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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편] 배달부가 유리구두를 신을 때까지

또각, 또각, 하고 구두 소리가 울렸다.
드레스를 입은 채 왕궁의 기다란 계단을 오르며 신디는 생각했다. 지난번에는 있는 힘껏 뛰어 내려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여길 다시 오게 되다니.
그때는 왕궁에 오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시간에 쫓기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고,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여유 있게 볼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신디는 긴 계단을 올라가며 거대한 왕궁의 모습을 둘러볼 수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 웅장한 기둥이 받치고 있는 거대한 본궁, 그리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지금 걷고 있는 기나긴 계단. 본궁의 벽에는 화려한 장식이 달린 유리창이 셀 수도 없이 달려있고, 먼지 하나 없게 깨끗한 유리창은 계단과 왕궁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비추고 있었다. 시원한 물을 하늘 높이 내뿜는 분수, 단정한 모습으로 열을 이뤄 나열된 나무들과 피어난 꽃들.
그리고 군인들.
신디는 곁눈질로 계단 양옆에 자리한 군인들을 바라봤지만,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기다란 창을 든 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군인들의 대열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성문에서 계단을 지나 왕궁까지 이어졌다.
신디는 관심을 끌어보려고 손을 흔들어줬지만, 군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신디는 흥,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성을 지키려고 세워둔 게 아니야. 날 감시하려고, 위협하려고 세워둔 거지.
자신의 옷을 내려보며 신디는 그렇게 생각했다. 화려한 왕궁의 모습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순백의 드레스. 신디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집안일과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적절한 편하지만 허름한 일상복과는 전혀 다른 옷이었다. 치렁치렁하게 장식된데다 신디가 평소에 좋아하는 ‘입기 편한’ 옷이 아니라 ‘보기 좋은’ 옷이었기에 신디는 움직이기 불편한 옷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전에 입었던, 착한 마법사님이 만들어줬던 드레스는 예쁠 뿐만 아니라 움직이기도 편했었는데.
그때는 다시 이런 옷을 입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신디는 기나긴 계단을 다 올라왔다. 뭐하러 저렇게 크게 만들었나 싶은, 하늘에 닿을 것 같은 정문 앞에는 병사들과 잘 차려 입은 정중한 자세의 노인이 서 있었다. 신디는 지난번에 성에 왔을 때, 노인이 집사라고 들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자, 말한 대로 여기 왔어요. 이제 엄마와 언니들을 만나게 해줘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디 님.”
집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모여있던 병사들은 척척척, 하고 갑옷 소리를 내며 움직여 마치 신디를 보호하듯, 가둬두듯 대열을 이뤘다. 신디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첫발을 내디뎠다. 신디의 신발이 왕궁 안의 대리석 바닥을 또각댈 때마다, 절그럭거리는 금속음의 대열이 박자를 맞췄다.
왕궁 안도 밖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벽면들은 아마도 이름 높은 미술가들이 그렸을 그림들과 초상화들이 장식되어 있고, 그 사이 사이의 기둥들은 멋진 장식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왕궁 밖에서도 눈에 들어왔던 거대한 창문들 역시 우아한 창틀 사이에 자리 잡았고, 너무나 깨끗하게 닦여 있어서 안에서는 마치 유리가 없는 것만 같았다. 어느 면에서도 신디가 지금까지 가족들과 살아왔던 작은 집과는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오늘부터 당신의 집이랍니다, 신디 님.”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왕궁의 복도를 걷는 신디에게, 앞장서서 걸어가던 집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신디는 바깥도 안도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왕궁에 살 게 된다고 들었어도,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이 더더욱 침울해졌다.
“다 왔습니다.”
생각에 잠긴 채 얼마나 걸어왔을까. 집사의 말에 신디는 고개를 들었다. 두 명의 시종이 문을 열자, 거대한 홀의 모습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신디의 기억에도 있는 장소였다. 이 왕궁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있는, 무도회 때 찾아왔던 장소.
그때는 즐거웠었다. 무도회장에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고, 어렵게 구한 드레스를 입고 먼저 찾아와 있던 새엄마와 새언니들은 갑자기 등장한 신디를 보며 기뻐했다. 왕자님의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열리는 무도회에 드레스가 모자라 신디만이 올 수 없었으니까. 새엄마와 새언니들은 자신들이 집에 머물겠다고 양보했지만, 신디는 새엄마와 새언니들이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핑계를 댔다.
새엄마와 새언니들은 그랬던 신디가 어떻게 무도회에 찾아올 수 있는지 물었고, 신디는 솔직하게 우연히 만난 ‘착한 마법사’ 님이 마법으로 드레스와 구두를 만들어준 것을 털어놓았다. 모두는 기뻐하며 무도회의 목적인 맛있는 음식들을 실컷 즐겼다.
“드디어 왔군! 나의 사랑스러운 왕비!”
바로 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는.
들려온 목소리에 신디는 즐거운 기억에서 깨어나 날카로운 눈으로 홀 안쪽을 노려보았다. 기억에서 깨어나자 홀 안의 모습도 즐거웠던 무도회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춤을 추던 사람들의 무리는 도열한 군인들의 무리로, 들려오던 즐거운 음악 소리는 폭풍 전의 고요로. 변하지 않는 것은 홀 안쪽에 서 있는 왕자의 모습뿐이었다.
“누가 왕비라는 거예요! 엄마랑 언니들은 어디 있죠?”
신디는 상대가 왕자라는 것도 있고 날카롭게 외쳤다. 그런 신디의 반응에 왕자는 웃으며 턱을 움직여 신호했다. 홀 안쪽의 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몸이 밧줄로 묶인 신디의 새언니와 새언니들을 데리고 나왔다.
“신디!”
“엄마! 언니들!”
신디와 가족들은 서로를 부르며 다가가려 했지만, 곧바로 병사들은 긴 창을 내리며 그들을 멈추게 했다. 신디는 분노로 이를 악물며 왕자를 노려봤다.
“당신이 시킨 대로 이렇게 왔잖아요! 엄마랑 언니들을 풀어주세요!”
“아아, 물론이지. 이제 곧 장모님과 처형이 되실 분들이니까.”
왕자는 신디의 날이 선 눈빛에도 그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식을 올려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왕자의 명령을 거역한 대역죄인의 가족들이니까 말이야.”
“비겁하게…!”
“하지만 그대도 그럴 생각으로 온 게 아닌가? 그렇게 내가 선물한 드레스도 입고 왔지 않나.”
“당신이 입고 오라고 시킨 거잖아요! 엄마와 언니들을 납치하고선!”
그랬다. 신디가 왕궁으로 찾아온 것도, 불편한 드레스를 입은 것도, 모두 왕자와의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건 신디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신붓감을 찾으려던 무도회의 밤, 왕자는 첫눈에 신디에게 반해버렸다. 하지만 착한 마법사에게서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니 그 전에 돌아오라고 들은 것을 기억해낸 신디는, 붙잡으려는 왕자를 뿌리치고 전속력으로 왕궁을 빠져나갔다. 마법이 풀려 원래 입던 옷으로 돌아온 것을 본 신디는 안도했지만, 자신의 발에는 여전히 마법의 구두가 남아있었고, 그것이 한쪽뿐이라는 것에는 묘한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날, 불안은 현실이 됐다. 신디를 놓친 왕자는, 첫눈에 반한 마음을 달랠 수 없던 것인지, 아니면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뿌리치고 도망친 것이 마음에 남았는지, 무도회에 남은 이들을 상대로 신디의 정체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마법의 드레스로 정체를 숨긴 신디를 다른 이들은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 왕자는 남은 흔적인 신디의 구두를 통해 그 주인을 찾으려 했다.
군인들은 성안에 사는 모든 여성들에게 구두를 신겨가며 신디를 찾으려고 했고, 가족들의 도움으로 열심히 피해 다니던 신디도 결국에는 구두를 신게 되어, 주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말았다. 하지만 신디는 처음 보는 왕자와 결혼할 생각은 없었기에 거절했고, 이에 왕자는 아예 군대를 보내 신디의 새엄마와 언니들을 납치하고, 신디에게는 결혼식을 위해 드레스를 입고 왕궁으로 오라고 한 것이었다.
“왜 그렇게 나와 결혼하는 것을 거부하는 거지? 그대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텐데.”
신디가 불만을 토하는 모습에 왕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스스로 말하자니 부끄럽지만, 내 외모가 그렇게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거기에 내 신부가 된다면 이 거대하고 화려한 왕궁은 그대의 집이며, 내가 왕이 된다면 그대는 왕비가 되니, 이 나라가 그대의 것이 되기도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나 거부하는 이유라도 있는가?”
왕자는 마치 자랑하듯 양팔을 벌려 거대한 홀을 가리켰다.
신디 역시 왕자의 말이 틀렸다고 지적할 수는 없었다. 왕자는 인품은 모르겠지만 외모는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왕자의 말대로 아내가 된다면, 이 거대한 왕궁이 신디의 집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는 길에 본 거대하고 화려한 왕궁의 모습을 신디는 떠올렸다. 이런 집에서 산다면, 왕비가 된다면, 매일같이 집안일을 하거나 생계를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살아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디는 그 어떤 것보다 밧줄에 묶인 채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새엄마와 새언니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쥐가 나오고 빗물이 새기도 하는 허름한 집이었지만, 친절한 새엄마와 착한 새언니들이 있어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각자 일을 마친 가족들이 모여 함께 집안일을 하고 비록 부족해도 함께 식사를 하며 화목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셔서 늘 외로웠던 신디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런 좋은 집에서 살면, 그 집으로,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갈 일은 없겠지. 하지만 왕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아무래도 그대의 결정을 도와줘야겠군.”
고민하는 신디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왕자는 그렇게 말하며 탁,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 신호에 신디의 가족들 옆에 있던 병사들이 철컹, 하고 커다란 창을 움직였다.
“그러지 마요!”
신디는 비명처럼 손을 내밀며 외쳤다. 왕자는 그 반응이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빨리 결정하게. 이 유리구두를 신기만 하면 되니까.”
왕자의 앞에는 천이 올려진 채 작은 받침대에 올려진 뭔가가 있었다. 신디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윽고 병사들과 함께 홀을 가로질러 왕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신디가 다가오자 기다리던 시종들이 받침대에서 천을 벗겼다. 천을 벗기자, 그야말로 마법으로 만들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구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착한 마법사가 만들어준, 신디가 왕성을 떠날 때 떨어트리고 만 유리구두 한 짝이었다.
“그대가 그 구두를 신기만 하면, 이 결혼은 성립되지. 그 구두에 발이 맞는 이를 내 아내로 삼겠다고 했고, 그대가 그 구두의 주인이니까. 자, 이제 그만 포기하도록.”
거만한 웃음을 지으며 왕자는 말했다. 모든 것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아간다는 듯한, 이겼다는 듯만 만족과 생각대로 움직이는 신디를 조롱하는 듯한 미소였다.
신디는 가족들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부족해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희생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망설임 끝에, 신디는 조심스럽게 한쪽 구두를 벗고, 유리구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신디!”
그때 들려온 외침에, 신디는 고개를 돌렸다. 제지하는 병사들에게 저항하며, 신디의 새엄마와 새언니들은 외쳤다.
“우린 신경 쓰지 마, 신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신디!”
진심으로 외치는 말투와 눈빛. 자신들의 안전보다도, 가족인 신디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신디는 그 말에 다시금 각오를 굳혔다. 이런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왕자는 뭘 하려 했나 했더니, 하는 정도의 생각인지 피식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런 왕자의 웃음을 보고 신디도 마주 웃었다.
그래,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건ㅡ
“...뭘 어떻게 했다고?”
“찍었어. 유리구두로. 이렇게.”
홍차를 흘리는 것도 모르고 물어보는 앨리스의 질문에, 신디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손에 쥔 허공의 구두로 망치질을 하듯 팔을 움직이며.
“아니, 하지만 화가 나잖아. 사람 약점을 잡아놓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게 말이야. 난 결혼할 생각도 없고 아직 어린데, 가족들을 인질로 삼고는 갑자기 대뜸 결혼하자니 말이 돼? 난 그런 타입 영 싫어서.”
신디는 별것 아니라는 듯, 멋쩍다는 듯 웃었다.
앨리스의 연구실에서 신디의 가족들에게 남길 영상 편지를 찍고, 그대로 신디는 차 한잔하고 가는 걸 권한 앨리스와 티타임을 갖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영상 편지도 쓸 정도로 좋아하는 신디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고, 어쩌다 가족들과 떨어져 이곳, 이야기가 모이는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는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세계. 수많은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그리고 앨리스의 연구실이 있는 중심 도시 시놉 시티에서 살아가고 있다. 앨리스도 신디도 각자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렇게 왕자의 머리를 찍어버리고 기분 좋은 건 좋았는데, 갑자기 세상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정신을 차리니 여기지 뭐야? 깜짝 놀랐어.”
신디는 홍차를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앨리스는 신디의 테이블매너에 대해서는 사실상 반쯤 포기하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디, 모든 이야기들은 결말을 맞이한 뒤에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된다. 하지만 가끔, 신디의 경우처럼 이야기가 변할 경우에는 갑작스럽게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되는 일도 발생하고는 했다.
“그럼, 정말 신디 너는 여기에 혼자 온 거구나.”
앨리스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신디는 웃었지만, 앨리스의 눈에는 평소의 환한 미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쓸쓸한 미소로 보였다.
“응… 뭐, 그런 셈이지.”
최근,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이변이 발생하고 있었다.
신디의 경우처럼 이야기가 평소의 흐름과 달라져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되는 일들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중단되고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되는 일, 일부의 등장인물만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되는 일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더욱이 어찌 된 일인지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다시 이야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이 일련의 사건들은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이라고 불리며 모두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었다.
신디는 그런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의 영향을 받았다. 신디의 이야기에서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것은 신디 하나 뿐. 왕자나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새엄마와 새언니들도 없이, 신디는 전혀 모르는 세상에 홀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완전 나 혼자는 아니야.”
조금은 쓸쓸한 미소를 짓던 신디는, 하지만 이윽고 생각났다는 듯 미소를 밝게 하며 말했다.
“이쪽에 와서도 착한 마법사님을 만났거든!”
“착한 마법사님이라면, 신디 너한테 드레스와 유리구두를 만들어줬다는?”
앨리스의 질문에 신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쪽에 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그런 날 또 도와주셨어.”
신디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가족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착한 마법사님이 구해주셨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시더라고. 당장 이야기로 돌아가는 건 이변 때문에 무리지만, 모두들 건강히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앨리스는 활기차게 신디의 말을 듣고 얼굴을 굳혔지만, 찻 잔을 들어올려 그 얼굴을 교묘하게 가릴 수 있었다. 신디는 앨리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분명 돌아갈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면서 마법으로 유리구두도 이렇게 신기 편한 모습으로 바꿔주셨어. 덕분에 이렇게나 빨리 달릴 수 있고 말이야.”
신디는 신고 있는 특이한 모양의 신발을 앨리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여러 이야기의 기술력이 모여 발전한 시놉 시티에는 수많은 운송수단도 있지만, 신디는 그 모든 수단을 사용한 것보다 더 빨리 물건을 옮겨주는 택배기사로 이미 유명했다. 앨리스 역시, 그렇게 자신에게 물건을 배달해주던 신디와 알게 되어 친구가 되었다. 그 속도의 비결이 마법의 신발, ‘유리구두’라는 것은 처음 들었지만.
“아, 그러고 보니 슬슬 시간이 이렇게 됐네. 고마워, 앨리스!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어.
언젠가 이 영상 편지를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날까지, 나 힘낼게!”
신디는 생각났다는 듯 시계를 보고는 웃으며 앨리스에게 인사를 남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날 수 없는 신디의 가족들에게 언젠가 전달하도록 영상편지를 남기기로 한 것도, 배송 중에 잠깐 시간을 내서 한 것이기에 앨리스는 그저 웃으며 신디를 배웅했다.
“유리구두… 착하고 친절한 새엄마와 새언니들…”
탁, 하고 현관문을 닫은 후.
앨리스는 조용히, 듣는 이 없이 홀로 중얼거렸다.
“유리구두… 착하고 친절한 새엄마와 새언니들…”
생각에 잠긴 채로 계속해서 그 내용을 중얼거리며, 앨리스는 현관에서 돌아와 신디와 마시다 내버려 둔 티파티의 흔적도 내버려 둔 채, 연구실로 향해 자신의 연구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생각에 잠겨 중얼거리면서도, 앨리스의 손가락은 보지도 않은 채 연구용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역시.”
안경 너머로 보이는 모니터의 내용에, 앨리스는 중얼거렸다.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는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세계. 수많은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그리고 앨리스의 연구실이 있는 중심 도시 시놉 시티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라이브러리 월드이기에, 그리고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으로 갑자기 이야기가 늘어나고, 또 언제 다시 이야기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사태가 이어지자, 라이브러리 월드의 사람들은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는 이야기들을 모아두기 위한 ‘도서관’을 만들었다. 자신이 왔던 이야기, 이야기 속에서 들었던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도 다른 이야기도 모두 기록해두기 위한 도서관이었다.
언젠가 다시 이야기로 돌아갈 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또는 처음 보는 누군가가 라이브러리 월드에 홀로 왔어도 어느 이야기에서 왔는지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기록된 안에는 신디의 이야기도 있었다. 신디가 생각하는 것보다 유명한 신디의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서, 다른 이야기들이 시작되게 한 원동력으로서 라이브러리 월드 도서관에도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달라.”
앨리스가 읽는, 라이브러리 월드 도서관에 기록된 신디의 이야기는 신디가 방금 들려준 이야기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신디처럼 기록된 것과 실제 경험한 이야기가 다른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런 변화가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불러온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점을 알고 있음에도, 앨리스는 어딘지 모를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신디의 가족들에 대한 점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그, ‘유리구두’.
바니바니에 설치한, ‘비정상적 마력 감지 장치’가 신호를 냈던, ‘착한 마법사님’이 줬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마법의 구두.
신디에게는 알 수 없는 여러 요소들이 있었다. 그리고 앨리스는,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손꼽히는 천재 과학자이자, ‘모르는 것을 알고 싶다’는 순수한 학구열에 불타는 소녀이기도 했다.
“역시… 연구해보고 싶어!”
앨리스는 눈을 반짝거리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