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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O편] 쇼의 막을 올리기 전에

The translated version of the Smash Novels will be here soon. Thank you.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상담을 원하신 분들이 여러분이시군요.”
찾아온 호갱… 아니 고객님들을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습니다. 뭐, 저쪽에서도 미소로 보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이런 곳에 오는 게 처음이기 때문인지,
고객님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자리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곳에 와도 되는지 걱정된다는 분도, 이런 사무실에 오는 건 처음이라는 듯 호기심이 가득한 분도 있군요.
어느 쪽이든 순진해 보이는 게, 오늘 장사는 제법 괜찮은 예감이 드는군요.
아, 이런. 소개가 늦었군요. 이런 실수를.
처음 뵙는군요. 제 이름은 잭’O. 보다시피 시놉 시티에서 변호사를 맡고 있는 몸이랍니다.
응? 소문은 들었다고요? 변호사 말고 다른 일을 하진 않냐고요?
이런 이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가 밝으신 분이군요. 네, 인정하죠. 변호사 말고도 다른 일도 하고 있죠. 다양한 부업을 갖는 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는
드문 일은 아니잖아요? 특히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으로 혼란한 이곳이라면 말이에요.
하지만 일단은 손님들을 맞도록 하죠. 좋은 돈벌이가 될 것 같으니까요.
“그럼, 어떤 일을 이 잭’O가 도와드리면 될까요?”
맞은편의 의자에 옹기종기 앉은 손님들을 향해, 저는 커피를 한 잔씩 내려드리며 말했습니다.
옹기종기 앉았다고 한 말은 빈말이 아니에요. 오늘 찾아오신 손님들은 요정분들이니까요. 크기는, 어디 보자, 성인 인간 남성이 손가락을 쭉 폈을 때,
그 손가락 끝에서 손바닥 끝까지의 거리쯤 될까요? 마치 작은 인형들 같군요. 뭐, 시놉 시티에서는 드문 일도 아니죠.
손님들의 크기에 맞는 잔을 찾아, 커피를 따라드립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존재들이 사는 시놉 시티인 만큼,
여러 손님을 맞으려면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드시죠. 아라비안나이트에도 나오는 임금님께 헌상하는 마술사 도공이 만든 커피잔과 그 임금님이 마시던 고급 커피입니다.“
제 말에 요정들이 대단하다는 듯 환호하며, 잔과 저를 번갈아 바라봅니다. 물론 뻥이죠. 잔은 인형용 소품점에서 샀고, 커피는 인스턴트랍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요정들은 대부분 어린아이와 같아서 이런 말을 그저 믿기만 할 뿐인데.
그리고 예상대로, 어린아이 같은 입맛이라 그런지 호기심 가득해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지만, 이내 울상을 짓거나, 꾹 참고 꿀꺽 삼켜 어른스러우려 하거나,
참지 못하고 뱉어내곤 했습니다. 마지막 녀석은 혼내주고 싶네요. 하지만 그럴 순 없으니 얌전히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이미 사정은 약속을 잡으면서 들었습니다. 듣기로는 이 요정들은, 영세하지만 제법 괜찮은 구둣가게를 운영하는 요정들이라고 했지요.
‘구두장이 요정들’이라는 회사 이름은 저도 들어본 적 있으니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군요. 어느 솜씨는 좋지만 가난한 구두장이가 잠든 사이, 작은 요정들이 구두장이 대신 구두를 만들어준 덕분에 큰 부자가 되었다고요.
구두장이가 보답으로 좋은 옷을 지어주자, 요정들은 더는 구두를 만들 필요 없다면서 사라졌지만 나아진 형편 덕분에 구두장이는 계속해서 품질 좋은 구두를 만들었다고 하죠.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에요. 저 같으면 계속해서 부려먹었을 텐데 말이죠.
아무튼, 이 요정들이 바로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뒤로는 모두가 힘을 모아 구두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죠.
그렇지만, 솔직히 좀 수상하네요. 이야기대로라면 분명 좋은 옷을 입은 부자들이어야 할 텐데, 정작 제 앞에 보이는 요정들은 허름한 차림새거든요.
하지만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은 실례. 저는 참을성 있게 사정을 이야기하길 기다렸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요정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실은 우리 공방이 위기에 처했어요. 악당들이 공방을 내놓으라고 했거든요.”
요정 손님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으로 이곳,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요정들은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게 되었어도,
요정의 나라 같은 곳은 없으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요정들은 좋은 옷도 입게 되었으니 일하기 싫었고, 회의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공방의
‘사장’으로서 하루는 일하지 않고 거들먹거리며 지내도 되는 조건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구두 공방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죠.
라이브러리 월드, 그중에서도 중심에 있는 이곳 시놉 시티에는 수많은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살고 있고, 당연히 구두를 찾는 이들도 많았죠.
솜씨 좋은 요정들은 누가 어떤 구두를 찾더라도 완벽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고, 시놉 시티 안에서 유명한 가게가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일하는 요정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요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어요. 사장 외에도 거들먹거리며 노는 요정들이 생겨난 것이었죠.
다른 요정들이 이유를 물어보자, 그 요정은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큰 회사에는 사장님 말고도 높으신 분들이 있다고. 이사라든가, 부장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나라에도 임금님이 있지만, 그 밑에 대신들도 있잖아? 사장은 못 하지만 나도 좋은 옷을 입었으니 다른 역할을 맡을 자격이 있어!”
요정들 생각에, 확실히 시놉 시티에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자신들만 일하기는 싫었던 거죠.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눠서,
사장을 맡는 것처럼 이사도 돌아가며 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공방에는 하루에 두 명의 요정이 거들먹거리며 일하지 않게 된 것이었죠.
그러자 다음 날에는 부장님이 생겼습니다. 다음 날에는 차장님이 생겼죠. 다음 날에는 제2 부장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 모든 역할도 사장이나 이사처럼 돌아가며 하기로 했지만, 이제 일하는 요정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죠. 모두 하나씩은 거들먹거리며
일하지 않을 자격이 있는 자리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공방은 어려워지고, 결국에는 저렴한 값에 공방을 팔 수밖에 없었다는 모양입니다.
“흠, 그거 안 된 일이군요.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거 같은데요?”
저 잭’O, 능력 있는 신뢰받는 변호사로서 찾아주신 고객분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드리려 합니다만, 제게도 한계란 있는 법이죠.
뭐 물론 적절한 보수가 보장된다면 그 한계라는 게 조금 조정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그러기도 어려운 것 같고요.
곤란하다는 의미로 한 제 말에 요정들은 다급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이었다고요!”
“호오?”
상황이 그 지경이 되자, 요정들도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에게 이사니, 부장이니 하는 것들을 알려준 것이
어떤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군요.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공방을 사러 온 사람이었고요.
“분명 우리 구두 공방을 사려고 속임수를 쓴 거예요!”
“우리를 속였어요!”
“변호사님이 어떻게 해주세요!”
억울한 마음의 표현인지, 아니면 슬슬 긴장도 풀렸는지 요정들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찬찬히 요정들을 달래주며 말했지요.
“알겠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확인해보도록 하죠.”
제 대답에 요정들은 일제히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진하기는. 저는 미리 준비해둔 서류를 꺼내며 말했습니다.
“자, 그럼 이 문서에 서명해주시죠. 이런 일에는 정식으로 작성한 서류가 필요한 법이거든요. 뭘, 내용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공방의 모든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일 뿐이니까요. 그러지 않으면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손님 여러분 모두 함께 가셔야 하는데, 역시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잖아요?”
예상대로, 요정 여러분들은 제가 일을 맡겠다는 것에 기뻐하며 앞다투어 서명했습니다. 모두가 사장을 맡고 있으니 아무나 한 명만 하면 된다고 할까 했지만,
증인이 많을수록 좋겠죠. 후후후, 이렇게 쉬운 상대는 정말이지 환영이라니까요. 어린애들이라 그런 걸까요?
그렇게 계약을 따내고, 이제 진정한 의미로 소중한 고객이 된 요정분들을 돌려보내고, 어지럽힌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흠, 뭐 마시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제대로 손도 안 댔군요. 안타까워라. 저는 대접하고 남은 커피들을 하수구에 버렸습니다.
아, 이 아까운 것을. 커피 한 모금 하고 싶은 마음이 오늘따라 절실하군요.
마시면 어떻냐고요? 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답니다. 저의 몸은 이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거든요. 뭐,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강철의 육체, 라고 한다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근육질의 거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군요. 전 그중에서 후자랍니다.
네, 제 몸은 문자 그대로 강철로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기계 몸이죠.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는 그리 드문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다른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등장인물들과는 다릅니다. 이 몸은 라이브러리 월드에 와서 새로 받은 몸이거든요.
어쩌면 호박 머리를 한 유령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원래는 그런 모습으로 유명했었죠. 뭐, 저로서는 원전인 순무 쪽이 더 익숙합니다만.
하지만 아아, 어떤 운명의 장난인지 저는 그러한 몸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 덕분에, 저는 제 몸을 잃은 부분에서 그만 이곳으로 소환되어 버리고 말았거든요. 그러니 호박 머리도 순무 랜턴도 가질 수가 없었죠.
많은 사람들이 제 원래의 외형… 정확히는 ‘가져야 할 모습’이라고 해야겠군요. 그런 모습은 알고 있지만, 제 이야기는 모르고 있죠. 잘못된 거래로 인해 지옥에도,
천국에도 갈 수 없게 된 채 영혼만 남아버린 제 이야기는 말이에요. 뭐,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대단한 것은 없는 이야기니까요.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으로 인해 수많은 혼란이 뒤따르자 현자 회의는 언제부터인가 ‘라이브러리 월드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이변이 해결된 뒤에도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이야기의 원형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서였죠.
라이브러리 월드로 온 이들은, 자신의 일생… 쉽게 말해 이야기죠, 그것을 라이브러리 월드 도서관에 등록하게 됩니다. 그걸 바탕으로 자신이 어떤 이야기의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도록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직 라이브러리 월드에 오지 않은 이들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에서도 전해지는 다른 이야기들도 기록하게 됩니다.
그걸 통해 저도 제 이야기 정도는 알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제가 이야기 속의 존재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요.
아무튼.
영혼만 남은 채 라이브러리 월드로 소환된 저는, 처음에는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하게 된 채, 시간을 떠돌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야 제가 있던 곳보다는 엄청나게 발전한 곳이었으니까요! 저는 제가 먼 미래로 날아왔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조금씩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죠. 여기는 이야기들이 모이는 신비한 세계이고, 저 역시 어떤 이야기의 등장인물이라는 걸 말이에요.
뭐, 그때는 영혼뿐인 등장인물이었지만. 그리고 그 사실이 참으로 애석했죠.
이런 놀라운 세계인데, 나는 그저 구경할 뿐인 유령이라니! 아아, 나에게 몸이 있었으면!
그리하여 저는 새로운 몸을 얻기로 했답니다. 뭐, 유령이니 남의 몸을 빼앗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제 신조에 반하거든요.
저는 공정하고 만족할만한 거래를 좋아한답니다.
음,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옛날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죠. 의뢰를 받았으니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니까요.
저는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빈 커피잔을 정리하고는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언제 봐도 시놉 시티의 모습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어느새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라이브러리 월드에 있었음에도, 신비함 만큼은 줄어들지 않는군요.
오랫동안 조용히 숨어 지냈기에 아는 사람은 얼마 없겠지만, 이래 봬도 저는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 초창기의 피해자랍니다.
그런 명칭이 붙기도 전의, 그런 일이 있다는 것조차 소문이 되기 전의 일이었지요.
그 무렵의 시놉 시티는, 이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가 있던 이야기보다는 발전했지만요. 하지만 시놉 시티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해갔습니다.
지금처럼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들이 생겨나고, 마법과도 같은 기술이 생긴 것은 모두 한 사람의 덕분이었죠. 그 사람이 바로 제게 몸을 만들어준 사람이기도 한답니다.
시놉 시티의 거리를 걸으면 신기한 것들을 얼마든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로에는 말이 끄는 마차부터 공중을 떠다니는 자동차까지 다양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높은 빌딩들 사이로 열기구는 물론이고 하늘을 나는 이야기 속 생명체들이나 우주선 같은 비행체들도 볼 수 있죠.
길가를 지나가는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인간도 있고, 말하고 두 발로 걷는 동물들도 있으며, 동물과 사람의 사이쯤 되는 수인들이나
그 외에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신비한 종족들이 있죠. 물론 개중에는 저 같은 강철의 몸을 지닌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들도 있습니다. 뭐, 숫자가 좀 적긴 하지만요.
트램 열차가 달리고, 온갖 종류의 ‘차’들과 등장인물들이 가득한 대로변은 평화롭고, 시놉 시티의 밝은 면을 보여주죠. 하지만 길을 따라 걷고,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조금씩 보이는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건물들은 낮아지고, 지저분해지고, 지나가는 이들도 줄어들죠. 뭐, 흔히 말하는 뒷골목이라는 겁니다.
이변 이후 늘어난 거주민을 감당하기 위해, 시놉 시티는 대대적인 증축공사에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수도 역할을 하는 것을 빼면 평범한 이야기 섬이었지만,
이제는 몇 층으로 이어진 라이브러리 월드 최대의 도시가 되었죠.
이곳, 중하층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지만 어느 도시든 마을이든 마찬가지로 번화가가 있으면 뒷골목이 있죠.
여기서도 지낼 수 없게 되면 더 아래층의 하층으로 밀려나게 되고요.
그리고 어느 뒷골목이 그렇듯, 뒤가 구린 이들이나 악당들도 이런 뒷골목으로 찾아오죠. 뭐, 진짜 거물들은 하층에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는 모양이지만요.
그 유명한 위치 퀸의 움브라라든가. 하지만 오늘의 상대는 그런 거물은 아닌 모양입니다.
네, 제가 그냥 거리만 걸어올 리는 없죠. 전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랍니다. 많이들 오해하지만,
성실함은 사기꾼에게도 중요한 덕목이거든요. 뭐라고요? 지금 저보고 사기꾼이라고 하셨나요? 제가 그랬다고요? 그럴 리가요! 사기 치지 마세요, 이 사기꾼!
아무튼, 거리를 걸으며 저는 역할에 충실하게 탐문 수사를 해왔답니다. 보아하니 그런 식으로 술수를 부려 제법 여러 사업체에 손을 댔던 모양이더군요.
구두 공방의 요정분들에게 했던 것처럼, 폭력은 쓰지 않고 어디까지나 계략을 세워서 말이에요.
이런 분들이 참 골치 아프단 말이죠.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으니까 말이에요.
엄밀히 말하면, 라이브러리 월드와 시놉 시티에는 ‘법’이라는 것은 없답니다. 정확히는 성문법이 없다는 뜻으로서,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입법과 사법을 다루는 공인된
권력 기구가 없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이런, 아무래도 요정분들처럼 어려운 말은 싫어하시는 모양이군요. 뭐, 간단하게 말하면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칙’만 있다는 뜻입니다.
현자회의도 있고, 범죄자를 잡으러 다니는 H.U.N.N.T도 있긴 하죠. 하지만 이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라이브러리 월드의 규칙을 무너트리거나,
폭력을 써서 다른 이를 괴롭히는 일이지 이런 교묘한 속임수나 사기, 계책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먹고살기 좋은 거지만…
변호사 일을 의미하는 거랍니다, 물론.
이번 상대는 그런, 현자 회의나 H.U.N.N.T가 나서기는 애매한 선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였죠. 하지만 그런 분들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전 싸움보다는 대화로 해결하는 쪽을 더 좋아하거든요. 폭력이라니, 이 얼마나 야만스러운 일인지!
“이봐, 요즘 우리에 대해서 캐묻고 다니는 깡통이 너냐?”
하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죠.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야 할 때도 있고 말이에요.
뒷골목에 들어서 얼마나 걸었을까, 뒤쪽에서 험상궂은 말소리가 들려왔죠.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볼 때,
몇 명이나 되는 이들이 제 뒤에 있는 거였어요. 뭐, 기다리던 바죠.
저는 침착하게 몸을 돌려 우아하게 인사했습니다. 신사는 언제든 몸가짐을 신경 써야 하죠.
“깡통이라니 실례군요. 저는 잭’O라고 합니다. 구두 공방 ‘구두장이 요정들’의 전권위임을 받은 변호사지요.
여러분과 가게 운영권에 있어서 갈등이 있다고 들어 조정을 위해 왔습니다.”
“엉? 뭐라는 거야?”
이런,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골랐나 보군요. 하긴, 이럴 때는 제일 아랫것이 오는 법이긴 하죠.
시놉 시티에서 기계 몸을 가진 등장인물은 적고 눈에 띄는 법이죠. 게다가 저는 이런 몸이지만 신사다운 외견도 중시하니 더더욱 눈에 띌 테고요.
그러니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정보를 모으다 보면 소문이 퍼지고 상대 조직도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지금 절 찾아오신 분들은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욱 다가올 뿐이었습니다.
조금 낡았지만 하나같이 양복을 입은 게, 아마 어디 범죄소설에 나오는 조직원들 아닌가 싶군요. 아니면 그런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맞춰 입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상관없는 일이겠죠. 협상하려면 아랫것이 아니라 높으신 분이랑 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저는 신사답게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여유롭게 돌리며 말했습니다.
“이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선생님들은 제가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지성을 소유하지 않으신 것 같사오니,
조금 더 높으신 분을 불러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일 높으신 분을 불러주신다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우릴 바보 취급하는 거냐?”
“아, 다행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시군요! 멋집니다! 자, 그러면 제가 한 말의 뜻도 마저 이해하실 수 있겠죠.
좀 더 높은 분을 부탁드립니다. 혹시 몰라 말씀드리면, 책임자 나오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험상궂은 목소리에 걸맞은 험상궂은 얼굴들이, 제 도발에 더더욱 험악해집니다. 아, 정말이지 전 싸움은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죠. 이건 거짓말이 아니랍니다.
하지만 다양한 일을 해오면서 여러 등장인물을 상대하다 보면 제가 원하는 결과를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게 되는 법이거든요. 싸움도 그 방법의 하나기도 하고요.
“너 이 자식, 정말 깡통으로 만들어줄 테다!”
이런 분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유도하기는 간단하죠. 조금만 도발해주면 반응해오고, 조금만 힘을 보여주면 높으신 분을 불러들이기 마련이거든요.
주먹을 불끈 쥐고 다가오는 분을 보며 저는 신사적인 몸짓으로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의 범주 내에서 자기보호를 했습니다.
뭐, 제 지팡이는 의견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요.
“으윽…”
신음을 흘리는 자와, 놀란 채 어쩔 줄 모르고 그저 서 있는 나머지들. 뭐 놀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저처럼 신사적이고 젠틀해 보이는 로봇이
이런 힘을 숨기고 있다는 건, 흔히 생각하기 힘든 일일 테니까요. 보통 저 같은 모습을 한 이들을 샌님이라고 부르는 법이죠.
이게 바로 멋진 거래의 장점이랍니다. 사실 전 싸움 같은 거 잘하지도 못하거든요. 그렇지만 이 강철의 몸은 아주 잘 알고 있죠.
게다가 이 몸은 라이브러리 월드의 발전을 불러온 바로 그 장본인, 닥터 앨리스의 작품이니까요. 전 앨리스 양이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합니다만, 아무튼.
네, 아까 이야기하다 말았죠. 제가 어떻게 이 몸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일단 다시 제가 영혼만 있던 시절로 돌아가 보도록 하죠. 그 무렵 저는 몸을 갖고 싶었지만, 몸이라는 게 어디서 쉽게 파는 물건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죠. 물건에 깃드는 것 정도야 가능하지만, 전 기왕이면 원래 있던 몸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이길 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몸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라이브러리 월드와 시놉 시티는 점점 발전해나가더군요.
그건 정말 놀라운 발전이었어요. 신기해하던 저는 그 발전이 거의 전적으로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게 바로 앨리스 양이었어요.
앨리스 양은 문자 그대로 천재였죠. 듣도 보도 못한 물건들을 수도 없이 발명해내고, 그것들이 라이브러리 월드의 발전을 가속화 했어요.
여러 시대의, 여러 기술을 가진 여러 이야기에서 앨리스 양은 지식을 흡수했고, 그걸 자신의 방식대로 물건으로 만들었죠. 아주 멋졌어요!
이 사람이라면 분명 내 소원을 들어줄 거로 생각했죠.
그래서 전 앨리스 양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주인이 있는 몸을 차지하긴 힘들고, 주인이 없는 몸이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를 위해 만들어진 몸이라면 딱히 문제도 없겠죠? 그리고 앨리스 양이라면,
그쪽에 관심은 없는 것 같았지만, 그럴만한 능력은 있는 것 같고요.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 정도는 앨리스 양에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앨리스 양의 곁에는 늘 ‘닥터 래빗’이라는 이가 붙어 있었거든요. 앨리스 양의 동업자이자 스승 같은 역할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영혼만 있는 제가 앨리스 양에게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저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발전이 이어지면 앨리스 양 외에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고,
닥터 래빗이 언제까지 앨리스 양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기다리는 사이 기회가 찾아왔죠.
그 무렵 앨리스 양과 닥터 래빗은 포털 장치라는 이동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어요. 이미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실용화되었으니 다들 알겠지만,
순간이동 장치죠. 하지만 연구하는 과정에서, 닥터 래빗은 그만 사고로 실종되어버리고 말았죠.
앨리스 양은 한동안 닥터 래빗의 실종에 실망하고, 슬퍼하고, 그를 찾을 방법을 연구했지만, 결과를 보진 못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앨리스 양은 어느 정도 슬픔을 극복한 것 같더군요. 바니바니, 앨리스 양의 곁에서 늘 둥둥 떠다니는 로봇이 나타난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듣기로는 닥터 래빗이 남겨둔 물건이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아, 오랜 기다림이 드디어 결실을 맞이한 거죠!
앨리스 양의 곁에 늘 붙어있던 닥터 래빗은 없어진 데다, 앨리스 양은 그 슬픔을 이겨내려는 것인지 잠도 안 자고 정신없이 발명품들을 잔뜩 만들어내기 시작했지요!
정말이지, 제가 그토록 기다리던 조건들이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었죠. 그리고 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답니다. 그런 건 삼류나 하는 짓이죠.
어느 날 밤, 앨리스 양은 특수한 랜턴을 만들고 있었답니다.
아직도 그 랜턴이 원래 뭐에 쓰려고 만들던 건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모르는 숨겨진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건 지금은 아무래도 좋겠죠.
저는 앨리스 양의 연구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그 랜턴에 깃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는 좋은 관계를 위한 첫걸음이죠. 쾌활한 제 인사에 앨리스 양은 거의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하며 외쳤습니다. 깜짝 놀란 얼굴이 귀여웠죠.
“뭐야?! 인사 기능은 넣은 적 없는데…?!”
“하하하, 만들고 깜빡 잊으신 게 아닐까요?”
“답변 기능까지 들어갔네?!”
과연 발명가에 과학자라고 해야 할까요. 앨리스 양은 제 대답에 놀라며 안경을 고쳐 썼습니다. 뭐, 놀라던 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평범한 랜턴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게 갑자기 인사하고 대답까지 한다면 보통은 까무러칠 일이겠지요.
하지만 과연 천재라고 해야 할까요, 앨리스 양은 금방 사태를 이해했습니다. 랜턴에 쓰기 위해 기초적인 인공지능을 넣어뒀는데,
그게 본인의 천재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고성능을 냈고, 그 결과 스스로 생각하고 대답까지 할 수 있는 본격적인 인공지능으로 발전했다고 받아들인 거였죠.
뭐, 제가 그렇게 유도하긴 했지만.
“역시 난 천재야! 정말 대단해!”
아, 이 얼마나 귀여운지. 앨리스 양은 연신 그렇게 외치며 연구실 안을 계속해서 깡총깡총 뛰어다녔죠. 전 주인에게 충실한 인공지능을 연기하며
‘네, 앨리스 양은 대단합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때부터 바니바니는 절 못 미더워 하는 모양이었지만, 뭐 어쩔 건가요. 본인도 인공지능이면서 말이죠.
“앨리스 양, 부디 제가 주인인 당신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저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앨리스 양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랜턴 머리만으로는 기껏해야 연구실을 밝히는 일 정도인데, 그것만으로는 당신을 제대로 모실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저에게도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있다면, 앨리스 양을 위해 뭐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난 널 랜턴으로 쓰려고 만든걸.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천재인 앨리스 양이 무슨 방법으로 저 같은 의식을 만들어낸 지는 고작 랜턴인 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지능을 가지고 고작 랜턴으로 머무는 건 아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재빨리 대답했습니다. 힐끔 바니바니 쪽과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연구실을 둘러보면서 말했죠.
“예로 들어서, 앨리스 양은 늘 연구로 바쁘니 청소나 세탁, 식사 준비 같은 사소한 일에 시간을 보내기는 힘드시겠죠.
하지만 제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있다면, 얼마든지 대신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음… 그것도 그런가? 지금은 청소회사에서 가끔 와서 정리해주는데, 사실 좀 불편하긴 하거든.”
제 말에 앨리스 양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죠. 그전까지는 닥터 래빗이 주로 그런 잡일을 대신해줬지만 사라졌고,
앨리스 양은 어쩔 수 없이 업체를 고용했지만 그다지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요.
“부디 제가 창조주인 앨리스 양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무래도 앨리스 양은 그 말에 넘어간 것 같았어요.
쉽게 믿는다는 건 좋은 일이죠. 아무렴요. 아주 좋은 일이에요.
앨리스 양의 도움으로 그렇게 저는 몸을 얻게 되었답니다. 아주 훌륭한 몸이었어요. 앨리스 양은 자신의 발명품인 (척한) 저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한 것 같았고,
제가 주인인 자신을 위해 봉사하려는 것도 마음에 들어 한 것 같더라고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앨리스 양은 외로웠던 게 아닐까 싶군요.
믿고 의지하던 닥터 래빗이 사라지고 혼자 남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의 발명품인 (줄 아는) 제가 말하고 생각하고 곁에 있으니, 절 의지하게 된 것 같았지요.
“내 두 번째 조수로 삼아줄 테니까, 열심히 돕도록 해!”
앨리스 양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연구나 발명을 돕도록 했어요. 뭐, 나름대로 즐거운 나날이 아니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군요.
여전히 바니바니는 절 못마땅해하는 눈치였지만, 전 제 말에 충실했답니다. 앨리스 양의 충실한 시종으로서 나날을 보냈죠. 그 사이 앨리스 양에게 부탁해서
몸도 더 업그레이드도 했고요. 기계 몸에도 나름대로 장점은 있는 법이죠. 부품만 갈아 끼우고 앨리스 양이 좀 뚝딱거리면 훨씬 좋아지니까요.
“그런데 앨리스 양, 이 몸에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를 좀 알려주시면 좋겠는데요.”
“싫어! 그럼 재미없잖아? 비밀병기는 필요할 때 ‘이런 일도 있을 줄 알고 준비했다!’라면서 등장해야 하는 법이지!”
한 가지 문제라면 제 몸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늘 앨리스 양이 그런 핑계를 대면서 즐겁다는 듯 웃곤 했거든요.
나름의 장난기였을까요? 아니면 발명가로서의 버릇이었을까요? 저로서는 잘 모르겠군요.
아무튼, 앨리스 양과의 생활은 제 생각보다는 오래 지속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앨리스 양은 발명품인 (줄 알고 있는) 제가 당신의 곁에 계속 있을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전 그럴 생각은 없었거든요.
게다가 앨리스 양은 아니나 다를까 새 친구를 빠르게 사귀더군요. 연구실에서 나갈 때라고는 케이크 같은 간식을 사러 나갈 때뿐이라 걱정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청소부 오리 아가씨가 자주 연구실에 놀러 오곤 했습니다. 그 뒤로는 앨리스 양이 절 말동무로 삼는 일도 점점 줄었어요.
아무래도 발명품보다는 친구가 좋을 나이니까요.
뭐, 그럼 걱정할 일은 없겠죠. 저는 어느 날 앨리스 양에게 말했습니다.
“앨리스 양, 아무래도 연구실에도 보안을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앨리스 양이 만능지뢰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침입자를 쓰러트릴 수 없을지도 몰라요.
저에게 무기를 만들어주세요. 제가 앨리스 양을 지키기 위해 싸울 테니까요.”
사실 그 며칠 전에, 전 앨리스 양이 잠든 틈을 타 연구실을 어지럽혔습니다. 창문도 한 장 깨고 말이죠. 깨지는 소리에 금방 제가 출동한 척을 해서 침입자가
뭔가 훔쳐 가지는 못한 것으로 만들었지만, 앨리스 양은 자신의 연구가 누군가에게 빼앗기길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는 아예 앨리스 양의 상징과도 같아진 만능지뢰도 그 때문에 개발한 물건이었죠.
아무튼, 앨리스 양은 이번에도 제 말을 철석같이 믿었죠. 미리 생각해둔 바도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저는 이 지팡이를 받을 수 있었답니다.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는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정말이고 말고요.
저는 정든 앨리스 양의 연구소를 떠났죠. 물론 말없이요.
뭐, 그대로 영영 그 연구소에 살 생각도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말 잘 듣는 집사 로봇인 척하려고 그 랜턴에 깃든 게 아니니까요.
자유롭게 움직이고 라이브러리 월드를 돌아다니기 위한 몸을 얻고자 앨리스 양에게 찾아간 거지.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는 볼 일은 없는 거죠.
앨리스 양과 작별한 건 좋았지만, 그대로 거리를 돌아다닐 순 없었어요. 앨리스 양이 만들어준 몸인 이상 눈에 띌 테고, 그렇게 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플 테니까요.
다행히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로봇들을 위한 장소도 있었죠. 제토 페토라는 회사였죠. 라이브러리 월드에 있는 비생물 인격체를 위한 회사이자 장소였어요.
전 한동안 그곳에 몸을 맡기기로 했죠. 낯선 세상에 갑자기 떨어진 걸 곳 없는 불쌍한 로봇인 척하면서요.
아, 거기도 정말 멋진 곳이었어요!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여러분들은 참으로 순진하더라고요. 앨리스 양과 마찬가지로. 전 우선 제 몸을 눈에 덜 띄게,
그러면서도 신사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개조하고, 다른 분들과의 거래로 여러 사업을 할 자본을 마련했죠.
왜 신사다운 모습에 집착하냐고요? 겉모습은 사업을 하기에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랍니다. 잘 차려입고 젠틀한 신사인 쪽이 아무래도 신뢰를 얻는 법이죠.
그리고 원래부터 전 대화를 선호하고 공정한 거래를 추구하는 신사랍니다. 물론이죠.
뭐, 아무튼.
제 신사다운 면모 너머에 있는 강인함에 놀랐는지, 일당들은 일단 쓰러진 이를 데리고 물러났습니다. 저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말했죠.
마음 같아서는 옷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 몸은 옷과 몸의 구분이 없거든요.
“자, 말씀드렸듯이 ‘구두장이 요정들’ 공방을 두고 조금 더 높으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권리문제니, 여러분과 이야기해도 결론이 안 날 것 같아서요.
아, 시간이 좀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기다리도록 하죠. 음, 하지만 이런 뒷골목에서 기다리는 것도 신사답지 못한 일이니,
높으신 분께 안내해주시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이 깡통, 도대체 정체가 뭐야?”
“H.U.N.N.T에서 왔나? 아니, 근데 걔들이 우리 같은 애들을 잡으러 올 리가…”
다 들리게 수군거리는군요. 본인이 앞에 있는데 예의 없게. 이제 그만 상황 판단이 빠른 분이 정리해주면 안 될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한 분이 제 쪽을 손가락질하며 외쳤습니다.
“앗, 이 자식! 그런 차림이라 못 알아봤네! 너, 지난번에 만병통치약이라고 거리에서 약 팔던 그 로봇이잖아!”
그러던 중 한 분이 저에게 손가락질하며 외쳤습니다. 이런, 이쪽으로 상황 판단이 빠른 분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네? 누구, 저요?”
“시치미 떼지 마! 그거 먹고 며칠이나 복통에 시달렸다고!”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나한테 명화라고 가짜를 팔았던 로봇이랑도 비슷한데?”
“너, 분명 길거리에서 주사위 게임으로 돈을 벌라면서 나한테…”
웅성웅성. 갑자기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군요.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했던 걸까요. 이럴 때 눈에 덜 띄기 위해서,
평소에는 신사적으로 하고 다녔던 건데 말이죠. 이런이런.
일당들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좀 전까지는 제힘을 보고 포기한 것 같았는데,
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어요. 아, 이래서 폭력은 좋아하지 않는 건데 말이죠.
다가오는 일당들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 지팡이를 들어 올렸습니다. 앨리스 양이 특제로 만들어준 몸입니다만, 이 숫자를 상대로는 장담하기 힘들겠지요.
아, 뭔가 제 몸에 비밀병기를 장착해뒀다고 하는데, 뭘 넣어놨는지 듣기나 해볼 걸 그랬어요. 이 지팡이도 앨리스 양의 성격을 보면 뭔가 장치가 있을 것 같은데,
받자마자 도망쳤으니 알 수가 없단 말이죠.
뭔가… 일망타진할만한 그런 무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날아도 가면 좋겠고요. 가까이에서 싸우면 피곤하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저는 깨달았답니다.
글쎄요, 이건 정말 ‘깨달았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겠군요. 기계 몸이라는 건 참 신기한 거예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단 건 참 좋은 일이군요.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는 사이, 어느새 등을 벽에 기댈 정도로 몰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려움을 보이는 대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고개를 깊숙이 숙여 예를 표했습니다. 제 갑작스러운 행동에 일당들이 놀란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나 청하신다면, 잭’O의 특별 쇼를 보여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부디 즐겁게 즐겨주시길.”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에 긴장하는 일당들. 저는 그저 느긋한 분위기로 말했습니다.
“대화로 해결하고 싶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에 응해주시지 않을 것 같으니… 숨겨둔 제 마술들을 보여드릴까 해서 말이죠. 자, 그럼 쇼를 시작해볼까요?”
제 랜턴 머리는 인간의 표정은 짓지 못합니다. 그 대신, 어째서인지 감정에 따라 랜턴의 불빛이 달라지는 모양이더라고요.
지금 제 랜턴에서는 선명한 붉은 빛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불길한 색상에 일당분들은 겁을 먹었죠. 그래요, 바로 이럴 때를 위한 기능이니까요.
“자, 보시다시피 이 지팡이는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지팡이랍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멋진 쇼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출이 필요한 법이죠. 전 제 랜턴에서 나오는 붉은 빛을 지팡이에 쐬어준 다음, 힘껏 지팡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러자 어머나! 놀랍게도 지팡이 끝에서 빛으로 된 날(낫이 모티브였던 걸까요?)이 생겨, 일당들에게 날아가는 게 아니겠어요?
“으, 으아악!”
깜짝 놀랐는지 일당들은 부메랑처럼 날아가는 날을 피해 몸을 던지거나, 그만 그날에 맞고 말았답니다. 이건 정말 저도 모르는 기능이었어요.
잠시 허공에서 회전하던 날은 이윽고 제 쪽으로 다시 날아와 돌아왔습니다. 저는 어려움 없이 날을 받아냈고요. 흠, 부메랑인 걸까요?
쇼에는 서프라이즈도 중요하죠. 예상치도 못한 기능과 효과였지만, 그렇다고 쇼의 진행자도 함께 놀랄 수는 없잖아요?
자, 서프라이즈를 하나로 끝낼 수는 없는 법이죠. 저는 당황한 일당들에게 조금 더 쇼를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말했듯이, 저도 제 몸에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전부는 알지 못합니다. 가전제품도 설명서가 따라 오는 법인데, 앨리스 양도 제 몸을 만들었으면
설명서 정도는 저에게 줘야 하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앨리스 양과 함께 지내거나 도망친 뒤 지내면서 몇몇 기능들은 저도 알게 됐죠.
아무래도 청소기 기능이었던 것 같지만, 바람을 내보내거나 빨아들이는 기능이라든지…
“나, 낙엽이랑 신문지가 멋대로 움직여!”
“초능력인가?!”
손가락 끝에서 작은 폭죽이 나온다든지… 이건 무슨 용도일까요. 파티 용도?
“불꽃도 나온다!”
“피해!”
아, 카드 마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죠. 아무래도 이야기 속처럼 트럼프 카드와 연이 있는 앨리스 양이 넣어둔 기능 같은데,
처음 만나는 상대와도 게임을 하며 즐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능이에요. 제 주머니도 두둑해지고 말이죠.
“카드를 날린다! 피해!”
“진짜 마법사야!”
뭐, 그런 식으로.
몇 가지 기능들을 선보이자, 일당들은 완전히 질린 모양이었습니다. 저에게서 멀찍이 거리를 두고 절 두려운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었죠.
아무래도 쇼를 만끽하신 모양이에요.
“자, 쇼는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이제 책임자를 불러주시겠어요? 이제 슬슬 여러분과의 대화도 질리기 시작해서 말이죠.”
“그래, 그런 모양이군. 자, 그럼 원하던 대로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눠볼까?”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정말이에요. 로봇은 놀라지 않는 법이니까요. 설령 제 말에 대한 대답이 등 뒤에서 들려왔어도 말이에요.
몸을 돌리자, 한 남자가 보였죠. 붉은 정장을 입고, 어딘지 기분 나쁜 인상의 남자였어요.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있었죠. 아, 그 모습을 보자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죠.
솔직히 놀랐어요. 로봇은 놀라지 않지만, 저는 로봇이 아니니까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남자는 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죠.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지만, 움직이는 기계는 언제 봐도… 응?”
전 한 걸음 물러났습니다.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신, 인간이 아니시군요?”
“그러는 넌 기계가 아니군. 우리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아. 한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생각에 잠기던 남자는 그렇게 소리를 내며 고민하듯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풀었습니다.
절 손가락질 하며, 방금 전보다 더 격렬하게 표정을 구겼죠.
“날 두 번이나 골탕 먹인 그 사기꾼이로군.”
“오랜만에 뵙는군요, 악마 씨.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놀라운 일이네요.”
이런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어느 추운 겨울날, 호박 머리를 한 유령이 세상을 떠도는 슬픈 이야기를요.
그 요정이 저라는 사실은 이제 와서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제가 어째서 호박 머리, 혹은 순무 랜턴을 들고 다니는지는 모르죠.
어느 날 악마가 제 목숨을 거둬 가려 저를 찾아왔지요. 하지만 죽어달라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죽어줄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전설 속의 영웅들처럼 악마와 자웅을 겨뤄 물리치고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지금이야 이런 모습이지만,
원래 저는 지극히 평범하고 모범적인 시민일 뿐이었거든요.
하지만 제게도 장점은 있었죠. 남들보다 꾀를 내는 것은 잘하고, 또 좋아했거든요. 네, 맞아요. 사기는 제 전매특허죠. 인정합니다. 인간의 몸이었을 때도 전 유명했어요.
아무튼, 저는 꾀를 내어 악마를 쫓아내고 제 목숨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었죠. 악마라는 것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모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결국 저도 수명이 다할 수밖에 없었죠.
영혼만 남은 저는 하지만 천국도 지옥도 갈 수 없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남들을 속였다면서 절 쫓아냈고, 지옥은, 뭐, 악마와 계약하며 그가 제 영혼을
가져갈 수 없다는 조약이 있었기 때문에 갈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영원히 영혼만 남아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나마 마지막 온정이었는지,
악마가 영원히 불타는 지옥의 석탄을 건네줘 그걸 순무에 넣은 순무 랜턴으로 길을 밝히면서요. 이게 많이들 아는 호박 머리로 변한 거죠.
그게 제 운명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이 일어났죠.
“조금 살이 빠지셨나요?”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습니다. 나름대로 칭찬의 의미였는데, 악마 씨는 인간의 얼굴 밑에 숨겨진, 악마다운 날카로운 이를 슬쩍 드러내며 표정을 구겼죠.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는 사업이 쉽지 않아서 말이지. 규칙도 이야기 속과는 다르고.”
하긴, 저도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악마라든가 하는 존재들도 있는 법이죠. 이야기 속에서 절대적인 존재들이요. 하지만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는 그 힘을 그대로 쓸 수는 없어요.
그렇기에 그들은 라이브러리 월드에 적응하기 더 힘들다고 하더군요. 이분도 그런 경우겠죠.
“그래서, 나를 왜 보려고 한 거지?”
악마 씨는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못한지 으르렁거리듯 말했습니다. 뭐,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에요. 일당들이 부하였던 모양이었는데 제게 당한 데다가,
하필이면 절 다시 만났으니 말이죠. 하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한 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러나 저는 신사, 신사다운 정중하고 당당한 자세로 말했죠.
“듣자 하니 당신이 ‘구두장이 요정들’의 사업권을 부당하게 인수하셨다고 하더군요. 저는 변호사로서, 그곳 경영진의 전권 대리로서
갈등을 해소하고 권리를 되찾고자 찾아왔습니다. 자, 그럼 협상을 시작해볼까요?”
“뭘 원하지?”
단도직입적이군요. 뭐, 싫어하진 않아요. 하지만 제가 대답하기도 전에 일당들이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두목! 이 깡통이 하는 말을 그냥 들으실 생각입니까?”
“이 녀석하고 얽혀서 좋을 일이 없어. 우리 악마들도 전부 손을 뗀 녀석이니까.”
흠, 그렇게까지 제 위명이 널리 알려졌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악마들은 거리에는 잘 안 보이니까요. 아무튼 악마 씨도 양해해주셨으니,
저는 요구 조건을 말했습니다.
“이래 봬도 저는 공정한 거래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선호한답니다. 제가 중재를 맡을 테니, 운영권에 대해서 다시 한번 다 같이 협상을 하면 어떨지…”
“네가 또 무슨 사기를 칠 줄 알고? 됐어. 그 구두 공방에서는 손 떼도록 하지. 어차피 다른 물건들도 많으니까 말이야.”
악마 씨는 질렸다는 듯 손을 홰홰 저으며 말했습니다. 뭐,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렸으니 저로서는 좋지만… 그래봤자 곧 또 만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건 그렇고, 영혼만 남은 기계 몸이라…”
마지막에, 일당들과 함께 뒷골목을 떠나던 악마 씨는 제 쪽을 힐끔 돌아보고는 말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기꾼인 너에게는 아주 잘 어울리는 몸이군.”
“그런 실례를. 저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게 아니랍니다. 뭐, 지금은 없긴 하지만요.”
흥, 하고 제 대꾸에 코웃음을 치고는 악마 씨는 거리를 떠났습니다. 다 먹은 사과를 바닥에 툭 버리고, 말이죠. 이런이런, 일은 잘 해결했는데 뒤끝이 남는 결말이로군요.
뭐, 이 몸이 편리한 건 사실입니다. 튼튼하기도 하고, 앨리스 양이 남겨둔 여러 기능을 쓰거나 찾는 재미도 있긴 하죠.
하지만 제 시선은 악마 씨가 버린 사과에서 떨어지질 못했습니다.
신사답게, 전 쾌락도 좋아합니다. 재미있게(하지만 어디까지나 품위 있게) 노는 것도 좋아하고, 먹고 마시는 것도 좋아하죠.
하지만 이 몸은 그런 기능은 달려있지 않습니다. 애당초 랜턴 머리로 뭘 어떻게 먹고 마시겠어요?
이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신기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이 몸으로는 즐길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답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도 없고,
잘 익은 사과를 베어 무는 것도 불가능하죠. 향이 좋은 와인이나 위스키를 즐기는 것도 물론 무리고 말이에요.
악마 씨랑 그걸로 거래라도 할 걸 그랬어요. 뭐, 라이브러리 월드에서는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아아, 뭔가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응…?”
그때, 제 눈에 뭔가가 들어왔습니다.
건물들 사이로 좁게 열려있는 하늘. 그곳을 떠가는 비행선 한 대. 비행선에는 대형 전광판이 걸려있고, 거기에는 최근 화제인 스매시 레전드의 광고가 걸려 있었죠.
어떠한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신비한 힘, ‘라이트 오 라이트’를 걸고 벌어지는 대난투.
그게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을 해결할 열쇠기도 하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 관심 없었지만요. 싸움이라니, 야만스러워라.
뭐, 그것도 있지만, 그곳에서 맞서 싸울 방법도 없다는 것도 컸지만요. 하지만 저는 손에 쥔 지팡이를 내려보며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 수단은 이미 가지고 있던 거 아닐까요? 이 몸, 제법 튼튼하고 강인하기도 하고 말이죠.
“으음…”
앨리스 양도 참가했기에 마주치는 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쩌면 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어요. 숨겨진 기능을 찾아낼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죠. 그게 아니더라도, 뭐, 생각해보니 언제 한 번쯤 인사를 하러 가도 좋겠군요.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줄 수 있다면, 제 몸을 되찾게 해줄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이 멋진,
순진무구한 이들로 가득 찬 라이브러리 월드를 더욱더 즐겁게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럼…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겠군요.”
며칠 후.
“음, 포스터가 아주 잘 나왔군요.”
저는 만족스럽게 공연장의 입구에 널려 있는 포스터를 바라봤습니다.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자세를 취한 제가 서 있는 포스터. 아주 고풍스러운 게 신사다운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환상의 마술사 잭’O!’라는 문구도 마음에 들고, 말이죠.
네, 직종을 바꾸기로 했답니다. 뭐, 정확히는 바꾼다기보다 본업과 부업을 좀 바꾸기로 한 거지만요. 아무래도 변호사보다는 장사도 잘될 것 같았거든요.
제 이름값과 얼굴을 알리기에도 더 좋을 것 같고 말이죠.
‘구두장이 요정들’ 문제는 잘 해결됐답니다. 순진하신 분들이라 제가 악마 씨와 거래를 마치고 온 것에 기뻐하고, 제 해결책에도 만족하셨거든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제가 ‘회장’ 자리를 맡기로 하죠. 여러분은 이전처럼 ‘사장’과 ‘사원’으로서 일해주세요.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있을 때 제가 회장으로서 경영권이나 기타 문제를 관리하고, 문제가 없을 때는 여러분이 공방을 관리하면 되니까요!”
“그럼 회장은 무슨 일을 하나요?”
요정분의 질문에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회장은 사장보다 높은 자리랍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죠! 아, 그렇게 싫은 표정 짓지 마세요. 이번 일과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것,
그것이 회장의 일이랍니다!”
“그럼 앞으로도 누가 우리를 내쫓으려 하면, 변호사님이 해결해주시는 거예요?”
“변호사님이 아니라 회장님이지만, 네, 그렇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뭐든 이 잭’O 회장님이 처리해드릴 테니,
여러분은 안심하시고 구두를 만들어 공방을 계속 운영하시면 된답니다. 제 연봉은 뭐, 납득 가능한 수준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대신 언제든 제 구두를 손질해주시겠나요?”
보세요, 저는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중시한답니다. 요정분들은 걱정 없이 공방을 운영할 수 있고, 저는 조언을 해주면서 적절한 대가를 받고,
거기에 더해서 무료로 구두를 최고의 장인들에게 관리받을 수 있게 됐죠. 네? 저만 이득을 본 것 같다고요? 그럴 리가요.
아무튼, 마지막 의뢰도 처리했으니 이제 당분간은 새로운 직업으로 지낼 생각이랍니다. 그편이 악마 씨랑 마주치지도 않을 것 같고요.
뭐 제 쪽은 마주쳐도 크게 상관… 은 없지만, 역시 그 모습을 보면 옛날 일이 생각나거든요.
네, 솔직히 후회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아, 물론 차라리 죽을 걸 그랬나 하는 건 아니랍니다. 덕분에 이렇게 멋진 세상에 왔잖아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잘 믿고 잘 속는 분들이 가득하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 한세상으로 말이죠! 전부 제 능력 덕분이죠.
그럼 뭐가 후회 되냐고요? 그야… 더 좋은 조건으로 거래할 걸 그랬다, 하는 후회죠 물론?
“앗!”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도 모르게 반가움에 고개를 돌릴 정도의 익숙한 목소리요.
그곳에는 앨리스 양이 있었죠. 친구인 오리 아가씨도요. 이름이 더키였었죠 분명? 요즘은 시놉 시티를 지키는 히어로, 스완으로 더 유명한 모양이지만요.
“잘 만났다, 이 랜턴 사기꾼!”
전 반가움에 인사라도 할까 했지만, 아무래도 그럴 분위기가 아닌 모양이었어요. 앨리스 양은 씩씩 화를 내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이런.
자, 그럼 일단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다음 이야기는…
글쎄요, 경기장에서 하면 어떨까요?