵했는지. 글라시아가 어째서 자신이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일으킨, 세상의 법칙을 바꾼 장본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지. 글라시아가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마력의 저릿함을 다른 이들은 모두 느끼고 있었다. 어떠한 마법의 힘도, 특별한 힘도 없는, 그저 이야기에 나오는 이름 없는 산적과 도적들 중 하나였던 두목은 알 수 없는 저릿함이었다.
두목이 당황하는 사이, 글라시아는 다시금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두목의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을 보는 눈도 없고, 상황을 파악할 능력도 안 되고, 할 줄 아는 건 시끄럽게 떠드는 것 뿐이네요. 어떻게 이 회담장에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자기 주제를 좀 파악하시는 게 어떤가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자신을 모욕하는 글라시아에게 두목은 한 마디 하려 했다. 그렇지만 입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 본능적인 두려움이 두목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는 사이 글라시아는 두목에게 다가와, 두목을 향해 천천히 손을 펼쳐보였다.
“당신, 거울이라도 좀 보고 오면 어떨까요?”
어느새 두목과 글라시아 사이에는, 커다랗고 특이한 모양의 거울이 있었다. 글라시아를 바라보던 두목은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말았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 역시.
순간, 밝은 빛과 함께 연기가 방안을 메웠다.
빛과 연기가 사라지자, 두목이 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개구리 한 마리 뿐이었다. 시끄럽게 개굴거리는 초록색 개구리를 보며, 글라시아는 싸늘한 미소를 보였다.
“후훗, 시끄럽고 흉측하고. 이제야 어울리는 모습이 되었네요.”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을 폴짝거리는 개구리를 보며, 회담에 참가한 인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마른 침을 삼키는 것뿐. 그때, 말없이 상황을 그저 지켜보던 드래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글라시아. 회담에 참가한 인원에 대한 위해는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낮고 묵직한, 차분하지만 힘이 담긴 목소리. 그렇지만 글라시아는 비웃는 듯한 웃음을 보이며 딴청을 부리듯 말했다.
“어머, 그 점은 죄송하네요.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대로 두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주제를 파악하면 되돌려줄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회담을 먼저 방해한 건 저 분이라고요. 저는 그저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에게 마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었답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계속해주시지.”
드래곤과 글라시아는 마치 기싸움이라도 하듯 서로를 한동안 바라봤지만, 이윽고 글라시아가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회담장의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야기가 조금 샜네요. 말씀대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죠.”
글라시아는 다시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치 방금 전 두목을 개구리로 만든 것이나, 드래곤과의 신경전 모두 없던 일이라는 것처럼.
“네, 제가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어떻게 했는지는 묻지 마세요. 그런 건 비밀로 해둬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뭐라고 하더라… 그래, ‘영업비밀’이라고 해두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제가 ‘왜’ 그렇게 했느냐… 그것 아니겠어요?”
마치 노래하듯, 즐겁다는 듯 말하는 글라시아에게 회담장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 시선을 즐기는듯 하며 글라시아는 어느새 회담장을 한 바퀴 돈 후, 자신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여러분은 이야기 속을 어떻게 생각하시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한 손으로는 턱을 괴며 글라시아는 회담장의 모두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모두는 입을 여는 것을 주저했으나,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백작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글라시아 양?”
“그 말 그대로랍니다, 백작님.”
글라시아는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저는 라이브러리 월드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나 역시 놀라긴 했지만… 기뻐하다니 어째서지? 이야기 밖에도 세상이 있어서?”
백작의 질문에 글라시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라이브러리 월드는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 이야기가 끝나면 등장인물들은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되며, 그곳에서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게 된다. 그것 자체는 라이브러리 월드에 오게 되며 알게 된 진실이었다.
하지만 백작을 포함해 이 자리의 누구도 이야기 속에 있을 때에는 ‘라이브러리 월드’라는 세계를 알지 못했다. 다시금 이야기로 돌아갈 때 기억을 잃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된 뒤 자신이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야기 밖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누구에게나 충격이었다.
백작에게 있어서 그 사실은 불쾌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수백년을 살아온 명망 높은 가주(家主)이자 밤의 지배자로서 살아온 자신의 일생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였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나마 백작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는 것과 자신이 겪은 인생은 거짓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백작은 글라시아의 기뻐했다는 말과, 그 이유가 이야기 밖의 세상이 있다는 게 아니라는 대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백작 본인으로서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점은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두는 글라시아의 대답을 기다리며 글라시아를 응시했다.
천천히 글라시아는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정해진대로 살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죠.”
그렇게 말하고 글라시아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회담 참가자들을 바라봤다.
“우리는 악당들이에요. 그렇게 탄생했고, 그렇게 만들어졌죠. 우리는 모두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있지만, 그걸 이루도록 허락받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사악하도록 정해졌고, 처음부터 주인공들에게 패배하도록 정해졌죠.”
볼프강은 그때 눈치 챘다. 누구보다 글라시아의 곁에 오래 있는 볼프강이었기 때문에 눈치챌 수 있는 점이었다. 여유롭고 평범한 목소리를 가장했지만, 그 안에 숨겨뒀던 글라시아의 감정이 드러난 것을 볼프강은 느꼈다.
“이야기 속에서는 우리는 악당이고, 조연이고, 이미 질 것이 정해진, 실패가 정해진 존재들이죠. 아무리 승리가 코앞이어도 주인공들에게 패배하고 말아요.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겠죠. 여기에는 그런 악당들만 모였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나 그런 볼프강의 감상은 마치 환상이라는 듯, 이야기를 계속하는 글라시아의 목소리는 금방 평범하게 바뀌었다. 글라시아는 회담장의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그런 운명을 타고 태어났어요. 이야기 속이라면 말이에요. 하지만 이곳은 이야기 속이 아니죠. 정해진 운명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
회담장의 모두는 글라시아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글라시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 말대로, 그들은 이미 이야기 속에서 패배를 맛봤으니까. 몇 번이고, 몇 번이나. 기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그렇기에 더 이상 회담장에 모인 악당들은 글라시아의 말을 비웃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모두의 침묵 사이에서, 드래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글라시아에게 집중됐다. 드래곤의 질문은 바로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으니까.
패배하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라면, 그것이 이야기의 순리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드래곤은 글라시아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일으켰다고 해도, 이 라이브러리 월드를 지배한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갈 몸이 아닌가? 이 라이브러리 월드는 그때까지 머무르는 장소고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드래곤은 문뜩 떠올린 생각에 말을 멈췄다. 볼프강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드래곤이 놀랄 수 있다는 것과, 놀라면 저런 표정이 된다는 것에 놀랐다. 지금까지 회담장의 가장 안쪽에서 가만히 둥지를 튼 듯 앉아있던 드래곤의 거대한 거체가 움직였다. 드래곤은 기다란 목을 늘려, 커다란 머리를 글라시아의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가며 물었다.
“설마 그대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가?”
“저는 운명이 싫어요. 그러니 그 운명을 바꾸고 말 거랍니다.”
드래곤의 질문에 글라시아는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라이브러리 월드와 모든 이야기를 지배할 거라고요.”
자신감 넘치는, 한치의 의심도 없는 듯한 목소리. 드래곤은 그런 목소리로 하는 글라시아의 대답에 뭔가 더 말하려던 입을 닫았다. 대신 입을 연 것은 괴물들의 대장이었다. 수많은 눈을 차례대로 깜빡이며 괴물은 물었다.
“그렇지만… 현자회의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리고 이야기로 돌아가려는 다른 이들은?”
현자회의. 지금까지, 그리고 이변으로 수많은 등장인물이 살게 된 새로운 라이브러리 월드를 관리한다고 알려진 조직. 그 구성원과 정확한 정체는 밝혀진 바 없이 소문에 불과하지만, 라이브러리 월드의 존재와 진실을 알고 있던 이야기 속 등장인물, ‘현자’들이 모인 조직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변이 일어난 라이브러리 월드를 관리하고, 문제의 해결법을 찾고 있었다. 머무는 이가 없어 좁았던 라이브러리 월드의 공간을 늘리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살아갈 방법을 찾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하는 것도 그들이었다.
동시에 회담장에 모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악당들에게도 현자회의는 두려운 존재였다. 악당이라는 사실 자체에 그들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야기 속 해결사나 영웅들을 부려 악당들이 행동에 나서려 하면 막아서는 것도 그들, 현자회의였다. 괴물은 물론 다른 이들도 그런 현자회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글라시아는 현자회의의 이름이 나옴에도 주눅 드는 기색 하나 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씀드린 거예요. 제가 이 세상을 지배할 거라고. 그리고 그래서 이 회담을 연 거랍니다. 저와 함께 할 이들을 찾기 위해서요.”
글라시아는 회담장의 모두를 둘러보며 미소지었다.
“현자회의가 지키고 싶어하는 건 이 세계의, 이야기와 라이브러리 월드의 법칙이에요. 정해진 운명대로 우리는 어떻게 해도 패배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도록 만들어진 규칙이죠. 주인공들이 승리하고, 이겨내고, 성공하도록. 저는 그런 규칙을 증오해요. 그런 법칙을 지키려고 하는 현자회의도 마찬가지고요.”
“.......”
“말씀드렸듯이, 저는 라이브러리 월드의 법칙을 깨뜨릴 방법을 알아요. 현자회의를 제거할 방법도 알고 있죠. 하지만 저 혼자 해내는 건… 뭐, 쉽지 않다고 해두죠. 그래서 전 쓸만한 장기말이 필요해요. 날 돕고, 현자회의를 쓰러뜨리고, 이 세계의 법칙을 바꾸게 해줄.”
“이 회담을 연 건, 그런 목적이라는 건가?”
백작의 말에 글라시아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빠르시네요. 좋아요.”
“그래서 우리가 얻는 건 뭐지?”
괴물들의 대장은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라이브러리 월드가 이야기보다 살기 좋은 건 사실이야. 이런 몸이어도 사람들 눈을 피해다닐 필요가 없으니까. 뭐, 도심지는 나갈 수 없으니 하층에서 살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렇지만 당신 밑에서 장기말로 살고 싶지는 않아. 당신이 라이브러리 월드와 이야기를 지배하면, 우린 그 밑에서 무얼 얻지?”
그 말에 다른 참석자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씩 악당 조직의 대장이나 두목을 맡은 자들. 누군가의 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아니다. 글라시아는 지루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 생긴 것보다는 머리가 좋지만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니군요. 얻는 것뿐만 아니라 잃는 게 뭔지도 보여줬을 텐데요.”
자신의 이야기냐는 듯 개구리가 개굴거렸다. 괴물의 수많은 눈이 가늘어졌다.
“결국 협박이라는 건가? 하, 악당 대장이 될 만한 기질은 있군.”
이죽거리는 괴물의 말에, 글라시아는 오히려 밝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글라시아는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괴물은 위협이라도 하듯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협박이냐고요? 맞아요. 당신 말대로 저는 악당들의 대장이 되려고 하니까요. 나를 따라라, 따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딱 악당의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지만 나를 따르는 이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럼 뭘 줄 거지?”
글라시아는 괴물의 질문에 소리내어 웃었다.
“이미 말했잖아요?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여러분들에게 자유를 드리죠. 행동의 자유 뿐만이 아니라, 운명에서의 자유를. 모든 이야기가 모인 이 세상을. 더 이상 패배하도록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 어떠한 결말도 알 수 없는 이야기,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모인, 단 하나 뿐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의 여러분의 위치.”
궤변이다. 백작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글라시아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일 뿐, 글라시아를 따른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백작은 그렇게 지적할 수 없었다.
글라시아의 협박에 굴복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백작 역시 글라시아의 말에 동감했기 때문이었다.
악당이기 때문에 패배하도록 정해진 삶이 아니라,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삶. 그 자유의 의미를 백작은 알 수 있었다.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많은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진 ‘이야기’ 속의 존재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백작은 달랐다. 백작은 그보다 더 큰 존재가 되고 싶었다.
백작은 자애롭게까지 느껴지는 미소를 지은 글라시아를 바라봤다. 그 표정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자신의 승리도, 목적을 이룰 것이라는 것도, 그 어느 하나에도 일말의 의심을 품고 있지 않은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글라시아의 표정은 그녀만의 자만을 넘어 백작 역시도 의심을 품을 수 없게 했다는 점이었다.
글라시아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이 모든 이야기가 모인 하나 뿐인 세상을 지배할 겁니다. 저를 따른다면, 그 세상에서 여러분의 자유와 지위를 보장하죠. 여러분의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그것 역시 이루어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모든 이야기의 지배자가 될 테니까요. 자, 어떻게 하실 거죠, 여러분?”
회담장에는 무거운 침묵이 자리했다.
글라시아는 회담장의 모두를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돌아봤다. 하지만 앞서서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글라시아의 협박은 두렵다. 그렇지만 굴복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동시에 글라시아가 약속하는 세계는, 단순히 모두가 이 회담에 처음 참석할 때 생각했던 ‘누가 대장이냐’ 를 정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는.”
그때,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글라시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드래곤은 입을 열었다.
“우리 드래곤들의 모임, 드래곤 뱅크는.”
회담장의 모두는 그 다음 말을 긴장하며 기다렸다. 글라시아와 드래곤은 서로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한 번의 호흡 뒤에, 드래곤은 말을 마쳤다.
“…글라시아를 지배자로 인정한다.”
예상치 못한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잊고 놀랐다. 글라시아 역시 하, 하는 짧은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네요. 여러분들이 가장 늦게 결정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우리는 멍청이들이 아니다.”
드래곤은 코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글라시아, 그대의 힘은 잘 알고 있지. 거기에 그대의 야망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라이브러리 월드에 와서 모아둔 재산으로 밝은 세계에서 살기로 했지. 그렇지만 우리의 본성까지 숨길 수는 없어.”
드래곤, 즉 용이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원래 서양의 동화에서 이야기되는 용들은 재물을 좋아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다. 라이브러리 월드에 오며 그런 용들은 모아둔 재산을 바탕으로 은행을 열었고, ‘드래곤 뱅크’라는 이름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었다. 강대한 힘에 강대한 재력, 그리고 이제는 강대한 사회적 지위까지. 악당들이 모인 회담에서 드래곤이 대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그런 드래곤이 천천히 글라시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대는 강하고,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 거기에 우리에게 운명까지도 지배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우리가 굴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하지만 드래곤들은 순순히 라이브러리 월드에 매몰될 생각은 없었다. 본디 드래곤은 두려움의 대상이며 지배자인 법. 모아둔 보물으로 은행업 따위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필요하지만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드래곤들은 다시금 원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누렸던 지위를 되찾기를 원했다.
“고맙군요.”
글라시아는 마치 신하의 인사를 받는 왕처럼 가볍게 묵례해 드래곤들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세 명의 마녀들이었다. 마녀들은 깔깔거리며 좋아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며 인사를 올렸다. 동작 자체는 품위가 있었지만, 마녀라는 점과 키득거리는 세 소녀들이라는 점에서 귀족의 인사보다는 마치 장난꾸러기들의 인사와도 같았다.
“저희 그믐달 마녀회는 물론, 당신에게 복종할 거랍니다.”
“그믐달 마녀회를 만드신 것도 당신이니까요.”
“이제 놀이도 끝인 거죠? 재밌었어요, 재밌었어요.”
“이름 높은 그믐달 마녀회도 어차피 당신의 부하들이었던 건가.”
백작은 힘이 빠진 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믐달 마녀회. 라이브러리 월드에 온 이후, 동화에 등장하는 ‘나쁜 마녀들’이 모여 만든 집단. 이야기마다 다른 마법이나 주문, 저주 등등을 함께 교류하며 나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집단이었다. 마녀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것에 흡혈귀로 명망 높은 백작 역시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정체를 알고 나니 맥이 풀릴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모두 계획된 거였군.”
지친 듯 말하는 백작의 모습은, 처음으로 그 외모와 맞는 노인으로 보였다. 전성기를 지나 힘이 빠진, 지난 세월의 인물. 글라시아는 그런 백작의 기운 없는 눈빛과는 반대로 젊은 패기, 혈기가 느껴지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백작을 마주봤다.
“그렇게 기분 나빠하진 말아주세요. 저는 흔해빠진 악당들처럼 일이 끝나기도 전에 계획을 늘어놓는 취미는 없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당신이 흡혈귀의 수장이라는 것과, 명망 있는 분이라는 것은 잊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인정하지. 내가 흡혈귀의 수장인 것처럼 글라시아, 그대는 악당의 수장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 혈족은 그대에게 복종하겠네.”
백작의 굴복을 시작으로,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괴물들의 대장, 간사한 동물들의 수장, 강인한 짐승, 이야기 속의 악당, 등등. 글라시아는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로, 왕처럼 당당한 자세로 그들의 인사를 가볍게 받아들였다.
이렇게 될 것은 볼프강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악당들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알고 있었다고 해도 볼프강에게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때,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글라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볼프강.”
평온한, 어쩌면 자신의 측근에 대한 애정까지 느껴지는 달콤한 목소리. 그렇지만 볼프강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가볍게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글라시아는 돌아보지 않고 등 뒤에 서있는 볼프강에게 말했다.
“아직 네 대답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 만월의 늑대떼 역시 앞으로도 내게 충성할 거라고 믿어도 되겠지?”
많은 이야기들에는 ‘나쁜 늑대’ 들이 등장한다. 그런 늑대들의 모임이자 볼프강이 수장으로 있는 조직이 바로 만월의 늑대떼였다. 하지만 그건 글라시아가 이야기의 늑대들을 모아 볼프강에게 책임자를 맡긴 것, 그렇기에 볼프강은 자신의 이름이 거명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수장은 너니까 말이지.”
글라시아는 마치 볼프강의 마음을 읽은 듯 말하며, 힐끔 등 뒤의 볼프강을 바라봤다.
볼프강은 순간 갈등했다. 찰나에 불과한 갈등이었다. 어쩌면 동물다운 야성의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맹수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단 세 가지의 반응만을 보인다. 하나, 굴복한다. 하나, 도망친다.
마지막 하나는, 단 한 번 뿐인 도박에 나선다.
자신이 글라시아를 막는다면, 이 순간 밖에 없다. 볼프강은 그런 충동을 느꼈다. 지금, 자신의 커다란 발톱과 이빨로 글라시아를 노린다면. 한 걸음조차 떨어지지 않은, 등을 무방비하게 노출하고 있는 글라시아를 노린다면 놓치지 않을 것이다. 글라시아가 어떤 마법을 쓰기도 전에, 매개체인 거울을 꺼내기도 전에 글라시아를 쓰러트릴 수 있다.
그렇지만.
“물론입니다.”
볼프강은 그렇게 대답하며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볼프강은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글라시아는 무슨 의미인지 훗, 하고는 가볍게 웃었다.
“그럼 결정됐군.”
드래곤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회담의 결과, 여기에 모인 전원은 글라시아, 그대를 악당들의 왕, 우리들의 왕, 마녀들의 왕이자 마녀인 왕… ‘위치 퀸’이라는 칭호를 인정하기로 했다.”
글라시아, 아니 위치 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손을 가볍게 숙인 머리 앞에서 움직이며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흑발의 머리 위에 챙이 커다란 모자가 나타났다. 칠흑과 같이 검고,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된 모자.
그것이 바로 그녀의 왕관이자 위치 퀸의 왕관이었으니까.
“고맙구나, 다들.”
자리에서 일어난 위치 퀸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 같았지만, 말투는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점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움브라’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모두는 그 한 마디에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모두는 위치 퀸의 목소리에 어째서 힘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이렇게 되기로 모든 것은 정해져 있던 것이었다. 마치 운명처럼.
“위치 퀸이여.”
몸을 돌려 회담장을 나가려는 위치 퀸의 등에, 드래곤의 목소리가 닿았다. 위치 퀸은 몸은 돌리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돌려 듣고 있다는 걸 나타냈다. 드래곤이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당장은 무엇을 할 필요 없단다.”
위치 퀸은 웃었다. 챙에 가려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드래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위치 퀸은 미소를 띈 입으로 말했다.
“우선은 현자회의가 대회를 열기를 기다릴 생각이란다. 그때까지는 마음대로 행동하렴.”
“대회… 라고요?”
“그래.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해소할 대회, 운명조차 이겨낼 가장 강한 자를 뽑을 대회. 그리고… 내가 기다려온 대회를 말이지.”
그 말을 끝으로, 위치 퀸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깨달았다. 이 자리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던 것처럼, 자신들의 적의 행동조차 위치 퀸이 결정한 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모두가 라이브러리 월드에 모이게 된 이변조차, 그 대회를 위한 준비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끼이익. 위치 퀸이 회담장을 나서자, 커다란 문이 닫혔다. 위치 퀸은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문 같은 것은 없었다. 마법으로 만든 문이 사라진 공간은 이제 기나긴 통로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진짜 시작이란다.”
위치 퀸이 말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위치 퀸의 걸음소리만이 이어졌다.
“모두 네가 알려준 대로였지, 거울 속의 악마여.”
그 말에, 위치 퀸의 옆에 커다란 거울이 생겨났다. 위치 퀸은 거울을 힐끔 보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지지 않겠어. 어디 열심히 발버둥 쳐보렴, 나의 동생과 일곱 난쟁이여. 최후에 웃는 것은 바로 내가 될 테니까.”
위치 퀸은 웃었다. 소리 높은 웃음소리가 아무도 없는 통로를 가득 메웠다.
마법의 거울은 마치 그런 위치 퀸을 바라보듯, 소리 없이 주인의 곁에 떠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